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자본규제를 강화하는 새 회계기준 도입 시기가 미뤄지며 신한생명이 오렌지라이프와 합병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놓였다.
성대규 신한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신한생명의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 다각화를 추진해 경영능력을 증명하고 신한금융그룹에서 입지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더 얻게 됐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1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IFRS17 회계기준 도입을 2023년 1월까지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새 회계기준 도입시기는 당초 2021년으로 예정됐다가 2022년으로 한 차례 미뤄졌는데 이번에 또 연장이 결정되며 세계 보험사들이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신한생명도 IFRS17에 맞춰 재무 안정성 지표인 보험금 지급여력비율(RBC)을 200% 이상으로 유지하는 데 힘써왔는데 회계기준 도입 시기가 늦춰져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신한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2017년 말 175%, 2018년 239%, 2019년 227%로 변동을 보이고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불황과 금리 인하 등 영향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신한생명이 보험금 지급여력비율 400% 이상을 유지하는 계열사 오렌지라이프와 합병하는 것이 해법으로 꼽혔지만 최근 합병 논의가 차질을 빚어 지연되며 신한생명에 위기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한생명은 새 회계기준 도입시기가 미뤄진 만큼 합병을 서두를 필요성이 낮아졌다.
성대규 사장도 신한생명의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 다각화 등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돼 신한금융그룹에서 경영능력을 증명하고 입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성 사장은 전화판매와 대면 영업을 주요 판매채널로 삼던 신한생명의 체질 개선을 목표로 모바일앱 등 비대면 영업을 강화하며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소비자 수요가 제한적인 생명보험에 의존을 낮추려 퇴직연금과 대체투자 등 신한생명의 다른 사업 분야를 키우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성 사장이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 기술로 보험사업 혁신방안을 연구하는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온라인채널 강화를 추진했는데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꼽힌다.
신한생명의 퇴직연금사업도 2월부터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 등 다른 계열사와 모바일 영업채널을 공유하게 되며 소비자 접근성이 더욱 높아졌다.
성 사장이 지난 1년동안 시도한 이런 변화들이 실제로 신한생명 실적 개선과 재무구조 보완으로 이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새 회계기준 도입이 늦어져 신한생명이 당분간 오렌지라이프와 합병을 미루고 독자적 사업기반 강화에 집중하게 된 만큼 성 사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시간이 충분해졌다.
신한금융지주도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 합병을 이전보다 소극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가 합병을 서두른다면 성 사장이 통합신한생명 대표에 올라 경영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그동안 힘을 얻었다.
성 사장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보험개발원 등을 거친 관료출신 인사로 경영에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신한금융그룹에서 입지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사장이 오렌지라이프와 합병 지연을 기회로 삼아 신한생명 경영에 좋은 성과를 낸다면 신한금융그룹의 비은행 계열사 강화 노력에 기여해 확실하게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최근 외부출신 인재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다 성 사장이 올해 만 54세로 신한금융 계열사 CEO 가운데 비교적 젊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꼽힌다.
성 사장이 신한금융그룹에서 중장기적으로 역할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하지만 성 사장이 당장 어려움을 겪는 신한생명의 위기를 넘는 일이 중요한 당면과제로 꼽힌다.
신한생명과 같은 생명보험사는 주로 장기적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국채 등 자산에 투자해 운용수익을 얻는데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한다면 수익률과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저금리 상황으로 자산운용 수익확보에 부담이 있지만 신한금융 계열사와 퇴직연금 등 사업에서 협력해 실적 방어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