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 겸 바이오스타줄기세포기술연구원장. |
미국인들은 19세기가 될 때까지 토마토를 먹지 않았다.
먹으면 죽는다는 미신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1820년 뉴저지주에 사는 존슨 대령이라는 사람이 토마토를 한꺼번에 먹겠다고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존슨 대령이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자 미신이 깨졌고 미국인들은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다.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는 스스로를 ‘줄기세포 치료의 존슨 대령’이라고 말한다. 줄기세포 치료로 성과를 내 줄기세포 치료가 확산되는 시발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라 대표는 최근 네이처셀의 줄기세포 치료제 유효성을 놓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진실 공방’을 펼치고 있다.
라 대표는 ‘존슨 대령’이 될 수 있을까?
◆ 라정찬과 식약처의 진실게임, 근본 원인은 ‘인식 차이’
22일 라정찬 대표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는 배경에 줄기세포 치료의 인식차이가 핵심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식약처는 1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네이처셀의 퇴행성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조인트스템’의 조건부 품목허가를 불허했다.
거부 결정이 내려진 핵심 이유는 두 가지였다. 퇴행성 관절염이 흔한 질병인데 임상 환자가 13명에 불과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과 약효가 있다고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네이처셀 주가는 19일 하한가로 떨어졌다.
이에 네이처셀은 알츠하이머 치매 줄기세포 치료가 일본에서 승인을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20일 네이처셀 주가는 이 소식에 급락을 멈추고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1일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네이처셀의 줄기세포 승인을 놓고 “의약품 허가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큰 의미를 둘 만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고 네이처셀 주가는 21일 다시 하한가로 추락했다.
라 대표는 조인트스템 출시 불허 결정과 알츠하이머 줄기세포 치료제의 일본 승인 폄하 논란을 놓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적극 반박하고 있다. 양측이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사이 투자자들은 대혼란을 겪고 있다.
라 대표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갈등은 궁극적으로 줄기세포 치료제를 ‘의약품’으로 볼 것이냐 ‘기술’로 볼 것이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같은 증상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안정성이 보장되고 어느 정도 균일성이 입증되는 치료 결과가 나와야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금까지 파미셀의 ‘하티셀그램’, 메디포스트의 ‘카티스템’, 안트로젠의 ‘큐피스템’, 코아스템의 ‘뉴로나타-알주’, 티슈진의 ‘인보사’ 등에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를 내줬는데 모두 이런 조건을 충족했다.
반면 라 박사는 줄기세포 치료는 의약품의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 대표는 “줄기세포는 특성상 약과 재생의료 경계에 있다”며 “특히 자가유래 줄기세포는 개인에 따라 치료편차가 크게 나타나기에 효능과 처방의 표준화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라 대표는 일본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2007년 교토대학교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들어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2014년 줄기세포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일본은 약사법을 개정하고 재생의료 추진법을 신설했다. 일본 재생의료추진법은 안전성만 검증된다면 약효가 일정하지 않더라도 허가과정을 거쳐 줄기세포 치료를 허용하는 법안이다.
네이처셀도 2015년 일본에서 재생의료추진법을 통해 버거씨병을 치료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사용승인을 받았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안전성과 별개로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으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본처럼 줄기세포 치료를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통과되지 않고 있다.
◆ 라정찬의 명과 암, 그는 제2의 황우석일까
라정찬 대표는 1963년생으로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청주 신흥고, 서울대 수의학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제주대학교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 대표는 졸업 후 다국적제약사인 바이엘코리아 및 LG화학 팀장 등을 거쳐 2001년 서울대 수의대 교수 3명 등과 함께 바이오벤처인 알앤엘바이오를 설립했다.
알앤엘바이오는 2005년 코스피에 상장했고 라 대표는 큰 돈을 벌었다.
라 대표는 당시 황우석 박사와 함께 국내 줄기세포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황 박사가 수정란에서 얻은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한 반면 라 대표는 태반이나 성인의 골수·지방조직에서 추출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분야의 선구자였다.
두 사람은 특허기술을 놓고 법정 소송을 벌이기도 했으나 같은 업종 종사자로서 선의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조인트스템의 성과가 국제 학술지 온라인판에 게재됐을 당시 황우석 박사의 축하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라 대표는 2012년에는 재산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하며 사회복지법인 베데스다생명재단과 의료법인 예성의료법인, 재단법인 한국기독학술원, 학교법인 중앙학원에 각각 35, 35, 10, 10%로 나눠 10년 안에 증여한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라 대표는 끊임없는 구설수와 논란에도 휘말렸다.
국내에서 줄기세포 시술이 불법인 상황에서 그는 일본으로 환자를 보내 시술을 받게 했다. 이런 사실이 일본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보도됐고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정부와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011년 1월 보건복지부는 알앤엘바이오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라 대표는 주가조작, 불법시술,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고 알앤엘바이오는 2013년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이 폐지됐다.
라 대표는 이후 법원에서 대부분의 혐의와 관련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횡령 혐의는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돈을 회사를 위해 대부분 썼다는 점이 감안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라 대표는 논란 속에 2016년 1월 네이처셀 대표로 복귀했다. 그리고 최근 바이오기업 주식 열풍 속에서 또다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라 대표는 명예회복을 꿈꾸고 있다.
그가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제2의 황우석 박사처럼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