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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분기매출 1조를 연 M&A의 귀재
김희정 기자 mercuryse@businesspost.co.kr 2014-10-01 08: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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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


차석용은 1953년 6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입대해 만기전역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70년대 당시 학부과정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미국에서 회계학 학부와 경영학 석사, 로스쿨을 마치고 미국 P&G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입사 14년만에 한국P&G 총괄사장이 됐다.

뛰어난 경영수완이 알려지면서 법정관리중이던 해태제과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차석용은 3년간 사장을 지내며 해태제과의 흑자전환을 이끌었다.

이후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스카우트 되어 올해 10년째 CEO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사업을 키웠고 그 덕분에 LG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M&A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그를 대변한다.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으로 부임한 뒤 2007년 말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음료, 바이올렛드림, 일본 긴자스테파니, 캐나다 후르츠앤패션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LG생활건강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덩치를 키웠고 음료사업을 보강해 사업 다각화도 성공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의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경영성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차 부회장의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36분기 연속 흑자를 냈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어났다. 과거 5% 중반에 머물던 영업이익률은 두자릿수까지 상승했다.

2013년 매출 4조원 시대를 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차 부회장 취임 당시 LG생활건강의 주가는 2만8천 원에 불과했지만 취임 3년 후 20만 원대로 올랐고 2012년부터 50만원을 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CEO를 맡아 10년째 장수하고 있으며 2011년 LG그룹 부회장에 올라 샐러리맨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위까지 올랐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5년 미국 P&G에 입사해 1994년 필리핀P&G 이사가 됐다. 1996년 P&G 아시아본부 종이제품 수석재무담당에 올랐고 이듬해 아시아본부 템폰사업본부 사장에 임명됐다. 1997년 한국P&G가 쌍용제지를 인수하며 차석용 부회장은 1998년 쌍용제지 사장을 맡았다.

이어 1999년 1월1일자로 P&G 한국총괄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쌍용제지와 한국P&G 대표이사 사장을 겸직했다. 한국P&G 대표로서 유아용품 여성위생용품 식음료품 등 6개 사업분야를 총괄했다.

2001년 10월 해태제과 사장에 스카우트 됐다. 해태제과는 1997년 부도가 난 후 외국의 투자 컨소시엄에 인수된 상태였는데 차 부회장은 사장이 된지 1년만에 “회사를 기대 이상으로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해태제과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완전연봉제를 실시하고 과장 차장 등의 호칭을 없애는 등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호두마루’ 등 신제품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해태제과의 3년 연속 고성장을 이끌었다.

2004년 12월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스카우트 됐다. LG그룹에서 외부인사를 사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 이례적인 인사였다. 그만큼 LG생활건강은 실적개선이 절실했고 차 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7년 10월 한국코카콜라를 인수해 코카콜라음료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차 부회장은 한국코카콜라를 인수하고 2분기도 채 안 돼 흑자로 전환시켰다.

2009년 더페이스샵 지분 90%를 인수해 브랜드숍이 없던 LG생활건강의 화장품사업을 확대했다.

2011년 12월 그간의 실적을 인정받아 LG그룹 사상 처음으로 외부영입 인사(퇴직관료 제외)가 부회장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LG그룹은 당시 “차 부회장은 사장 취임 후 27분기 연속 두 자릿수의 매출 및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LG생활건강 주가를 15배 이상 높이는 등 남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놀라운 경영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 학력

1974년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이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미국으로 떠나 뉴욕주립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패물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주립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땄다.

졸업 후 곧바로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1983년 MBA 과정을 마쳤고 법조인에 대한 미련으로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느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1985년 미국 생활용품 회사 P&G에 입사했다.

◆ 가족관계

부인 신정희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12년 제 11회 한국SCM대상 개인부문 수상(지식경제부 장관표창)

-2010년 제44회 납세자의 날 모범 납세자 대통령 표창

-2009~2011년 홍콩 ‘아시아머니(Asiamoney)’지가 뽑은 ‘한국 최고경영자’ (3년 연속 선정)

-2008년 전문직여성한국연맹이 주최하는 제15회 BPW 골드 어워드

-2002년 외자유치 유공 국무총리 표창

◆ 상훈

-2012년 제 11회 한국SCM대상 개인부문 수상(지식경제부 장관표창)

-2010년 제44회 납세자의 날 모범 납세자 대통령 표창

-2009~2011년 홍콩 ‘아시아머니(Asiamoney)’지가 뽑은 ‘한국 최고경영자’ (3년 연속 선정)

-2008년 전문직여성한국연맹이 주최하는 제15회 BPW 골드 어워드

-2002년 외자유치 유공 국무총리 표창

어록


“제가 취임한 뒤 LG생활건강의 가장 큰 변화는 상명하달 문화에서 벗어나 구성원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생각이 자라고 안목이 높아지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또 그런 인재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2009/12/27, 인터뷰에서)

“사실 예전에 가격을 정해 놓고 어떤 재료를 선택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일단 제품부터 만든다. 가격은 그 뒤에 저절로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 차별화된 제품을 낼 수 없다.”(2006/06/15, 인터뷰에서)

“사람이 창의적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하는 때는 20∼30대입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기업에서 머리가 오징어처럼 말라비틀어진 부장·임원 밑에서 20∼30대 인재들이 대리·과장으로 10년씩 썩는 구조이지요. 오전 내내 일장연설식 회의를 하고 점심 먹으러 나가 오후 2시가 넘어 들어와 대충 보고받고 오후 4시가 돼야 업무 지시를 내리는 중간관리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신입사원은 오후 4시부터 야근준비를 해야 하지요.”(2005/05/09, 연세대학교 특강에서)

“근무시간에만 일에 집중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게 오히려 나아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편한 출근시간을 고르게 한 뒤 칼퇴근을 지시합니다.” (2005/03/27, 인터뷰에서)

◆ 평가

'M&A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그를 대변한다.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으로 부임한 뒤 2007년 말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음료, 바이올렛드림, 일본 긴자스테파니, 캐나다 후르츠앤패션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LG생활건강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덩치를 키웠고 음료사업을 보강해 사업 다각화도 성공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의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경영성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차 부회장의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36분기 연속 흑자를 냈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어났다. 과거 5% 중반에 머물던 영업이익률은 두자릿수까지 상승했다.

2013년 매출 4조원 시대를 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차 부회장 취임 당시 LG생활건강의 주가는 2만8천 원에 불과했지만 취임 3년 후 20만 원대로 올랐고 2012년부터 50만원을 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CEO를 맡아 10년째 장수하고 있으며 2011년 LG그룹 부회장에 올라 샐러리맨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위까지 올랐다.

◆ 기타

원래 꿈은 법조인이었다. 자신이 법조인이 못 된 게 아쉬워 아내와 딸에게 로스쿨을 다니게 했다.

취미는 클래식음악 감상과 애완견 돌보기다. 클래식음악을 좋아해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출근시간이 매일 아침 6시로 고정돼 있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생활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2013년 기업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중 최고의 주식부자로 조사됐다. 2013년 3월 기준 차 부회장의 주식평가액은 251억9659만원이었다. 최근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장학사업 등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서 1년간 재수했다.

군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일주일만에 "말이 안통하고 도저히 적응이 안돼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부모님께 떼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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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한국에 이런 훌륭하신 경영자가 계시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2019-04-19 20: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