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경 기자 huiky@businesspost.co.kr2025-02-1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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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단일 게임 성적표에 의존하는 흐름이 짙어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소수의 흥행작에 기대 몸집을 불린 게임사들이 단일 게임의 성과에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흥행작들은 매출 성장기에는 급격한 실적 성장을 이끌며 효자 역할을 하지만, 하향세에 들어설 때는 회사 전체 매출에 직격탄을 주며 기업의 실적 악화를 키운다. 게임사들도 이 같은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파이프라인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1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지난주(10~14일) 진행된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 발표에서는 업체별로 성적이 극명히 엇갈렸다.
크래프톤은 대표작 배틀그라운드(PUBG)의 지속적인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크래프톤은 2024년 연결기준 매출 2조7098억 원, 영업이익 1조1825억 원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썼다. 이는 2023년과 비교해 각각 41.8%, 54% 증가한 수치다.
서비스 8년 차에 접어든 장수 게임임에도 지역 확장과 꾸준한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트래픽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러한 고성장세가 올해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현재 주력 지적재산권(IP) 외 흥행 신작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과금 피로도와 지난해 실적 기저에 따라 2025년 배틀그라운드의 성장률은 크게 둔화될 것”이라며 “신작을 통한 개발과 퍼블리싱 역량 증명없이는 기업가치가 확장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크래프톤의 2022년 기준 전체 매출에서 배틀그라운드 IP가 차지하는 비중은 87%로 집계됐다. 이후 존재감을 드러내는 신작이 없었던 만큼 현재도 이 비중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프트업도 대표작 ‘니케: 승리의 여신’(이하 니케)의 꾸준한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시프트업은 지난해 연간 매출 2199억 원, 영업이익 1486억 원을 달성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30.4%, 33.8% 증가한 수치다.
올해 2분기 출시된 ‘스텔라 블레이드’가 흥행하면서 ‘니케’에 대한 의존도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연간 매출에서 ‘니케’가 차지하는 비중은 69.6%에 이른다. 콘솔 게임 특성상 ‘스텔라 블레이드’의 지속적인 매출을 유지하기 힘든 만큼 ‘니케’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반면 대표작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실적에 타격을 입은 기업들도 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 등 기존 인기작의 매출이 감소하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도 함께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2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엔씨소프트는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1조5781억 원, 영업손실 109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1.3%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적자로 전환됐다.
이는 엔씨소프트가 창립 26년 만에 처음 기록한 영업손실이다. 회사는 체질 개선을 목표로 전사적인 조직 효율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적자를 냈다.
엔씨소프트의 주력 게임인 리니지 시리즈를 비롯한 모바일 MMORPG 시장이 국내에서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실적 부진과 함께 사업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커졌다. 다만 리니지 IP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지난해 기준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부문 매출에서 리니지 IP가 차지하는 비율은 98%, PC 온라인 부문에서도 52%를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도 주요작 ‘오딘: 발할라 라이징’의 매출이 하향 안정화되자 수익성이 악화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65억 원을 내면서 실적이 2023년과 비교해 92% 가량 큰 폭으로 줄었다.
단일 IP에 대한 의존은 단기적으로 높은 실적으로 연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게임에 자원과 운영 부담이 집중되다 보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가 쉽지 않고, 시장 트렌드 변화에 대한 대응력도 떨어진다”며 “특히 최근에는 게임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면서 개별 게임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어 원 IP 리스크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게임사들은 새로운 IP 파이프라인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자체 IP 개발을 넘어 외부에서 IP를 수혈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 11일 진행된 컨퍼런스 콜에서 공격적인 제작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차세대 IP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에 준하는 대형 IP 개발을 위해 5년 동안 연 3천억 원 수준의 개발비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5년 뒤 PUBG 스튜디오(배틀그라운드 개발 자회사) 매출 비중을 6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넥슨 역시 기존 던전앤파이터 IP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게임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기존 주요 IP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등을 활용한 신작을 통해 사업성 확장을 노린다.
엔씨소프트도 신규 지식재산(IP)에 투자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신규 IP 확보에 600~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면서 장르 다각화와 플랫폼 다양화를 추진한다. 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