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지분 승계의 자금줄로 여겨지는 한화에너지 덕분에 지분 확대가 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본부장 등 3명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김동관 부회장이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본부장이 각각 25%씩 들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애초 에이치솔루션의 100% 자회사였다. 에이치솔루션은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사장, 김동선 본부장이 지분을 각각 50%, 25%, 25% 들고 있는 세 형자의 개인 회사였다.
하지만 한화에너지가 2021년 8월 모회사인 에이치솔루션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의 지분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화에너지는 2021년 결산배당으로 501억 원을 세 형제에게 지급했다. 김 본부장이 수령하게 된 배당금만 모두 125억 원가량인 것으로 파악된다. 김 본부장은 에이치솔루션 시절 때도 꾸준히 배당받았는데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에이치솔루션에서 받은 배당만 모두 59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김 본부장이 에이치솔루션, 한화에너지 등에서 받은 배당은 모두 700억 원이 넘는 셈인데 이렇게 모은 돈을 결국 한화갤러리아 지분 매입에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김 본부장이 여태껏 받아온 배당금만 활용해도 한화갤러리아를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화갤러리아 시가총액은 최근 주가가 급등한 덕분에 3천억 원 수준까지 커졌지만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천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배당금을 사용하면 단숨에 한화갤러리아 지분 35%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화갤러리아 최대주주가 지분 36.31%를 보유한 한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 본부장이 한화를 제치고 단독 최대주주에 오르는 일이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조금씩만 사들이는 이유로는 한화그룹 유통 사업을 안정적으로 승계한다는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본부장이 한화갤러리아 경영 전면에서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지는 이제 막 1~2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화갤러리아 100% 자회사인 에프지코리아를 설립해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선보인 지난해 6월부터 그의 경영 행보가 본격화했다.
이후 한화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 한화로보틱스 전략담당 임원 등의 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한화그룹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영향력을 조금씩 높여가는 동시에 지분도 꾸준히 매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화그룹의 유통사업을 맡을 적임자라는 성장 스토리가 효과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실제로 한화그룹에서도 김 본부장의 한화갤러리아 지분 매입을 ‘책임 경영’ 때문이라고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김 본부장의 한화갤러리아 지분 매입이 소량씩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배경에는 형인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사장이 장차 물려받을 것으로 여겨지는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다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있을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김동관 부회장에게 한화그룹의 방산과 화학 계열사를, 김동원 사장에게 금융 계열사를, 김동선 본부장에게 유통 계열사를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 지분 4.91%와 한화에너지 지분 50%만 보유하고 있다. 김동원 사장은 한화 지분 2.14%와 한화에너지 지분 25%, 한화생명보험 지분 0.03%만 들고 있다.
▲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지난해부터 부쩍 그룹 내 경영 보폭을 넓혔다. 사진은 김 본부장이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현장 서비스 업무를 직접 체험하는 모습. <한화갤러리아>
형들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막내인 김 본부장만 한화갤러리아 지분을 단번에 늘리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한화그룹이 향후 공식적으로 지분을 승계하는 절차에 들어가면 그때서야 김 본부장의 한화갤러리아 지배력 확대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김 본부장의 지분 매입과 관련해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다"며 "그 이외의 배경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김 본부장에게 한화갤러리아 지분 확대만큼 중요한 것은 한화그룹 주요 유통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한화와 한화솔루션이 지분을 각각 49.80%, 49.57% 보유한 회사다. 한화커넥트와 아쿠아플라넷, 더테이스터블, 한화넥스트 등 11개 계열사에 출자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와 에프지코리아 등 2개 회사에만 출자한 것과 대비된다.
한화그룹 유통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인데 현재 김 본부장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지분을 전혀 들고 있지 않다. 향후 한화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대한 김 본부장의 지배력을 강화해줄 방법을 찾을 것으로 증권가는 바라보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