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용인에 300조 원을 투자해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에 향후 20년 동안 300조 원을 투자해 대규모 시스템반도체 산업단지(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파운드리 위주의 생산 설비와 공급망 등을 구축하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파운드리 최대 경쟁사인 TSMC가 대만 정부 주도로 조성된 신주과학단지를 본거지로 삼고 기술 발전과 생산 능력 확대에 장기간 성과를 낸 전략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아시아타임스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용인 시스템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목표를 두고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삼성전자의 새 반도체 클러스터는 TSMC의 신주과학단지에 영감을 받은 것”이라며 “여러 반도체 설계기업과 장비업체, 부품과 소재업체 등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를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는 이재용 회장이 2019년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당시 이 회장은 2030년까지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르도록 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제시했고 이에 따라 파운드리 등 주요 사업에 투자를 꾸준히 늘려 왔다.
이번에 공개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투자 규모 및 전략적 측면에서 모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사업 특성상 삼성전자가 기존에 주력으로 하던 메모리반도체와 비교해 고객사와 협력사, 필요한 장비나 소재 등 공급망 측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대형 시스템반도체공장이 밀집한 용인 클러스터에 국내외 주요 협력사가 생산공장 등을 설립한다면 더욱 밀접한 협업 관계를 구축하게 될 수 있다.
자연히 삼성전자도 반도체 생산 투자나 고객사 공급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하기 쉬워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의 공장 및 연구개발센터가 다수 위치한 대만 신주과학단지는 이와 같은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의 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주과학단지는 TSMC의 본사와 연구개발센터, 대형 반도체공장 7곳이 밀집한 지역으로 1980년 대만 정부 주도로 설립된 역사 깊은 생산거점이다.
TSMC뿐 아니라 뿐 아니라 미디어텍과 UMC 등 주요 대만 반도체기업이 위치한 것은 물론 애플과 퀄컴 등 TSMC의 주요 고객사도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1970년대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대만 남부 신주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딴 연구개발 및 공업단지 설립을 추진해 왔다.
▲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연구개발센터. |
신주과학단지는 결국 400여 곳 이상의 기술기업이 밀집한 최대 산업단지로 발전했고 입주 기업들은 한때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1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적 성과를 남겼다.
TSMC가 대만 정부 주도로 설립된 것도 신주과학단지의 발전을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TSMC가 대만의 대표 기업을 넘어 전 세계 파운드리 선두 기업으로 자리잡는 데 도움을 받은 셈이다.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의 지원을 받아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 왔다는 점에서 신주과학단지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한국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산업단지로 성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TSMC와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용인 클러스터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술력 및 생산 능력과 시너지를 낸다면 신주과학단지와 같이 주요 고객사의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설비를 유치하는 데도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가 해당 기업들을 더 안정적인 고객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시스템반도체의 꾸준한 실적 기반을 마련해 성장 전략에 더욱 힘을 싣게 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앞으로 용인 클러스터에 투자를 검토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와 용인시 등 지자체도 이미 반도체 투자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조성 등 절차에 주력하고 있다.
대만의 신주과학단지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대만의 안보를 지키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TSMC와 같은 기업이 신주과학단지에서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뇌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 모두 대만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한국도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및 생산 능력을 외교 측면에서 핵심 카드로 활용할 수 있게 돼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상황에 중장기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정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언급하며 한국의 혁신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