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최길선 현대중공업 자문역

45년 조선맨, 현장과 소통 강조 [2017년]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17-03-29 09: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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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최길선 현대중공업 자문역
▲ 최길선 현대중공업 자문역.


최길선은 현대중공업 자문역이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회장만 유지한 채로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의 경영정상화를 이끄는 데 집중하다가 2017년말 인사에서 자문역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1946년 2월25일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20년 넘게 일하다가 7년가량 한라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한라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현대미포조선 고문을 맡다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돼 경영에 복귀했다.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으나 글로벌금융위기로 현대중공업 수주실적이 부진하자 물러났다.

학계와 단체들에 몸담으며 산업현장과 멀어지는 듯했지만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로 적자를 내자 다시 현대중공업 조선해양플랜트 총괄회장으로 임명되며 5년 만에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복귀했다.

권오갑 부회장과 함께 투톱체제로 현대중공업의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다가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45년 동안 조선업에 몸담아온 사원 출신 전문경영인(CEO)으로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내실을 다지는데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 경영 활동

△ 2016-2017년
현대중공업 회장으로서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달리 경영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회사가 추진하는 자구계획안 등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영업손실 1조5천억 원을 본 뒤 최길선은 2016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 재선임됐다. 최길선과 권오갑 부회장의 투톱체제를 공고히 해 체질개선을 통해 구조조정에 힘을 보태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최길선은 2016년 3월에 현대중공업 창립 44주년을 맞아 내놓은 담화문에서 “이제 냉엄한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자”며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임직원 모두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노조가 회사의 상황을 잘 살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비리척결과 포상제도 개선, 순환근무 도입 등 회사의 제도도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4월에는 강환구 당시 현대미포조선 사장, 윤문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 등과 함께 임직원들에게 고통분담을 당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7월1일 현대중공업 본사 체육관에서 비상경영설명회를 열고 위기극복을 위한 자구안에 협조해줄 것을 전 임직원에게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비상경영설명회를 연 것은 창사 이래 최초였다.

최길선은 1시간30분 동안 회사의 경영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자구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겪겠지만 모두 힘을 합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는데 동참해 달라”며 “세계경기가 불황이라는 외부변수도 있지만 과거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고비용 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7월 말에는 사내소식지에 글을 실어 “회사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지난해보다 신규수주가 급감했다”며 “(파업을 멈추고) 수주를 위해 노사가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9월 추석연휴에 유럽 출장길에 올라 영국과 그리스, 노르웨이 등을 방문했다. 현대중공업과 오랜 관계를 맺어온 해외 선주사들을 방문해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설명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10월 중순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는데 이 때 최길선은 현대중공업 회장만 유지하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현재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12월 말에 영국 해운산업 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2016년 조선해운업계를 움직인 100인’을 발표했는데 최길선은 93위를 차지했다.

로이즈리스트는 “최 회장은 회생 노력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고위 경영진을 보유하고 있다”며 “최 회장은 경기하강으로 타격을 입은 회사를 체제변화를 통해 더욱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38조5294억 원, 영업이익 1조6533억 원을 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다.

2017년 1월20일 군산시청을 방문해 송하진 전라북도 도지사, 문동신 군산시장, 박정희 군산시의회 의장, 김동수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간담회를 했다.

최길선은 “선박 발주물량이 15% 줄어 들어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했다. 최소 비용만을 지출하면서 버텨나가고 있다”며 “회사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군산조선소 도크(선박건조대)의 가동 중단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군산시와 전라북도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회사는 중대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며 “현대중공업이 살아야 군산조선소가 있는 것이 아니냐. 1조4600억 원을 투자한 군산조선소 시설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자산이다. 회사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 현대중공업 구원투수로 경영복귀
2009년 11월 현대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난 뒤 5년 만인 2014년 8월에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맡으며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업황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권오갑 사장과 투톱체제로 경영정상화에 힘을 쏟았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에 영업손실 3조2495억을 내며 크게 휘청거렸다. 최길선은 원가절감을 위해 유사한 기능을 맡고 있는 중복된 조직을 통합하거나 폐지하는 등 수익성 위주의 사업구조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는 2014년 10월에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의 영업조직을 통합한 선박영업본부를 출범했다. 해외 25개 법인과 21개 지사 등 46개 해외조직 가운데 성과가 낮은 법인과 지사도 통합했다.

2015년에는 기자재 대량구매를 통한 원가절감과 해양분야의 설계·영업력 강화를 위해 해양사업본부와 플랜트사업본부를 통합한 해양플랜트사업본부를 만들었다.

