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조조정 마술사', 의리와 인정 넘쳐 [2017년]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7-11-15 08: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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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은 한화그룹 회장이다. 활발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면서 그룹의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1952년 2월7일 충남 천안에서 김종희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친의 사망으로 29세에 회장에 취임해 한화그룹의 규모를 빠르게 키웠다.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대표이사 회장과 한화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모두 물러났으나 그룹 회장은 유지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방산과 화학계열사를 인수해 한화그룹의 방산사업과 화학사업을 키우는 등 인수합병에 뛰어난 감각을 보여줬다. 한화그룹의 태양광사업도 뚝심있게 밀어붙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리를 중시하는 경영으로 한화그룹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를 만들었다.

경영활동의 공과


△경영복귀 이후
2017년 현재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공식석상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를 확인하고 있다.

2017년 3월에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과 만나 협력을 논의했고 5월에는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과 만찬을 했다.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만찬에도 참석했다.

김승연은 2014년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으나 그룹회장은 유지했다.

2014년 12월 사회봉사시간을 모두 이수한 뒤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삼성그룹의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인수하고 이라크 개발사업을 추가로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또 세계 1위 태양광 셀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입찰경쟁에 뛰어들었다. 입찰 초반만 해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승자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승연은 뚝심으로 면세점 입찰참여를 결정하고 면세점 후보지로 서울 강북권이 아닌 여의도 63빌딩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결국 6개 유통대기업과 입찰경쟁 끝에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다.

2015년에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삼성토탈(한화토탈) 등을 1조9천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는 국내에서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꼽혔다.

한화그룹은 2016년에도 방산기업 두산DST(한화디펜스)를 인수하면서 국내 방산업계에서 독보적 지위를 굳혔다.

한화그룹은 2016년 이후 한화,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한화테크윈 등 방산 계열사 간 사업영역을 조정했다.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해 방산사업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2017년 한화테크윈을 물적분할해 한화지상방산,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를 설립했다.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한화 실적.
△인수합병으로 성장
김승연은 1981년 29세에 부친이 갑작스럽게 별세하자 회사를 물려받아 한화그룹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크게 키워냈다.

2016년 7월 한화그룹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꼽은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277위에 올랐다. 이는 2015년 329위에서 52계단이나 올라선 것으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기업 가운데 가장 크게 변화했다. 2017년도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호조로 246위에 올랐다.

30여 년 동안 적극적인 몸집 불리기를 통해 한화그룹 매출은 1981년 1조 원에서 2016년 56조 원까지 커졌다. 자산규모는 7500억 원에서 174조 원으로 늘었다. 계열사 숫자는 20개에서 61개로, 임직원 숫자는 1만1600명에서 4만4400명으로 증가했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2년 뒤인 1983년에는 미국 정유회사인 유니언오일과 1969년 합자형식으로 인천에 세운 경인에너지 지분을 넘겨받았다. 그 뒤 회사 이름을 한화에너지로 바꿨다.

1985년 현 한화호텔&리조트의 전신인 정아그룹을 인수했고 이듬해 현 한화갤러리아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사들였다. 1986년에는 야구단인 빙그레이글스(한화이글스)를 창단하고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했다.

1990년대에는 해외진출에 힘썼다. 1993년 아테네은행을 인수했고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헝가리 한화은행)을 사들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1999년부터 홍선기 당시 대전시장의 제안을 받아 대덕테크노밸리사업을 진행했다.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승연은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행했다. 공사는 2001년 시작돼 2009년 11월 준공됐다.

2000년 동양백화점(한화타임월드)을 인수했다. 2002년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을 인수해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시켰다. 같은 해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했다. 그 뒤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태양광사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인수는 실패했다.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 회장이 2007년 12월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김승연은 2017년 신년사에서 올해를 그룹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3단계의 첫 해로 꼽으며 초심으로 돌아가 일류 한화의 꿈을 키울 것을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최근 그룹의 새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태양광분야와 대형 인수합병으로 업계 1위 규모로 키운 방산사업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를 목표로 하고 있고 자주국방을 위해 국방예산 증액 규모도 키우고 있다.

다만 글로벌 태양광시장 1위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태양광 해외실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태양광 셀·모듈에 세이프가드를 적용하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방산분야는 방산비리 수사를 넘어야 한다. 2017년 K-9 자주포 납품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한화지상방산의 정부 입찰이 3개월간 제한됐다.

