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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온화하면서 치밀해, 외교무대에서 승부사 기질도 [2018년]
임주연 기자 june@businesspost.co.kr 2018-07-3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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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의용은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장이다.

1946년 4월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30여 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이스라엘대사, 제네바 대사, 국제노동기구 이사회 의장 등을 거쳤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과 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지냈다.

대선 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외교자문단 국민아그레망 단장을 맡아 외교정책을 총괄했으며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을 맡다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됐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외교 담판의 자리에서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이 올려주는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료를 만들고 보충하는 등 치밀한 부분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북한 비핵화 및 종전 선언 합의 이행에 총력
정의용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협상이 남한 북한 미국 관계에서 선순환하며 빠르게 추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회담에서 이룬 약속을 이행하는 데 다소 더딘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거래에서 실무적 협상이 답보상태로 멈췄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정의용은 제자리 걸음하는 북미관계를 풀어내 목표했던 대로 올해 안에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이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8년 7월21일부터 1박2일 동안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기도 했다.

정의용은 남북관계를 점검하는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에 몸담고 있다. 위원장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위원회는 2018년 7월19일 3차 회의를 열어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2018년 3월9일 미국 백악관에서 정의용 실장(가운데)이 트럼프와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특사 뒤 잇단 정상회담 성과
정의용은 대북 특사로서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남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큰 성과를 거뒀다.

정의용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과 함께 2018년 3월5일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논의했다. 당시 북한은 추가 도발을 중단할 것을 약속하고 북미대화의 여건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3월9일에는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이때 미국에 북한의 의중을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안에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정의용이 중심이 된 대북 특사단을 파견한 뒤 남북미 관계의 급진전이 이뤄졌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5월22일 한미 정상회담→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5월26일 판문점 2차 남북 정상회담→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등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런 여정을 통해 북한은 남한과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하겠다,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판문점 선언’을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은 미군 유해 송환, 비핵화 노력 등의 내용을 담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성과를 놓고 정의용은 문재인 정부의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용을 ‘적임자’라고 평가한 게 정확했다는 말도 들었다.

△사드배치 문제로 트럼프 정부 신임
정의용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를 놓고 기존 정권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었던 약속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자세를 통해 미국에서는 한미 동맹 균열설을 일축하고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신임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 치우친 미국경도 색이 짙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자 사드 관련 자세를 대미외교 지렛대로 사용해 회담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가 달라졌다.

△민간 출신 국가안보실장
정의용은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이자 외교분야 인사로서 안보실장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조직 개편으로 비서실 산하의 외교·국방·통일 정책 보좌 기능을 안보실로 옮기면서 안보실 기능을 크게 강화했다.

안보실은 1차장(차관급) 정원 22명에서 2차장(차관급) 정원 40여 명으로 확대됐다.

국가안보실장 아래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 1차장과 2차장이 있다. 1차장 아래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장)으로 안보전략과 국방 개혁, 평화군비 통제, 사이버정보 등의 비서실이 있다. 2차장은 외교정책, 통일정책 등의 비서실 업무를 다룬다.

특히 사이버 안보는 기존에 국가정보원이 중심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가 됐다.

외교·안보는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첫 걸음인 만큼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역할이 더욱 주목받았다. 정의용은 북핵 문제에 만족스러운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이전 정부의 외교 실패를 만회하는 과정 등에서 초대 안보실장으로 성과를 평가받고 있다.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8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면담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외교자문그룹에 합류
2017년 2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외교자문그룹인 국민아그레망 단장으로 합류했다. 국민아그레망은 정의용을 비롯한 전직 외교관 24명으로 구성돼 문재인 후보의 외교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발 빠르게 주변 4강 특사를 보내고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아그레망을 이끈 정의용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의용은 대선을 앞두고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대리, 알렉산더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 등을 두루 만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외교안보태스크포스 단장으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만나는 등 외교 공백을 메웠다. 이후 민간 출신 첫 안보실장에 임명돼 외교에 무게를 두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안보’ 정책을 주도하게 됐다.

6월1~3일 한미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압박 기조를 이어가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또한 사드배치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로 늦어질 수 있음을 설명했다.

△국회의원 시절
의원 시절에는 외교관 경험을 살려 국회 내 외교통으로 활약했다.

