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성과를 내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글로벌 동맹을 구축하면서 한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맞서 한국 반도체기업의 현지 투자 확대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 큰 딜레마를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4일 논평을 내고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를 구석으로 몰아넣기 위해 동맹국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중국은 이에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중국에 첨단 반도체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새 규제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국가와 힘을 합쳐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는 데 의미있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일본 및 네덜란드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핵심 반도체장비와 소재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다. 이들이 수출 규제를 시행한다면 중국 반도체산업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최근 미국에서도 현지 기업들이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중국에 수출하기 어려워진 만큼 장비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끊기게 되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도 미국과 반도체 분야 협력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의 미국 투자 확대가 두 국가의 관계 강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미세공정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현지 투자 규모를 400억 달러까지 늘린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대만 정부가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해 TSMC의 첨단기술 해외 투자에 부정적 태도를 보여 왔지만 한 발 물러나면서 미국과 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 대만을 포함하는 반도체 국가 연합 ‘칩4 동맹’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올해까지도 논의에 큰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중국 반도체산업 견제라는 목적 아래 한국과 일본, 대만이 서로 협력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전략을 바꿔 일본과 대만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접근 방식을 통해 이들과 반도체 분야 동맹을 강화하는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과 반도체 협력 강화 논의에 다소 소외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은 세계 반도체 상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 견제에 손을 잡아야 할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을 반도체 최대 수출국으로 두고 있고 중국에 반도체공장도 상당한 규모로 운영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딜레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
한국이 미국을 뒤따라 중국 반도체산업 견제에 동참한다면 자연히 중국 정부의 반발을 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런 점을 고려해 칩4 동맹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려던 계획을 바꿔 일본과 네덜란드, 대만을 동맹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자연히 미국이 한국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다소 힘을 잃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한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반도체 투자 확대 등을 유도하는 정책을 꺼내들며 한국 정부 및 반도체기업이 더 큰 딜레마를 안을 수밖에 없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자체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1조 위안(약 186조 원)에 이르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에 시설 투자를 벌이는 반도체기업을 지원해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는 주로 중국 반도체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으로 분석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해외 반도체기업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경쟁력과 중국 내 고객사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에 꾸준한 투자를 벌여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투자를 진행한다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어 증설 투자 가능성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13일 대한상의가 주최한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한국과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 개선을 위해 경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첨단 제조업 등 분야에서 한국의 발전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 반도체산업을 향한 ‘러브콜’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투자는 미국 정부와 한국의 관계 악화를 이끌 수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생산장비 반입에 관련한 미국의 규제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유력하다.
결국 미국이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 반도체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중국이 한국에 활발히 손을 내미는 상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및 한국 정부의 외교, 무역 분야 정책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은 중국 반도체 공급망 고립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은 한국보다 더 미국에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