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노조 집행부는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큰 표 차이로 부결된 만큼 재교섭을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다.
반대표가 62.8%나 나온 데는 기본급 동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조가 회사 측에 임금 상승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 사장도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넓지 않다.
현대중공업이 올해 말까지 해양사업부문 유휴인력 1200여 명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적지 않은 고정비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이 고정비를 연간 3천억 원 수준으로 추측하고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올해도 적자가 지속될 수 있다"며 "선박의 건조가격 상승폭은 제한된 상황에서 해양사업 고정비 부담이 늘고 있는 점 등이 현대중공업 실적 부진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한 사장은 임금을 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수주가 재개되고 있으니 지금은 노사가 화합해 선주 신뢰를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라며 “향후 일감을 충분히 확보해 손익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근로조건이 개선되고 성과금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일렉트릭도 현대중공업 임단협에 불안요소다.
25일 노조 총회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임단협 합의안뿐 아니라 현대일렉트릭 임금 합의안도 찬반투표를 통과하지 못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주는 '4회사 1노조' 체제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과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중공업지주가 동시에 총회와 조인식을 치러야 한다.
한 사장으로서는 현대중공업 합의안 마련과 별개로 현대일렉트릭 협상 과정도 주시해야 하는 셈이다.
이제 막 발주시장이 살아나는 마당에 이런 불확실성은 일감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주산업은 특성상 노사관계가 안정적이어야 선주들에게 신뢰를 얻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25일 투표를 앞두고 사내소식지를 통해 “이번 기회마저 놓쳐 합의안이 물거품으로 되면 임단협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소모적 갈등과 교섭 장기화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거듭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도 물러설 자리가 좁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합의안이 부결된 데는 노조 내부에서 집행부에 관한 불만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합의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간사회의록 문구에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가 노조원들의 반발을 빚은 탓이다.
일부 노조원들로부터 집행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만큼 노조 간부들도 이번에는 노조원들이 만족할 만한 합의안을 내놔야 한다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현재 현대중공업 소속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기본금 동결을 두고 말이 많다.
이번 교섭에서 현대건설기계 노사는 △기본급 8만5천 원 인상 △성과급 485%. 현대중공업지주 노사는 △기본급 5만7천 원 인상 △성과급 414% 등에 합의한 반면 현대중공업은 △기본급 동결과 △성과금 110% 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노조 집행부 관계자는 "합의안이 부결된 것은 노조 구성원들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인 만큼 조합원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해 단체교섭을 준비하고 있다"며 "회사 측이 계속해서 여유가 없다는 말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