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에서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고 중국의 저가수주 공세까지 겹쳐 중소조선사들은 주력선종을 좁히는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데 대한조선의 전략은 ‘대세’를 거스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 박용덕 대한조선 대표이사 사장.
7일 대한조선에 따르면 2019년 들어 현재 기준으로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탱커) 2척과 수에즈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 4척을 수주해 2021년 상반기까지의 일감을 확보했다.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은 최대 운임효율을 보이는 등급의 선박으로 크기가 8만~11만 DWT(재화중량톤수) 규모이며 수에즈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선박으로 크기는 13만~15만 DWT 규모다.
대한조선은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을 주력으로 건조하는 조선사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수에즈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의 수주가 더 많다.
대한조선 관계자는 “선박 발주시장이 워낙 경색돼 있어 수익성 좋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한 영업전략을 고민했다”며 “2018년 10월부터 수에즈막스급으로 건조 선종의 폭을 넓혔는데 수주영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조선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글로벌 수주시장에서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선의 수주점유율 1위를 지켰다. 그런데도 수주 선종의 다각화에 나선 것은 중국의 저가수주 공세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18년 중국 조선사들이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을 가장 많이 수주했다.
중국 조선사들은 평균보다 5~10% 저렴한 건조가격을 앞세워 2017년 한국 조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뒤 지난해에는 한국 조선사들을 넘어섰다.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의 수주절벽 앞에서 대한조선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건조 선박의 크기를 줄여 MR탱커(규모 5만 DWT 안팎의 액체화물운반선)으로 수주의 중심을 옮기는 것과 크기를 키워 수에즈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한조선은 이 둘을 놓고 후자를 선택했다.
중형조선사들은 STX조선해양이 더 큰 크기의 선박 수주를 줄이고 특수선사업을 매각한 뒤 MR탱커에 집중하고 있으며 한진중공업이 일반상선 수주를 포기하고 특수선 사업만을 남기는 등 주력선종을 줄이고 크기를 소형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으나 대한조선은 다른 길을 걷기로 한 셈이다.
대한조선의 이런 수주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STX조선해양이 중국 대형조선사들과 MR탱커시장에서 어려운 수주경쟁을 벌이는 동안 대한조선은 2018년 10월 이후로 수에즈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을 8척 수주하며 순항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대형조선사들뿐만 아니라 중소조선사들까지 MR탱커시장에 저가수주를 앞세워 진출을 시도하고 있어 대한조선의 선택은 더욱 높게 평가받는다.
조선해운 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는 앞서 6월 중국 양쯔강조선소가 MR탱커의 설계를 확보했다며 수주영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5월 MR탱커 1척의 건조가격은 3650만 달러였으나 양쯔강조선소는 MR탱커 1척당 3250만 달러의 가격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조선은 2015년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화물운반선(벌커)과 MR탱커, LR2급(7만 DWT 이상 규모) 석유화학제품운반선 건조에 주력하는 조선사였다.
당시에도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수주 공세를 피하기 위해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으로 주력선종을 바꿨고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 수주시장에서 입지를 다졌었다.
대한조선은 잇따른 선박 건조전략의 변경을 통해 단순히 일감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선종의 건조경험도 함께 쌓고 있다.
아프라막스급 액체화물운반선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1척 건조에 2년이 걸리나 대한조선은 1년2개월~1년6개월로 건조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정도의 숙련도를 쌓았다.
대한조선 관계자는 “현재도 MR탱커나 LR2급 석유화학제품운반선의 수주영업은 계속 하고 있지만 글로벌 선박발주 침체로 발주 물량 자체가 거의 없어 수주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아프라막스나 수에즈막스쪽에 좀 더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건조 선종의 다변화는 글로벌 선박 발주시장이 다시 호황기로 접어들 때 대한조선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는 그 시기가 멀지 않다고 바라본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이후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을 제외한 주요 선종의 선박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물동량과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 2019년 말에는 선박의 발주가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