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해외 거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는데 한결 자신있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5일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을 대상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전자업계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의미가 크다.
서울고등법원은 4일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한 1조311억 원의 과징금과 10개 항의 시정명령 가운데 시정명령 2개 만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위법하다고 본 시정명령 2개 항은 라이선스 수수료 관련 내용이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조금도 깎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퀄컴 행위의 위법성이 법원을 통해 거듭 인정된 셈이다.
특히 ‘프랜드(FRAND) 확약’ 위반 행위와 관련해 법원이 처음으로 위법성을 인정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프랜드 확약은 표준필수특허(SEP)를 경쟁사들도 대가만 지불하면 비차별적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담긴 국제표준원칙이다. '특허괴물'로 불리는 퀄컴은 휴대전화제도에 필수적인 표준필수특허 제공에서 불공정행위를 한 혐의로 공정위에게 시정명령을 받았다.
해외 거대기업을 대상으로 내리는 제재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공정위가 얻은 가장 큰 소득으로 보인다.
조 위원장은 판결을 앞두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길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행위 자체의 위법성이 인정되더라도 과징금이 깎일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조 위원장이 특히 과징금 규모와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은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한 과징금이 1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였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공정위의 전문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외 거대기업 제재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퀄컴을 대상으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고 법원의 긍정적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데는 시장감시총괄과 내 직원을 중심으로 하는 태스크포스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스크포스팀은 퀄컴의 조사가 진행된 2년여 기간에는 오직 퀄컴 조사만 맡았다.
퀄컴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결정은 이례적으로 일곱 차례의 공정위 전원회의를 거치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취임할 때부터 전문성 있는 전담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는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사건은 굉장히 복잡한데다 어느 한 과에서 맡기가 어렵다”며 “국을 넘어선 전담조직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취임한 뒤 15명 정도 공정위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통신기술 전담팀’을 구성했다.
애플과 구글 등 해외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이 공정위의 조사 대상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정위가 앞으로 이 기업들에게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조 위원장은 공정위의 조사 전문성뿐만 아니라 공정위 결정과 관련된 행정소송을 대비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공정위 9명 위원 가운데 외부 인사로 채워지는 비상임위원에 11월부터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합류했다.
정 위원은 판사 출신으로 서울고등법원에서 공정거래사건을 전담했던 경력이 있다.
조 위원장은 앞으로 교체 가능성이 있는 비상임위원의 인사와 관련해서도 공정위 심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위원회 자체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둔 것으로 전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