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HD현대그룹의 '살림꾼'인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이 만만치 않은 임기 첫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발 관세전쟁 우려에 글로벌 수요가 위축돼 수익성을 가늠하는 정제마진 하락이 전망되는 가운데 유가도 내림세를 보여 재고평가손실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이 임기 첫해부터 재무안정이라는 과제와 씨름하게 됐다. |
송 사장은 자신의 경력을 살려 HD현대오일뱅크의 재무를 안정시키면서 업황 악화기를 대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250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정해져 있지만 발행사 결정에 따라 상환을 연기할 수 있는 구조로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기업 관점에서는 부채비율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자금조달 수단으로 여겨진다.
반면 채권자 관점에서는 낮은 상환 우선순위와 이자지급 유예 등 위험이 있어 일반 회사채보다 높은 수준에서 금리가 결정된다.
기업에게 높은 이자 부담은 있지만 당장의 재무구조 개선과 업황 악화 대비를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HD현대오일뱅크에선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HD현대오일뱅크가 최근 재무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정유업계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발행이 유력히 검토되는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오일뱅크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연결 기준 236%로 2023년말(205.4%)보다 30%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과거 석유화학 부문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3조4천억 원 가량을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및 폴리머 공정에 투자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전까지 유지했던 고배당 정책을 내려놓고 재무안정성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 결산실적과 관련한 배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HD현대오일뱅크 연결기준 배당금은 지난해 4099억 원, 2023년 5978억 원, 2022년 4442억 원으로 신종자본증권 배당(이자지급)을 더하면 연평균 5천억 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취임해 올해 새 임기를 갓 시작한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으로서는 올해 만만치 않은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송 사장은 이전 대표인
주영민 사장이나
강달호 부회장과 달리 HD현대그룹 대표 재무 전문가로 손꼽힌다.
주 전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 강 전 부회장은 화학공학 전문가로 송 사장과는 사뭇 다른 이력을 지녔다.
송명준 사장은 1969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뒤 HD현대그룹 내에서 움직이며 현대중공업 중국 지주사 재무총괄과 HD현대오일뱅크 경영기획부문장, HD현대 재무지원부문장 등을 거쳤다.
송 사장은 현재 HD한국조선해양 재무지원실장과 HD현대 재무지원실장도 겸직해 HD현대 그룹주요 계열사 및 전체 살림도 도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와 합을 맞춘 경험을 고려해 그룹 내 ‘믿을맨’이란 평가도 나온다.
송 사장이 HD현대그룹 계열사 여러 곳을 오갔지만 그 가운데서도 HD현대오일뱅크는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현대오일뱅크 경영기획부문장, 2019~2021년 기획/재무실장과 경영지원본부장을 거쳤고 2023년부터는 비상근 사내이사로 일했다.
정유업계에선 이 같은 송 사장의 이력을 고려해 지난해 HD현대오일뱅크 대표 선임을 두고 악화되는 정유업황에 대비해 재무 안정을 도모하려는 인사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정유 업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평균 가격은 배럴당 63.45달러로 지난해 4월(84.39달러) 33% 가량 하락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가 하락으로 정제마진은 최근 6달러선까지 내려와 손익분기점으로 평가되는 4~5달러선에 다가섰다.
이런 업황 악화 상황을 고려해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상장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줄하향하기도 했다.
유가하락은 정유사의 재고평가손실을, 정제마진은 수익성 하락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업황 악화 아래 연결기준 매출 30조4686억 원, 영업이익 2580억 원을 거뒀다. 2023년보다 매출은 8.3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8.1% 감소한 것이다. 영업외 비용 부담도 커져 순손실을 보며 적자로 돌아섰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국내 정유산업 수익성은 지난해보다 개선이 예상되지만 비정유 부문 투자부담으로 잉여현금창출흐름은 제한적이고 산업 전체 차입부담은 이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다만 업황 악화에도 HD현대오일뱅크 신용도를 향한 금융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월에 실시한 올해 첫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는 목표액 1500억 원의 5배가 넘는 8300억 원의 주문을 받았다.
한국기업평가는 HD현대오일뱅크를 두고 “지난해말 연결 기준 단기상환 부담은 높지 않는 등 유동성 대응 능력은 매우 우수하다”며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영업현금창출력이 부진하면 재무구조 개선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다”고 내다봤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