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IBM과 일본 라피더스, 인텔과 ARM 등 미국과 일본 반도체기업 사이 파운드리 동맹 결성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기업들 사이 협력이 확대되면서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주도권 및 시장 지배력에 도전하려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를 추격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동맹군’의 추격도 뿌리쳐야 하는 쉽지 않은 처지에 놓이고 있다.
14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코이케 준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전날 스즈키 나오미치 일본 홋카이도 지사와 만나 반도체공장 설립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라피더스가 홋카이도에 신설하는 2나노 미세공정 파운드리공장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업적으로 거듭나도록 힘을 합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일본 정부와 현지 기업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지난해 8월 설립한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홋카이도 공장 설립 계획은 약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 확정됐고 관련 절차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7천억 엔의 투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신설 기업이 이처럼 빠르게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과감하게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한 데는 미국 IBM과 기술 협력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IBM이 2나노 반도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라피더스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자신감의 원천에 해당하는 셈이다.
인텔과 ARM의 기술 제휴도 미국과 일본 반도체기업의 파운드리 협력에 중요한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ARM은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로 소속되어 있다.
파운드리 사업에 사실상 신규 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기존 생산공장을 통해 주로 PC와 서버용 반도체만을 생산해 왔다는 점에서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퀄컴과 애플, 미디어텍 등 다수의 파운드리 대형 고객사가 모바일 반도체 전문기업이라 인텔이 이들로부터 위탁생산 주문을 수주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고객사들의 반도체 설계에 모두 활용되는 핵심 기술을 갖춘 ARM이 인텔과 파운드리 분야 협력을 결정하면서 모바일 반도체 위탁생산에 상당한 이점을 안게 됐다.
ARM의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는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텔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된다.
라피더스와 IBM, 인텔과 ARM의 협력은 모두 미국과 일본 반도체기업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가 모두 대만과 한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고 있는 전 세계 공급망 구도를 재편하겠다는 목표를 앞세우며 자국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피더스와 인텔이 진출을 앞둔 미세공정 파운드리시장은 TSMC와 삼성전자가 장기간 시장을 양분하며 고사양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를 독식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 . IBM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2나노 반도체 시제품 이미지. |
자연히 미국과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해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두 국가 소속의 반도체기업이 잇따라 폭넓은 협력 계획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시장 상황에 대응하려는 전략이 수면 위로 드러난 움직임에 해당한다.
TSMC와 삼성전자는 라피더스와 인텔이 모두 핵심 경쟁 상대로 정조준하고 있는 기업이다. 미세공정 반도체 분야에서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기술력을 빠르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인 TSMC의 점유율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두고 충분한 시장 점유율과 고객사 기반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 미국 반도체기업 ‘동맹군’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해 삼성전자를 뒤쫓기 시작한 일은 더욱 큰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인텔은 이미 파운드리 2위 업체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하며 사실상 삼성전자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한 상태다.
라피더스도 IBM과 기술 협력을 통해 TSMC 및 삼성전자에 맞서 차별화한 경쟁력을 갖춰내겠다고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점유율 싸움에 뛰어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굳건한 점유율을 지키고 있는 TSMC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는 미-일 연합군 세력 사이에서 삼성전자가 가운데 낀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협력은 기업 차원을 넘어 정부 차원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 조치에 동참하기로 한 점이 사례로 꼽힌다.
결국 삼성전자가 인텔 및 라피더스의 추격이 본격화되기 전에 더 확실한 사업 기반을 갖춰 견고한 ‘방어막’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