그룹 역량을 핵심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씨앤에프 주식을 매각했다. 풍력기어박스를 생산하는 독일 야케법인과 건설장비 엔진을 생산하는 현대커민스 등 부실법인도 청산했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46조2317억 원, 영업손실 1조5401억 원을 냈다. 2014년과 비교해 매출은 12.1% 줄었고 영업손실은 1조7천억 원가량 줄었다.

△ 현대중공업 성장 이끌어
2006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이 된 이후 조선부문을 세계1위로서 경쟁력을 더욱 높이면서도 해양플랜트와 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등 비조선사업의 비중도 확대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현대중공업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25배 늘어났다.

당시 노사관계를 안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다. 현대중공업은 최길선 사장 시절에 무분규 파업기록을 이어갔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3년 동안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협약을 위임받으며 노사관계의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노사문화 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다른 기업들도 현대중공업이 보여준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본받아 국가 발전을 위해 노사가 상호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11월에 현대중공업 수주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2008년보다 신규수주가 2.9%에 그쳤다. 최길선이 저가수주를 회피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Who Is ?] 최길선 현대중공업 자문역
▲ 현대중공업 실적.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현대중공업이 흑자기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체질개선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에 조선3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지만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을 제외하면 아직 주력사업인 상선과 해양플랜트부문의 실적이 반등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최길선은 최근 울산조선소 도크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생산능력을 줄여 불황에 버틸 체력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한편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통해 본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4월1일 비조선사업부를 인적분할해 각각의 독립법인으로 세운다. 현대중공업은 전기전자와 건설장비, 로봇·투자부문을 분할하면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이 주력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다져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길선은 노조를 설득해 지배구조가 재편되는 새 체제를 이른 시일에 안착하도록 해야 한다. 노사갈등이 빨리 봉합되지 않을 경우 현대중공업이 추진하는 경영정상화 작업에도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최길선은 현대중공업 회장으로서 지배구조 개편이 회사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권오갑 부회장, 강환구 사장과 함께 노사갈등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 평가

1972년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을 설립할 당시부터 현대중공업에 몸담은 창업공신이다. 현대중공업이 글로벌 1등이 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회사 안팎으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후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중공업 임원들을 거느리고 조선소를 살펴보다 한 곳을 지목하며 계열사 공장을 지어야 하니 부지를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최길선은 이 지시를 “세계 최고 조선소로 크는데 꼭 필요한 공간이어서 안됩니다”라며 반대했고 장소를 옮겨 다니며 두번 더 정주영 회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정 회장은 그 후 막내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이 조선소(한라중공업)를 차리고 도움을 청하자 최길선을 추천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 3대 조선 계열사 사장을 모두 지내 ‘직업이 조선소 사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조선소 현장에서 36년을 보낸 현장형 CEO로 요즘도 600만㎡(약 180만 평)에 이르는 울산조선소 작업장을 직접 둘러보며 직원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오뎅 국물도 인부들과 스스럼없이 나눠 마시던 정주영 명예회장처럼 늘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소통한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통한다. 설계와 생산, 생산기획, 조선소 레이아웃(LAYOUT) 설계 등을 거쳐 최고 경영인의 자리에 올랐고 조선현장에서 37년을 보내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중공업이 국내 최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건조하고 세계최초로 선박육상건조 방식을 도입하는데 공을 세워 2000년대 한국 조선업이 세계 1등으로 떠오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주변에 “처세술을 싫어하며 우직하게 일하는 것만을 추구해왔다”는 말을 종종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대표로서 2009년 3월부터 2009년 11월 사임할 때까지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며 급여를 받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새벽수영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인 군산에 애정이 깊다. 군산대학교에 1억1천만 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하고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지내면서 군산에 조선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2010년 군산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1년 군산대학교 1호 석좌교수로 재직하는 등 군산대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3년 이공계 출신 CEO로서 이공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상담 멘토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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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이 1월20일 전북 군산시청을 찾아 "일감부족 현상으로 군산조선소의 도크를 당분간 멈춰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69년 전주제지에 입사해 1972년까지 일했다.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생산기획담당 이사, 조선사업본부 상무와 전무를 거쳤다. 1993년 한라중공업 조선사업본부장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7년 한라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2001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2004년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뒤 2005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다시 맡아 2009년까지 역임했다.

현대중공업 대표에서 물러나 가톨릭관동대학교 에너지자원플랜트공학부 석좌교수, 관동대학교 산학협력 부총장, 군산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조선협회 회장,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현대중공업이 2014년 2분기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자 비상경영체제 일환으로 현대중공업 조선해양플랜트부문 총괄회장으로 선임됐다.

