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TSMC의 구마모토 반도체공장 건설에 모두 12조 원 넘는 보조금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만 TSMC 반도체 생산공장. < TSMC >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자국 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대만 TSMC의 공장 투자에도 대규모 보조금을 들이며 물량공세에 나서고 있다.
한국과 대만, 미국 등 주요 국가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반도체 제조 공급망과 전문인력 기반을 갖춰내려면 TSMC의 도움이 필요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TSMC의 구마모토 반도체공장 건설에 9천억 엔(약 8조1천억 원) 규모 보조금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새로 책정되는 보조금은 TSMC가 2조 엔(약 18조 원)을 들이는 구마모토 제2공장에 제공된다. 전체 투자금의 절반 가까운 금액을 정부 예산으로 책임지는 셈이다.
2024년 가동을 앞두고 있는 구마모토 제1공장 역시 전체 투자금의 약 40%에 해당하는 4760억 엔(약 4조3천억 원)이 일본 정부 보조금으로 조성됐다.
일본이 TSMC의 반도체공장 투자 유치에 모두 12조 원 이상의 지원금을 퍼붓고 있는 셈이다.
TSMC가 최근 투자를 확정한 구마모토 제2공장은 6나노에서 12나노 미세공정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차 또는 전기차에 쓰이는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소니와 혼다,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 등이 이미 주요 고객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TSMC가 공격적으로 일본 내 파운드리공장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은 정부 지원 이외에도 이러한 고객사로부터 충분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일본 정부는 TSMC에 보조금 지원에 따른 대가를 받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TSMC가 일본의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여당인 자유민주당의 세키 요시히로 중의원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정부의 반도체산업 지원 계획을 언급하며 “정부 도움의 대가로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TSMC 단일 기업에 제공하는 정부 보조금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인 만큼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TSMC와 일본 기업들 사이 공동 연구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세키 의원은 TSMC가 일본의 반도체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일본 라피더스와 협력하는 미국 IBM의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웨이퍼 이미지. < IBM > |
일본 정부는 이번에 TSMC뿐 아니라 라피더스에도 5900억 엔(약 5조3천억 원) 상당의 신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라피더스의 일본 홋카이도 반도체공장에 3300억 엔(약 3조 원)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신생 반도체기업으로 이르면 2027년부터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일본의 기술력이 현재 40나노급 미세공정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소 무리한 목표다.
2나노 반도체 원천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 IBM이 라피더스와 기술 협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로 반도체공장을 운영할 전문인력 기반을 충분히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TSMC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협력 및 전문인력 육성을 요구한 것은 결국 라피더스에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노하우를 전수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셈이다.
TSMC는 2025년부터 대만 공장에서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을 앞두고 있다.
라피더스가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 새 경쟁자로 뛰어든다면 중장기적으로 TSMC와 수주 경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TSMC 입장에서는 라피더스를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의지가 뚜렷한 만큼 앞으로 TSMC가 보조금을 받고 공장을 설립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기술 공유와 관련한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는 “일본 정부가 TSMC에 책정한 지원금 규모는 향후 논의 과정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며 아직 지원 정책에 불확실성이 남아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