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기자 ksj01@businesspost.co.kr2015-01-20 10: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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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이군현은 1952년 3월 12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고입 검정고시를 통해 상고에 진학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국가장학금을 받아가며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사생활을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중앙대학교 교수, 학국영재학회 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17대 국회에 입성해 19대까지 3선 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시절 원내부대표와 5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19대 상반기 국회에서 국회 윤리특별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3월 제20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동총괄본부장으로 임명됐고 4월 제20대 통영시·고성군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교육전문가 출신의 자수성가형 3선 의원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고입 검정고시를 통해 상고에 진학한 뒤 사범대를 졸업했다. 국가장학금을 받아가며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30년간 교편을 잡으면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교육계 요직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당내 대표적 '교육전문가'로 통한다.
정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부터 3년간 대통령직속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이후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남 통영고성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뒤 19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면서 3선에 내리 성공했다.
2007 년 '이명박 대선캠프' 조사분석실장에 이어 당 중앙위 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경남도당 위원장 등을 지낸 옛 친이명박계 인사이다. 그렇지만 19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정부의 첫 예산안 심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3선을 하고 당내 주요 보직을 거쳤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내부 조정기능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개헌이나 당 혁신 등 굵직한 정치현안에 뚜렷한 입장을 각인시키지 못하고 있어 정치인으로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3년 5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1984년 4월부터 2003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지냈다.
1994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교육부 공과대학 국책지원사업 기획평가위원을 역임했다.
1997년 5월 정보통신부 우수시범대학지원사업 심사위원장이 됐다. 그해 9월부터 2000년까지 전국 시도 교원단체총연합회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2001년 5월부터 2004년 4월까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2001년 6월부터 2003년 6월까지 대통령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3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 4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5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이 됐다.
2004년 5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제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재직했다. 2004년 7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이 됐다.
2008년 5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제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0년 6월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2년 2월부터 5월까지 제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다.
2012년 7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제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3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제 19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4년 6월 제 19대 국회 후반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4년 8월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았다.
2015년 8월부터 제19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3월 제20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동총괄본부장으로 임명됐고 4월 제20대 통영시·고성군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 학력
1967년 고입검정고시를 합격해 대경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72년 중앙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해 1977년에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캔자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행정학을 전공했다. 1980년 석사학위를, 198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영희씨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02년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1년 대한노인회 노인복지 대상을 받았다.
◆ 상훈
2002년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1년 대한노인회 노인복지 대상을 받았다.
어록
“당의 조직정비에 집중할 예정이다. 당 운영의 효율성과 재정 투명성 제고방안을 수립중이다. 2016년 총선까지 선거가 없어 사무총장의 기본 업무인 당 조직 정비하고 또 혁신작업을 보좌하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2014/09/03, 경남신문, 새누리당 사무총장 취임 1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감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바뀐다고 하면 부모나 학생들이 굉장히 혼란을 겪는다.”, “적어도 정책을 바꿀 때 반드시 예고기간과 충분한 정착기간을 주어야 한다.”, “굉장히 신중한 일인데 평가 와중에 평가기준을 바꿔서 하는 건 맞지 않다.”(2014/09/04, 서울시교육청은 기준점수를 충족하지 못한 서울 지역 8개 자사고를 지정취소 대상 학교로 선정, 발표를 앞 둔 것에 대해)
“현행법상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은 학교로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에 처음 사용된 유치원 명칭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했다.”(2014/12/25,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의 명칭을 '유치원'에서 '유아학교'로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아동학대만큼은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처벌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상향하고 이참에 적용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우리는 작년 9월부터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국민감정과 거리가 먼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2015/01/16, SBS,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대해서)
◆ 평가
교육전문가 출신의 자수성가형 3선 의원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고입 검정고시를 통해 상고에 진학한 뒤 사범대를 졸업했다. 국가장학금을 받아가며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30년간 교편을 잡으면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수 등 교육계 요직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당내 대표적 '교육전문가'로 통한다.
정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부터 3년간 대통령직속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이후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남 통영고성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뒤 19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면서 3선에 내리 성공했다.
2007 년 '이명박 대선캠프' 조사분석실장에 이어 당 중앙위 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경남도당 위원장 등을 지낸 옛 친이명박계 인사이다. 그렇지만 19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정부의 첫 예산안 심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3선을 하고 당내 주요 보직을 거쳤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내부 조정기능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개헌이나 당 혁신 등 굵직한 정치현안에 뚜렷한 입장을 각인시키지 못하고 있어 정치인으로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다.
◆ 기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2010~2011년 김무성 원내대표시절 원내수석부대표로 호흡을 맞췄다. 당시 그는 각종 사안에 있어서 조정역할을 원만히 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 대표는 8월 새누리당 사무총장에 그를 임명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중앙대 선후배 사이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14년 7월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를 지지했다. 김무성 대표가 원내대표시절 함께 일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서 최고위원을 직접 찾아가 양해를 구했다.
미국 유학시절 옆집에 살면서 인연을 맺은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그를 정치로 이끈 인물이다. 그들은 한국인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시골 캔자스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더 끈끈한 사이를 이어갔다. 둘 다 훗날 정치인이 돼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당시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이웃에 살면서 같이 유학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