세 아들에게 원만하게 경영승계를 진행하는 것도 과제다. 장남 김동관 전무는 태양광사업을, 차남 김동원 상무는 핀테크사업을, 삼남 김동선씨는 면세점사업을 맡았는데 이를 중심으로 주력사업을 분할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의 세 아들은 한화S&C 지분을 나눠 들고 있는데 승계를 위한 자금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한화S&C는 올해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스템통합 사업부를 물적분할하고 지분일부를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이를 계기로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한 막내아들 김동선 선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평가

‘인정과 의리’로 유명하다.

서울프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3개월간 문을 닫게 되자 공사기간동안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준 일화와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할 때 100% 고용승계를 약속받은 일 등이 알려져 있다.

2014년 경영에 복귀해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할 때 직원들이 회를 먹고 싶어한다고 하자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해가기도 했다.

미국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가로 일하다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정부에 의해 수감된 로버트 김을 개인적으로 계속 지원했다. 이 사실은 2005년 10월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로버트 김이 출연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김승연의 주변 지인과 회사 내 측근도 알지 못했다.

한화그룹은 천안함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2011년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김승연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함으로써 이뤄졌다. 실제 유가족 가운데 일부가 한화그룹에 입사했다.

2015년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이 폭발해 6명의 노동자가 숨지자 사고 희생자에게 한화 임직원들의 사고에 준하는 최대한의 보상을 지시했다.

후원에 어려움을 겪은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를 위해 10년 동안 단독으로 후원했다. 예술의 전당은 한화그룹의 후원 10주년을 맞아 2009년 4월 김승연에게 감사의 뜻으로 종신회원증을 전달했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라고 한다. 어렸을 때 성공회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1997년에는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었다. 성공회대에 일부 대금을 면제해주는 형태로 대학본부 건물을 지어줬고 건물이름이 ‘승연관’이 됐다.

평소 그룹 경영의 최고가치로 ‘신의’를 꼽아왔다.

효심이나 부정애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모친이 팔순을 맞자 영상편지를 직접 제작했다.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와 형제처럼 지낸 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국 대사의 환갑잔치를 1982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성대히 치러주고 당시 약속한 대로 20년 뒤 팔순잔치까지 챙겨준 일화는 유명하다.

해리티지재단 에드윈 퓰너 창립자와 민간외교 차원에서 수십 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헤리티지 재단은 2011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헤리티지 의회빌딩 2층 컨퍼런스센터를 ‘김승연 컨퍼런스센터’로 이름붙이기도 했다.

퓰너는 트럼프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선임 고문으로 대선캠프에서 외교 및 안보분야 자문을 맡았는데 그의 추천으로 김승연은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았으나 건강문제로 불참했다.

경영자로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재계에서 평가받는다.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올라 일찍부터 재계단체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전경련에서 기업구조조정특별위원장, 국제협력위원장 등을 지냈다. 재계 안팎에서 허창수 현 전경련 회장의 뒤를 이어 전경련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1990년대 중반 IMF 외환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으며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창조적 구조조정으로 국내는 물론 산케이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는 승부사 기질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한양화학(한화케미칼),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 등을 인수했다. 2015년 이후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토탈(한화토탈),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두산DST(한화디펜스) 등을 인수했다.

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방산분야를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방산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우조선해양 인수후보로 꾸준히 꼽힌다.

한화그룹은 2016년에 ‘젊은 한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문화 혁신에 나섰다. 여기에 창립 64주년을 맞아 한화그룹을 더욱 젊게 만들어 일류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김승연의 뜻이 반영됐다.

한화그룹은 과장, 차장, 부장 직급 승진 시마다 1개월의 안식월을 주는 등 파격적 제도를 도입하고 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유연근무제’, 직원 개인의 계획적인 경력관리 지원을 위한 ‘Job Market’, 자율복장근무인 ‘비즈니스캐주얼’, ‘팀장 정시퇴근제도’ 등도 도입했다.

김승연은 한국 스포츠계에서 유명한 ‘사격 마니아’다. 한화그룹은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의 회장사를 맡아 15년 동안 125억 원에 이르는 사격 발전기금을 내놓았다. 김승연은 기업 최초로 2008년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도 만들었다.

아호는 우천(于泉)이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건축기금 50억 원을 기부해 지은 건물이름이 우천법학관이다.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2년 5월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베어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 선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건사고


△편법 상속 논란
2017년 9월12일 대법원은 경제개혁연대와 한화 소액주주들이 김승연 등을 상대로 낸 894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소송은 2010년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한화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김승연과 한화가 보유하고 있던 한화S&C 주식 전량을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김승연의 세 아들에게 헐값에 매각해 한화에 손해를 끼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승연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경영기획실에 주식가치를 저가로 평가하도록 지시해 손해를 입힌 점을 인정해 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5년 항소심은 회사의 경영활동의 자유와 재량 관점에서 주식매매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1심과 다른 판단을 했고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셋째 아들 폭행 입건
삼남 김동선씨는 2017년 1월5일 새벽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김동선씨는 이날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모 주점에서 술에 취한 채 폭행했다.