열린우리당 국제협력위원장을 비롯해 한미의원외교협의회 간사장, 한미일 3국의원협의회 간사장 등을 맡아 활발하게 의원 외교 활동을 벌였다. 특히 주미공사 출신답게 미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17대 국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포럼을 만들고 간사로 활동하며 한미 FTA 체결을 지원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외교관 출신인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2006년 미국을 방문해 기업인들과 의회 지도부를 만나 한미FTA 체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 마지막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하면서 한미 FTA 비준안은 상임위 통과가 무산됐다. 정의용은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을 마무리하는 게 옳았다며 아쉬워했다.

아시아 국가의 정당 네트워크인 아시아 정당 국제회의(ICAPP)에 2004년부터 국회 대표단으로 참석했고 2006년 서울에서 열린 ICAPP 행사에서 조직위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ICAPP 회장에 올랐고 2009년 서울에 상설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초대 사무총장에 추대됐다.

또 여수세계박람회유치특위 위원으로서 여수Agenda를 설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수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뒤 특위 위원들과 함께 여수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이 2017년 9월1일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앞둔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외교관 시절
통상정책과장, 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낸 통상 전문가다. 다자외교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으면서 주제네바 대사를 지냈다.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를 앞두고 통상국장을 지내면서 미국, EU 등과 통상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자동차시장 개방 등 민감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협상 타결을 이끌어 내는 등 외교부에서 우루과이라운드 최고 전문가로 꼽혔다.

주제네바 대사로 유엔에서 북핵 폐기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직접적 표현은 피했지만 탈북자 문제를 상기시키며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2003년 유엔산하 국제기구의 첫 한국인 사무총장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당선될 때도 주제네바 대표부에서 리셉션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는 등 막후에서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제네바 대사를 지낼 때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부의장과 의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3년 6월 국제노동기구 전체회의에서 노사정 이사국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됐다. 정의용은 한국이 1991년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한 뒤 첫 의장을 수행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각료회의에 교체수석대표로 참가하는 등 통상전문가로서 역할도 꾸준히 이어갔다. 2002년에는 WTO 무역협상위원회(TNC) 산하 협상그룹 가운데 하나인 지적재산권 이사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사상 첫 문민 안보실장으로서 대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을 이끌고 국내적으로는 군 개혁을 추진하며 강화된 안보실 기능을 정립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의용은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합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미 공조방안을 강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

북한은 종전 선언 등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조치부터 미국이 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쇄 등 비핵화에 속도를 붙이는 것이 먼저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점차 나타내고 있다고 알려졌다.

종전 선언에 회의적 태도인 중국이 참여하게 되면 종전 선언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되는 가운데 정의용은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양제츠 정치국원 등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북·미·중 등 4자 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의용은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을 실무적으로 이뤄내야 하는 과제도 지녔다.

국가안보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졌던 방위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파악된다. 비리를 저지른 기업에게 징벌적 가산금을 매기며 사업에서 즉시 퇴출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방 개혁의 일환으로 국군기무사령부 폐지 등도 검토하고 있다. 국가안보실에 속한 국방 개혁 비서실은 국방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개혁을 위한 실무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 평가

한국의 1세대 통상 전문가로 꼽히며 통상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협상가로 평가받는다.

외교부 과장시절 미국과 통상 마찰이 처음으로 불거졌고 국장 시절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 통상분야의 변곡점을 모두 경험했다.

비교적 온화한 성품이지만 외교담판의 자리에서는 공격적 승부사 기질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이 올려주는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료를 만들고 보충하는 등 치밀한 부분도 갖추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정치권 입문은 정동영 의원의 추천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외교부 공보관을 지낼 때 정 의원이 외교부 출입기자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2007년 정동영 대선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영어 토론대회에서 선발돼 미국 신문 뉴욕데일리미러에서 주최하는 세계 청소년 토론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시카고의 고등학교에서 한달 반을 지내면서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됐다고 한다.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이 2018년 3월2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7년 3월13일 국회에서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1971년 제5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1974년 주캐나다 대사관 3등서기관, 1978년 외무부장관 비서관, 1982년 외무부 통상정책과장, 1984년 주태국대사관 참사관, 1986년 주미국대사관 참사관을 지냈다.

