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T가 새 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멎은 줄 알았던 정치 외풍을 또 다시 맞으며 난감한 처지가 됐다.
차기 대표 후보자를 4인으로 압축한 결과에 대해 정부와 여당에서 노골적으로 못마땅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KT 차기 대표 후보군 선정 결과를 번복하거나 패자부활전을 열기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 KT가 새 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정치적 외풍을 시달리고 있다.
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차기 대표 경선에 참여할 4인 후보자 선출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문제를 삼고 나서자 곤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의 사퇴로 여권이 문제삼은 '셀프연임' 문제가 해소됐음에도 국민의힘이 차기 대표 선출과 관련해 압박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민의힘 위원들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 이사회는 차기 대표 지원자 33명 가운데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 사장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KT 이사회는 지난달 말 차기 대표 경선에 도전한 33명을 심사해 최종 후보로 △박윤영 전 KT기업부문장(사장)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부문장(부사장)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사장 등 KT 전현직 임원 4명을 최종 후보로 뽑았다. 이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라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검찰과 경찰은 수사 대상인 구현모 현 대표와 그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하고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발동해 KT가 특정 카르텔의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엄단 대책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도 여기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민생에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회사, 특히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며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에서 KT 대표 경선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KT 대표 후보 압축 결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KT로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두 번이나 최종 대표를 확정지어 놓고도 여권의 압박으로 이를 번복한 데다 가장 유력했던 대표 후보인 구현모 현 사장이 연임을 포기하는 결단까지 내린 상황에서 또 다시 여권이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실과 여당이 KT 지배구조에 일제히 문제를 제기했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은 물론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향해 신호를 보낸 만큼 KT 경영진이 느낄 압박감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권도 차기 대표 문제로 집요하게 KT를 압박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KT가 대표 확정 결과를 두 번이나 번복하고 공개 경선을 채택해 최대한 성의를 보였는데도 또 딴지를 거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이 KT의 대표 선출 과정을 비판하는 논리가 빈약하다는 시각도 많다. KT 대표 공개모집에 응모한 후보자 33명 가운데 KT 출신은 25명이다. 외부인사로 도전한 18명 가운데서도 전직 KT 출신이 9명이나 된다.
애초 KT 출신 도전자가 많았던 셈이다. 게다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내부 조직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은 충분히 가산점으로 고려될 만한 요소다.
게다가 KT 대표 후보를 심사한 인선자문단은 KT 외부에서 꾸려졌다. 구성원은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 김주현 김앤장 변호사(전 법무부 차관), 신성철 과학기술협력대사(전 카이스트 총장), 정동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정해방 전 기획예산처 차관 등 5명이다.
공개 모집 방식을 채택한 데다 외부 인선자문위원까지 선임해 대표 진행한 까닭에 선발 절차를 놓고 비교적 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여권의 압박이 KT 대표 선발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지 여부와 별개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KT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식시장에서는 여권의 압박을 만만치 않은 리스크로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구현모 사장이 연임 포기를 발표한 다음날인 2월24일 KT 주가는 1250원 내린 3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4% 가까운 낙폭이다.
당일 구 사장의 연임 포기 외에 특별한 사안이 없었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동종업계 주가가 소폭 상승했던 점을 고려하면 구 사장의 연임포기가 주가를 떨어뜨린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주가의 흐름도 지지부진해 2월28일 52주 최저가인 2만9800원을 찍기도 했다.
KT 대표로 누가 선정되든 앞으로 정권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 경영 활동을 할 공산이 큰 점도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통신업종은 정부의 규제를 많이 받는 업종으로 꼽힌다. 현재 통신업계에는 요금제 인하, 제4이동통신사 출범 등의 민감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기도 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KT 새 대표로서는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일보다 정부·정치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기조로 경영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들고 나온 '스튜어드십 코드' 카드가 본래 목적인 기업가치 제고 보다는 자기 사람을 심는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고 투명한 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주총회에서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는 지침을 말한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여당 국회의원은 연일 KT 사장 선임을 문제 삼았고 정부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을 앞세워 연임 포기를 종용했다. 경찰,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사정기관까지 나서 구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고 한다”고 현 정부를 맹비난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KT 차기 최고경영자 이슈가 애초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악재로 변화하는 양상”이라고 파악했다. 애초 구현모 사장의 연임이 유력하게 점쳐지며 KT 주가도 긍정적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표 선정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탓에 기업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