김승연은 김동선씨의 폭행사건을 들은 뒤 크게 화를 내며 마땅한 처분을 받고 자숙할 것을 지시했다.

김승연은 소식을 전해듣고 “잘못을 저지른 만큼 벌을 받고 깊은 반성과 자숙하라”고 말했다. 김동선씨는 2017년 3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고 풀려나 자숙하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 청문회 출석
김승연은 2016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한화그룹은 최순실씨의 입김이 서린 승마협회를 삼성그룹이 회장사를 맡기 전까지 지원했다.

김승연은 이 자리에서 최씨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김동선 선수가 정유라와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경기에서 메달을 따지 않았나. 메달을 땄을 때 최순실을 함께 보지 않았느냐”는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얼굴도 모르기 때문에 누군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배임혐의 실형선고
2011년 한유통과 웰롭, 부평판지 등 3곳의 위장계열사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3천여억 원의 회사 자산을 부당지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2012년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다. 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4개월 만에 건강상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13년 4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상고심에서 2심을 파기환송했고 2014년 2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2015년 8월 실시된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도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보복폭행 사건
2007년 아들의 폭행을 당한데 대한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승연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대학생이던 2007년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벌여 눈에 부상을 입었다. 당시 소식을 접한 김승연은 경호원 17명과 함께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외환관리법 위반
1993년 불법 외화유출에 따른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재벌 총수 최초로 구속됐다.

검찰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해외건설공사를 수주하고 공사 소개 수수료 중 되돌려받은 650만 달러를 국내에 들여오지 않고 홍콩 해외은행에 가명으로 예치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470만 달러의 호화주택을 구입한 혐의라고 밝혔다.

또 1983년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 뉴욕 한화그룹 현지법인에서 빼돌린 120만 달러를 예치한 다음 1993년까지 110만 달러를 인출해 가족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해외재산도피에 해당하지만 자금조성시기가 공소시효를 지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다. 이후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300여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1995년 사면됐다.

다른 재벌들도 관행처럼 하던 일이고 공소시효까지 지났는데 김승연이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박철언 전 장관의 사조직 월계수회의 자금줄 노릇을 한 데 대한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형제간 재산 분쟁
김승연은 동생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년6개월 동안 31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재산분쟁을 벌였다.

김종희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두 아들의 지분 분할을 두고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아 분가 과정에서 1992년 분쟁이 터졌다.

김호연 전 회장은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소송을 제기했다. 김호연 전 회장은 김승연이 본인과 의논하지 않고 임의로 상속재산을 처분했다며 유산의 40%를 달라고 주장했다.

김승연은 “1981년 당사자 간의 합의 등 민법상의 합법절차를 밟아 상속재산이 분배됐고 10년 시효가 끝나 상속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승연과 김호연 전 회장은 1995년 할머니 장례식 때 만나 재산분할에 합의하고 소송도 모두 취소했다.

두 사람은 1995년 어머니의 칠순잔치에서 화해했다. 김 전 회장은 “그 일로 서먹해졌지만 형과의 갈등은 모두 해소됐다”며 “집안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 간 모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4년 12월 이라크 비스마야 건설현장을 찾아 현지근로자를 격려하고 있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7년 태평양건설(현 한화건설) 해외수주담당 이사로 입사했고 이듬해 사장에 올랐다.

1981년 한국화약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올림픽위원회 부회장과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85년 한화이글스 구단주가 됐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경향신문사 회장을 지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아테네은행 회장을 지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한화석유화학 회장으로 재임했다.

2002년 1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대한생명보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2005년 3월부터 2007년 9월까지 한화그룹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2006년 유엔한국협회 회장에 선임됐고 2011년 재선임에 성공했다.

2008년 9월 한화그룹 대표이사 회장에 재취임했다.

2014년 2월 배임혐의 확정판결 이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2017년 현재 회장만 유지하고 있다.

2009년 국제복싱발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 학력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4년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아버지고 7선을 지낸 김종철 전 국회의원이 큰아버지다.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식씨가 작은아버지다.

김종희 창업주와 어머니 강태영씨 사이에서 2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 김영혜씨는 제일화재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이자 제일화재 회장인 이동훈씨와 결혼했다.

