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 브라이키 CEO가 14일 스탁스팟 사무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슈퍼애뉴에이션 펀드시장 진출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탁스팟 사무실은 옛 산업지역을 새롭게 개발한 호주 시드니 바랑가주 해안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시드니(호주)=비즈니스포스트] “10년 전 호주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80억 호주달러 규모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천억 호주달러 수준으로 커졌다.”
14일 시드니 중심업무지구 서쪽 바랑가루 해안가 인근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크리스 브라이키 스탁스팟 최고경영자(CEO)는 ETF로만 구성한 퇴직연금 상품에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10년 만에 시장이 25배 크기로 불어났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탁스팟은 2014년 브라이키 CEO가 직접 창업한 호주 최초의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운용사다. 올해 딱 10년차를 맞았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사무실에는 바로 지난주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사용한 풍선장식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브라이키 CEO는 회사의 다음 10년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먹거리로 슈퍼애뉴에이션을 찍었다.
현재 ETF로 구성된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호주 퇴직연금시장 직접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시장은 강한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10년 전에는 진입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스탁스팟 상품들이 훌륭한 수익률 기록 등 성과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탁스팟은 로보어드바이저라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으로 규제와 경쟁이 만만찮은 슈퍼애뉴에이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는 자동화 개인화 서비스를 통한 낮은 수수료와 기존 대형 기금형 펀드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ETF를 앞세운 스탁스팟의 무기로 꼽았다.
브라이키 CEO는 “스탁스팟의 슈퍼애뉴에이션 상품은 호주 최초의 ETF 전용 펀드가 될 것이다”며 “ETF는 수년 동안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훌륭한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받고 있는데 아직 다른 슈퍼 펀드들이 ETF를 포트폴리오에 적극 활용하고 있지 않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브라이키 CEO는 특히 젊은 세대의 30년, 40년, 50년 뒤를 위한 슈퍼애뉴에이션 시장에서는 ETF 상품이 투자의 효율성과 성과를 더욱 높여줄 수 있다고 바라봤다.
미래에 얼마나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개인맞춤형 자산구성과 낮은 수수료인데 ETF가 이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는 거대한 기금형 펀드들이 슈퍼애뉴에이션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정부도 엄격한 성과관리를 통해 소규모 펀드들의 통폐합을 유도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유도하고 있다.
▲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스탁스팟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서류작업을 해야 하는 크리스 브라이키 CEO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출근한 직원 1명, 컴퓨터 작업을 하는 직원 1명 등 3명만 출근해 사무실이 한가로웠다. <비즈니스포스트> |
이런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스탁스팟의 슈퍼애뉴에이션 펀드시장 직접 진출은 그야말로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브라이키 CEO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시장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호주 근로자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3조7천억 호주달러(약 3360조 원) 규모의 이 거대한 시장은 수익률 경쟁 외에 수수료 등 가격 경쟁에서는 아직 치열하지 않다는 것이다.
브라이키 CEO는 “호주에는 2천억, 3천억 호주달러 규모의 슈퍼애뉴에이션 펀드들이 있고 이들의 규모를 고려할 때 회원들에게 점점 더 낮은 비용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대형 슈퍼애뉴에이션 펀드의 수수료는 연간 약 1% 안팎 수준을 보인다. 반면 퇴직연금 펀드 사이 가격 입찰 시스템을 구축한 칠레에서는 수수료를 연간 0.3% 수준까지 낮춘 사례가 있다.
브라이키 CEO는 수익률에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 상품들은 이미 현지 주식과 글로벌 주식, 채권, 부동산, 인프라, 광물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호주 퇴직연금시장은 수익률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시스템이다. 시장 진출 자체로 곧 수익률을 인정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브라이키 CEO는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다시 꼬박 사무실에 앉아서 슈퍼애뉴에이션 상품 출시를 위한 각종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며 미소를 보였다.
▲ 호주 시드니 달링하버 쪽에서 바라본 바랑가주 새 빌딩들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그는 “10년 동안 사업을 구축하면서 배운 것은 사람들이 돈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신뢰를 갖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좋은 기술과 시스템,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으면 소규모 슈퍼 펀드로도 매우 효율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라이키 CEO는 글로벌 운용사 UBS에서 오랫동안 펀드 매니저로 일했고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 디지털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펀드 매니저로 일할 때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투자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소액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도 손쉽게 전문적 자문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자고 마음먹고 스탁스팟을 세웠다.
스탁스팟은 2023년 8월 한국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인수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약 2800만 호주달러(약 240억 원)를 투자해 스탁스팟 지분 약 53%를 확보했다.
브라이키 CEO는 현재 세 아들을 두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다섯 살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프랑스 요리 ‘비프 부르기뇽’을 하루 종일 함께 만든다. 스팟스팟 사무실이 있는 바랑가루 해안가를 따라 10분 정도만 걸으면 나오는 시드니동물원에서 코알라를 보러 가는 날도 많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