2016년 말 인사에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회장만 유지했다.

2017년 말 인사에서 현대중공업 자문역에 임명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64년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군산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 기타

2009년 3월부터 2009년 11월 사임할 때까지 무보수 경영 선언하에 급여를 받지 않았으며 현재 받고 있는 연봉도 5억 원 미만이라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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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이 2015년 5월19일 오후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록


“세계경기 불황이라는 외부변수도 있지만 과거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고비용 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우리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수주가 회복되는 상황이 올 때 반드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경쟁력 회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자구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겪겠지만 모두 힘을 합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는데 동참해 달라.” (2016/07/01, 현대중공업 본사 체육관에서 열린 비상경영설명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자구계획안에 협조해줄 것을 호소하며)

“이제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조선소와 경쟁하는 상황에 몰렸다. 가격과 품질, 납기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경쟁o서 이기지 못하면 일자리는 없어진다.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직 우리의 노력만이 우리의 일자리를 지킨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력에 진정한 협력과 동참을 기대한다.” (2016/04/26, 권오갑 사장과 강환구 현대미포조선 사장, 윤문균 현대삼소중공업 사장, 김재훈 힘스 사장, 이홍기 현대E&T 사장 등과 함께 임직원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며)

“지난해 유가 하락과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등 어려운 경영환경으로 2년 연속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거둬 주주들에게 죄송스럽다. 시장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올해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통해 반드시 흑자를 달성하겠다.” (2016/03/25,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제4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근 10년 동안 비대해진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직언하는 사람도 없었다. 과연 지금도 세계 1등 회사인지, 각 사업이 국내 1위 자리라도 지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안타깝다. 정주영 창업자님의 15주기를 맞아 묘소 앞에 선 순간 우리의 자만심과 나태함으로 회사가 어려워진 것에 대해 혹독하게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16/03/22, 현대중공업 창립 44주년을 하루 앞두고 권오갑 사장과 공동명의의 담화문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며)

“정주영 창업자는 우리 민족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 그리고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추진력으로 세계 굴지의 회사들을 키워내셨다.” (2016/03/21,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15주기를 맞아)

“중국 조선업 경쟁력의 60% 이상은 정부다. 정부가 주도해 선박 금융을 지원하는데, 기업들의 기술력이나 경쟁력은 뒤쳐진다.” (2014/08/1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적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먼 훗날 후손들의 삶의 터전이 우리의 헌신으로 이뤄졌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역량과 열의를 총동원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 (2014/8/12, 현대중공업 회장 취임 이후)

“한국 조선산업은 유럽, 일본, 중국 등 전 세계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 경쟁력 우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회원사간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노력하겠다.”(2009/3/19, 제 10대 한국조선협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조직, 인원, 투자, 각종 비용 집행을 근원부터 점검해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 운영하는 방안을 강구하라. 호황기에 익숙하게 행했던 고비용구조나 업무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해야 한다.”(2009/01/05,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CEO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전 처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테크닉엔 익숙하지도 않다.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의 기분만 맞추다간 정말 필요한 일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다. 충돌하는 일이 있더라도, 싫은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면 된다.”(2007/06/2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필요하다면 해외 진출을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우리조선업체가 중국에서 하다보면 우리 기술이 알게 모르게 유출될 수 있다.”(2007/04/1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오늘날 조선산업이 누가 뭐래도 한국의 대표적인 1등 산업으로 성장한 것은 설계인력과 현장인력, 최적화된 설비시스템이 화음을 이룬 데 있다. 세계 조선 1위에서 5위를 휩쓰는 국내 조선기술은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7/01/07, 울산 조선소의 발전에 대해 감회를 소회하며)

“입사하고 얼마 안 돼 완성한 선박 1호선 시운전 때였다. 지금이야 2~3일이면 끝나지만 그때는 두 달이 걸렸다. 300명가량이 승선했는데 나는 배 속력이 제대로 나는지 재는 일을 맡았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시운전이 끝나고 너무 기뻐 길이 340m, 폭 58m에 이르는 갑판을 힘든 줄도 모르고 닦았다.” (2007/01/07, 1974년 현대중공업이 처음 만든 선박 시운전을 떠올리며)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미국 GM사의 경영위기와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약진은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 평소 기업이 잘나가고 있을 때, 어려울 때를 대비해 사전에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2005/10/24, 창사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전 임직원 대상 경영 특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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