동생은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회장의 장인은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 김신씨로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김승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내무부 장관을 지낸 서정화 전 장관의 장녀 서영민씨와 1982년 결혼해 동관, 동원, 동선 세 아들을 뒀다. 장남 김동관씨는 한화큐셀 전무, 차남 김동원씨는 한화생명 상무를 맡고 있으며 삼남 김동선씨는 한화건설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폭행사건으로 회사를 떠나 있다.

◆ 상훈

1982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1983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4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1986년 그리스 피닉스 대훈장,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95년 품질경영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6년 그리스 대훈장을 받았다.

1998년 대한적십자사 유공장을 받았다.

2009년 아버지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와 함께 한국경영사학회가 수여하는 ‘2009 창업대상’을 받았다. 창업대상은 이전에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이 수상한 상이다.

◆ 기타
[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6년 10월1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이사장이 만나 한·미 경제교류 및 한반도 상황 등의 현안에 대해서 논의했다.
어록


“창업시대의 ‘스타트업 정신’을 되살려 역동적인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신생기업처럼 열정을 다하며 혁신의 DNA를 발휘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젊은 한화’의 모습이다. ...변함없는 목표는 사업을 통해 근본적인 삶의 질을 높이고, 세상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환경, 에너지, 안전, 인권과 같은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윤추구에 앞서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실리를 챙기기에 앞서 양심을 지키는, 의식 있는 기업으로서 헌신해 나가야 한다.” (2017/10/09, 한화그룹 창립65주년 기념사)

“한화는 최근 몇년 사이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그룹 비전 추진단계 가운데 퀀텀점프를 달성해 나가자는 마지막 3단계를 시작하는 첫해다.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일류 한화의 꿈을 가슴 깊이 새겨주길 바란다.”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를 맞아 새 생각, 새 정신으로 무장하고 새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전 세계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우리에겐 큰 위기이자 기회다.”
“새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 어떤 바람에도 부서지지 않을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지금 세상 밖에서 불어오는 위기의 바람 또한 우리가 더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2017/01/02, 신년사에서)

“신경 쓰지 않는다.”(2016/12/06,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삼성그룹과 빅딜로 재계 순위가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에)

“조직의 노화를 부추기는 관료주의, 적당주의, 무사안일주의를 배척하고 세월을 거슬러 영원한 청춘기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한화가 꿈꾸고 만들어갈 모습이다.”(2016/10/10, 창립기념사를 통해)

“한화그룹은 지난 5년 동안 남다른 사명감으로 태양광사업에 매진해 왔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고민하고 육성해야 할 사업이라 여겼고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할 또 하나의 미래산업으로 키워보자는 큰 비전을 실천해 왔다.”(2016/07/05, 충북 진천 산수산업단지 안에 있는 한화큐셀 태양광 셀공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며)

“더 이상 매출 1위, 생산량 1위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품질력 1위, 수익성 1위, 고객가치 1위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2016/01/04, 신년사에서)

“지금은 숲보다 나무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며 작은 구멍 하나에 거대한 배도 침몰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방산•유화부문은 규모의 경쟁력을 넘어 실질적 시너지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태양광부문은 글로벌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도전하고 해외시장에서 미래 사업기회를 모색하는 금융부문도 글로벌 경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2016/01/04, 신년사에서)

“한화차이나의 현지 토착화 경영을 통해 오는 2020년 중국 현지에서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는 등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이룰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시장 개척에 나서겠다.”(2011/05/11, 한화그룹이 중국사업을 총괄할 한화차이나를 세우고 운영에 돌입하면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터 오듯이 이제 우리 한화는 새로운 희망을 여는 대한민국과 함께 ‘비극태래’(否極泰來 막힌 비색이 극에 이르면 트인 운수가 온다)의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2008년 신년사에서)

“세계 속의 한화를 이끌기 위해 국적, 학력, 나이와 같은 불필요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겠다.”(2007년 신년사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익숙했던 과거와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첩경이다.”(2007년 창립기념사에서)

“글로벌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2006년 창립기념사에서)

“동란의 초토 위에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적의 역사를 창조했던 화약인들의 ‘프런티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한화인 모두 견지해야 할 일류정신의 표상이다.”(2006년 신년사에서)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다.”(2005년 창립기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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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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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갑자기 전두환D가 생각나는군요. 세상만사 잘한것도 있으나 잘못한게 너무 많은 게 항상 흠...모든악이 선에 가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국 좋은 분이 되어야 되겠죠.   (2017-11-21 13:54:45)
희망인
잘 봤습니다. 한화 전기발전 에너지 관련 CEO분들의 who is? 도 작성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017-11-16 11:57:30)
희망인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11-15 18:2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