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고부가 화학제품의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유사들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최근 정유회사들이 석유화학사업으로 발을 넓히면서 화학회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데 롯데케미칼은 정유사와 적극적 협업을 통해 비스페놀A, 혼합자일렌(MX) 등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11일 업계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케미칼은 정유사들과 대규모 합작투자를 통해 기초화학제품 생산설비를 늘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GS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와 연이어 합작사를 설립하고 석유화학제품 생산설비를 신설 또는 증설하고 있다.
최근 SK에너지와 합작사인 롯데GS화학주식회사(가칭)를 설립하고 8천억 원을 투자해 C4유분과 비스페놀A(BPA) 생산공장을 짓는다. 2023년 상업가동을 목표로 세웠다.
GS에너지가 비스페놀A를 만드는 프로필렌과 벤젠을 공급한다.
롯데케미칼은 앞선 2014년에도 현대오일뱅크와 합작법인 현대케미칼을 설립해 혼합자일렌(MX)을 생산해왔다. 현대오일뱅크가 콘덴세이트 원유를 공급하고 이를 정제해 혼합자일렌과 경질나프타를 생산한다.
현대케미칼이 생산하는 혼합자일렌은 롯데케미칼이 벤젠, 톨루엔, 자일렌을 생산하는 원료로 사용된다.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은 2018년부터 2조7천억 원을 투자해 중질유 분해설비(HPC)를 짓고 있다. 중질유 분해설비는 원유 찌꺼기를 원료로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생산하는 설비다. 2021년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이 연이어 정유사들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은 다운스트림 제품의 원재료가 되는 프로필렌, 벤젠, 비스페놀A 등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다.
현대오일뱅크와 합작사를 설립하기 전에는 파라자일렌(PX), 벤젠, 톨루엔 등을 생산하기 위해 원재료인 혼합자일렌(MX)을 전량 수입해야 했다. 롯데케미칼은 현대케미칼에서 혼합자일렌을 생산하면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롯데케미칼은 현대케미칼의 중질유분해설비가 완성되면 나프타분해설비(NCC)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또 GS에너지와 합작한 롯데GS화학주식회사로부터는 폴리카보네이트(PC)의 원재료인 비스페놀A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의 소재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정유사들과 합작하는 전략이 화학업계의 의미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불안정해지고 전기차시장이 커지면서 정유사들은 석유화학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석유화학업계 진출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기존 석유화학업체들은 태양광이나 전기차 배터리 등 신규사업에 도전하며 업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정유사들과 협력을 통해 원재료를 장기적으로 저가에 공급받고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과 GS에너지의 합작은 석유화학기업이 나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사례”라며 “합작을 통해 원재료를 안정적이고 낮은 가격에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유사와 석유화학업체 사이의 사업영역을 구분해 신규경쟁을 제한한 가운데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정유사와 합작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기초유분제품이며 이를 한 번 더 가공해서 만드는 다운스트림 제품은 롯데케미칼이 생산하고 있기에 사업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