1989년 외무부 정보문화국 정세분석관을 거쳐 공보관 겸 대변인을 맡았다.

1991년 주유럽공동체(EC)대표부 공사를 맡았다.

1993년 외무부 통상국장에 올랐다.

1995년 주미 대사관 경제통상담당 공사에, 1997년 주이스라엘 대사에 임명됐다.

1998~2001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역임했다.

2001~2004년 주제네바 대사를 지내며 세계무역기구(WTO) 지재권협상그룹 의장, 군축회의(CD) 특별조정관, 국제노동기구(ILO) 집행이사회 부의장과 의장 등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총선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0번으로 당선됐다.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대책특별위원회 위원, 여수세계박람회유치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05년 한미 의원외교협의회 간사장, 한미일 3국의원협의회 간사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의원연맹 회장에 선출됐다.

2009~2013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지냈다.

2011~2016년 한화투자증권 사외이사를 맡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았다.

◆ 학력

1964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나왔다.

1982년 하버드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캄보디아 왕립학술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와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이종사촌이다.

◆ 상훈

2004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5년 의원외교활동에 공헌해 국회의장 표창을 받았다.

2006년 칠레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훈장을 받았다.

◆ 기타

1971년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의원 시절인 2008년 공개한 재산은 본인 명의 아파트 7억5400만 원 등 모두 15억8480만 원이었다. 2017년 대한민국 전자관보에 따르면 재산은 23억8535만 원으로 10년 만에 약 8억 원이 불어났다.

어록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2018년 7월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뒤로 이날 같은 비행기로 귀국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보인다. <연합뉴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선순환적으로 성공적으로 가급적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들을 놓고 매우 유익한 협의를 했다.” (2018/07/22, 미국을 방문한 뒤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귀국길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은 지금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 다만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어 대비하고 있다. 북한을 우리가 좀 이해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2018/05/22,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볼턴 보좌관과 만남은 매우 실질적이고 유익했으며 한미 양국은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 (2018/04/25, 미국 워싱턴DC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한 뒤)

“아주 많은 유익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두 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두고 논의했다.” (2018/04/13, 미국을 떠나 귀국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러시아 지도자들 모두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 발전과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환영했다. 중국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심적이고 건설적 역할을 해줘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양국 지도자들은 비핵화를 대화 및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문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앞으로도 적극 지지할 뜻을 내놨다.” (2018/03/15, 중국과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 흐름을 보이는 것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지도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중국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2018/03/12,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추가적 입장이 있다.” (2018/03/06,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간 대화와 관계 개선의 흐름을 살려 한반도의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대통령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겠다. 남과 북의 대화는 물론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방안들도 심도 있게 협의할 것이다.” (2018/03/05, 대북특별사절단 수석특사로 방북에 앞서 출국인사를 통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엄중하게 인식하면서 사드 배치문제를 몇 가지 원칙 아래 다루려고 한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 사드는 북한의 갈수록 커지는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 결정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미국과 계속 긴밀하게 협의하겠다.” (2017/06/09,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사드 배치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제가 설명을 했고, 또 그걸 충분히 이해를 한다는 반응이었다. 북한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민간교류 원칙에 대해서 미 측에서도 충분히 이해를 표명했다.” (2017/06/03,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뒤)

“사드 문제의 본질은 절차적 흠결을 치유하는 것이고 한미동맹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이다. 다만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하게 하려면 우리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7/06/02, 방미 중 사드와 관련해)

“남북관계에서 대화가 단절된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주도해 남북관계를 빠르게 복원시켜야 한다. 군의 대북 연락통신망 같은 것을 빨리 복구해야 하며 실무 차원의 접촉도 재개해야 한다. 다만 개성공단 재개는 남북관계 차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엔 제재와도 관련이 됐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2017/05/21, 안보실장 임명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위한 대북압박은 문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대선 선거운동 기간, 한미 동맹은 '문재인정부'의 외교정책에서도 계속 중심축이 될 것을 명확히 했다. 그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계획을 진전시키고 실행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즉각 시작하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2017/05/10,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한일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차기 정권에서는 관계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2013/09/25, 제7차 한미일 3자 협력대화)

