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12월6일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EPA > |
[비즈니스포스트]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를 노리고 현지 생산투자를 확대하면서 대만의 ‘실리콘 방패’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한가운데 놓인 대만이 TSMC의 첨단 반도체공장 이탈로 협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며 결국 ‘함정’에 빠진 것과 같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TSMC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 뒤 대만의 외교적 협상력과 지정학적 중요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TSMC의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이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대만에 중요한 경쟁력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TSMC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최고의 포식자에 가깝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다른 경쟁사를 압도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미국 정부가 현지에 TSMC 첨단 반도체공장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반도체 지원법을 지행하며 막대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 등 지원을 약속한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자국에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지 않으면 이런 사태가 재발했을 때 산업에 큰 피해나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을 미국 정부에서 심각하게 우려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이를 넘어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반도체 경쟁력을 낮추는 데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지원법 가이드라인에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사업 기밀정보를 제출해야 하거나 중국 투자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시로 지목됐다.
TSMC와 같은 기업이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투자를 더 늘리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확보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결국 TSMC가 미국에서 설계한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마저 내놓았다.
현재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애리조나 반도체공장에 3~4나노의 첨단 미세공정 생산라인이 들어서면 대만이 미국에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미국이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할 이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TSMC가 미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현지 고객사 수주 확보를 노려 공장 투자를 확대하는 결정이 결국 대만에는 악재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주로 '실리콘 방패'라는 표현으로 불린다. 반도체의 핵심 원료인 실리콘의 이름을 따 반도체가 대만 안보에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TSMC의 최근 행보가 대만의 실리콘 방패에 조금씩 균열이 가도록 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정부의 이러한 압박이 과거 TSMC를 상대로 한 중국 정부의 압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목표로 내걸고 TSMC와 같은 대만 기업이 중국에 반도체공장 투자를 확대하도록 다방면으로 압박을 시도했다.
TSMC가 결국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에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대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다른 동맹국도 점차 비슷한 압박에 놓여 중국과 미국 가운데 한 쪽의 편을 들어야만 할 것이라는 관측도 이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과 네덜란드,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의 반도체기업들이 결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