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장윤경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2016-03-31 09: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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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강유식 LG경영개발원 부회장.
강유식은 1948년 11월 3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화학에 입사했다.
LG전자와 LG반도체로 옮겨 근무하다 금성일렉트론 전무로 발령이 났다. LG반도체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LG그룹 회장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LG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며 사장으로 승진했고 부회장에 오른 뒤 지주회사인 LG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LG경영개발원에 재직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고, LG전자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LG그룹에서 오랫동안 구본무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1970년대 중반 구본무 회장이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을 무렵 같은 부서 대리로 일하면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LG그룹의 지주회사를 도입해 총수 일가인 구씨와 허씨 지배주주들의 계열 분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를 이끌면서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조정, 출자구조 재편 등 LG의 구조조정 업무를 성공적으로 진두지휘 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기업과의 합작법인 수를 97년 말의 5개에서 13개로 늘렸다.
필립스 등 해외업체들과의 합작을 통해 65억 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상장. 등록법인 수를 10개에서 17개사로 늘리는 등 LG의 재무건전성과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11월 실시된 인사에서 LG인화원과 LG경제연구원을 산하에 둔 LG경영개발원으로 이동했다.
그룹 내 최장수 CEO였던 김반석 LG화학 부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게 된 것을 두고 그룹 내에서 경영권 승계와 연결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LG 측은 “시장 선도와 성과 창출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고 이번 인사 역시 이에 맞춘 것이다. 후계와 관련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상황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시간을 20∼3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보고서도 요점만 간단히 하게 하는 편이다. 메모만으로 보고를 해도 문제삼지 않을 만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말 수는 적은 편이지만 논리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2년 LG화학에 입사했다. 1987년 LG전자, 1992년 LG반도체로 옮겨 근무했다. 1994년 금성일렉트론 전무이사, 1995년 LG반도체 전무이사와 1996년 부사장을 지냈다.
그룹 내 핵심인 전자와 반도체 분야 임원을 거치며 치밀한 업무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1997년 그룹 회장실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15년 넘게 구본무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해 왔다.
IMF 당시 구조조정본부 부본부장과 본부장을 거치면서 LG그룹의 구조조정을 총괄했다. LG그룹의 지주사체제 전환을 지휘했으며 2003년부터 LG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2년 11월 단행된 임원 인사에서 10년간 이어왔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LG경영개발원으로 옮겨 현재 재직하고 있다. 2002년부터 LG전자, 2003년부터 LG, 2011년부터 LG디스플레이 등기임원에 등재됐다.
2016년 3월 18일 개최된 LG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강유식이 맡고있던 이사회 의장은 구본준 LG 부회장이 이어 받았다.
◆ 학력
1967년 청주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상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장남인 강환종은 미국 카네기멜론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 상훈
1994년 무역의 날 수출입 진흥에 힘쓴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상훈
1994년 무역의 날 수출입 진흥에 힘쓴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어록
“지금 여러분이 꿈꾸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끝까지 꿈을 놓치지 말라. 자기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도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정도를 걷는 것이 중요하다. 정도가 성공을 향한 가장 확실한 길이다.” (2013/08/08,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2013 연암장학생 증서수여식’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핵심요소인 지식기반 사회인 만큼 우리나라의 경쟁력인 여러분 같은 인재가 희망입니다" (2008/08/04 2008 '연암 장학생 증서 수여식'에서)
◆ 평가
LG그룹에서 오랫동안 구본무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1970년대 중반 구본무 회장이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을 무렵 같은 부서 대리로 일하면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LG그룹의 지주회사를 도입해 총수 일가인 구씨와 허씨 지배주주들의 계열 분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를 이끌면서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조정, 출자구조 재편 등 LG의 구조조정 업무를 성공적으로 진두지휘 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기업과의 합작법인 수를 97년 말의 5개에서 13개로 늘렸다.
필립스 등 해외업체들과의 합작을 통해 65억 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상장. 등록법인 수를 10개에서 17개사로 늘리는 등 LG의 재무건전성과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11월 실시된 인사에서 LG인화원과 LG경제연구원을 산하에 둔 LG경영개발원으로 이동했다.
그룹 내 최장수 CEO였던 김반석 LG화학 부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게 된 것을 두고 그룹 내에서 경영권 승계와 연결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LG 측은 “시장 선도와 성과 창출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고 이번 인사 역시 이에 맞춘 것이다. 후계와 관련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상황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시간을 20∼3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보고서도 요점만 간단히 하게 하는 편이다. 메모만으로 보고를 해도 문제삼지 않을 만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