“대지진 이후에 한국민들이 일본인에게 보여준 성원, 지원에 대한 진정성을 놓고 일본 지도자들이 매우 고마워하는 것을 느꼈다. 한일 관계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1998년 10월 김대중. 오부치 게이조 두 분간의 공동선언이 향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발전에 기초가 된다는 데 일본 내 여야 지도자가 모두 공감을 하고 있었다.” (2011/06/28, 방일 대표단 기자간담회에서 방일 소감)

“미국이 보낸 서한을 보니 첫 문단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0조상의 권리를 한국이 갖고 있다고 확인해 줬다.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이 GATT 20조 발동을 사전적으로 양해한 것은 대단한 성과다. 이 정도 성과를 끌어냈으면 한미 FTA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민주당이 국민에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2008/05/21, 정부의 한미FTA 쇠고기 추가 협상 내용과 관련해)

“쇠고기 시장 재개방과 한미FTA 비준 문제는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 정치현실을 볼 때 쇠고기 문제에 대한 국민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 한미 FTA 17대 국회 처리는 대단히 어렵다.” (2008/05/13, 국회 한미FTA 청문회)
[Who Is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정의용 국제노동기구 부의장이 2003년 국제노동기구 사회보장 정책과 개발분과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바마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농업과 산업 관련 내용이 미국에 불리하다며 FTA를 반대하는 것은 협정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반증이다.” (2008/02/15, 국회 한미FTA 공청회)

“대선 본선 경쟁에 돌입하면 당장의 평가보다는 누가 더 가치있는 정책을 갖고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청계천 사업은 이미지만 있고 개성공단은 실체가 있는 것인데 오히려 지금은 청계천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비쳐지고 있다. 개성공단을 실제 가본 사람들은 생각이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개성공단을 국민들에게 현실성있게 접근시켜 주면 청계천 효과보다 더 클 것으로 본다. 개성공단이야말로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끌게 될 것이다.” (2007/10/22, 워싱턴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이명박 후보의 청계천 사업과 정동영 후보의 개성공단 사업을 비교하며)

“양국 정부가 서로 주고받을 이익의 균형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고,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과격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 전자제품 707개 상자가 미국에 갔는데 전량 반송됐다면 우리가 FTA를 맺을 수 있겠느냐, 협상 타결 의지가 있다면 의지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2006/11/29,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후 최초 반입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되자)

“우리의 외교안보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남북분단이란 상황에 갇혀 때로는 낭만주의적 민족주의에 치우쳐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반도와 주변문제에만 얽매여 지구촌 공동체가 직면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는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2005/02/14,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선진한국을 구현해야 한다며)

“지금은 경제통상이 외교분야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기위해 본부를 중심으로 활발한 경제통상외교를 펼쳐 나가겠다.” (2003/05/22, 경제4단체 재외공관장 초청간담회에서)

“전세계 자유무역의 기틀을 확립하게 될 뉴라운드는 한국에 더없이 좋은 기회로 최대한 많은 이슈가 여기서 논의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농산물을 제외한 국내 다른 시장은 이미 충분히 개방돼 있어 뉴라운드를 통해 관세인하 등 시장접근이 확대되더라도 국내 산업에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 (2001/07/03, 국제무역기구 뉴라운드 출범과 관련해)

“국민의 알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한 것도 문제다. 외국의 경우 협상담당자에게 모든것을 일임하고 기다린다. 언론의 앞선 보도 등 사회적 분위기가 협상담당자에게 부담이 된다. 협상 전략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사전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2000/12/21, 우리나라 국제협상력이 뒤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지난해말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출범이 무산된 후 개별국간의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심화돼가는 경제블록에 대응하는 한편 수출증진을 위해 자유무역협정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2000/03/09, 자유무역협정 확산과 관련해)

“통상정책의 기본방향은 대외지향적이어야 한다. 국내 제도와 관행이 국제 규범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철폐·개선해야 한다. 대외통상정책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9/07/05, 산업피해 구제제도 도입 12주년 좌담회)

“이스라엘 인구는 600만 명도 안 되지만 구매력은 7000만 명의 이집트보다 높다. 국내기업들은 이스라엘의 소비재부문 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중동에 평화가 정착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평화 정착은 대세다. 평화가 정착되면 이스라엘이 중동의 교두보가 될텐데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1997/10/01, 매일경제 주이스라엘대사 인터뷰)
korea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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