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목표 기반 탄소감축협의체(SBTi)’이 30일(현지시각) 발표한 기술 보고서에 포함된 '스코프 3 토론 문서(Scope 3 Discussion Paper)' 표지. < SBTi > |
[비즈니스포스트] 국제 기후목표 인증기관에서 탄소상쇄를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탄소상쇄를 위한 배출권이 거래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에도 타격이 갈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상쇄는 종래에 기업들이 자사 활동에 친환경이라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로 사용돼 왔던 만큼 ‘그린워싱(친환경 포장행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0일(현지시각) ‘과학 목표 기반 탄소감축협의체(SBTi)’는 기업 넷제로(탄소중립) 목표 평가를 위한 `기술 보고서(technical publication)`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SBTi인증을 받는 기업들에 내년 기후 목표 수립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발간됐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지난 몇 달 동안 논란이 됐던 탄소상쇄를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부분이다.
탄소상쇄는 기업이나 기관이 탄소배출권을 확보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를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구입하는 배출권은 주로 재생에너지 사업, 녹지조성사업, 탄소포집 등을 통해 발급돼 자발적 탄소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SBTi는 CDP, 세계자원연구소(WRI), 세계자연기금(WWF),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세계 기후목표 인증기관 가운데 가장 권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SBTi는 인증 기업들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에서 탄소상쇄를 인정해주는 범위를 전체 감축 실적에서 10% 아래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지난 4월 SBTi 이사회가 돌연 스코프3(공급망 내 배출)에 한해 탄소상쇄를 모두 인정해주겠다고 발표해주면서 논란이 일었다.
환경단체들과 학계 일각에서는 탄소상쇄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는데도 기업 온실가스 배출에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이를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SBTi 이사회는 안팎의 격렬한 반대에 일주일만에 계획을 철회했고 책임자였던 루이즈 아마랄 SBTi 최고경영자(CEO)는 7월초 사임했다.
SBTi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스코프3 토론 문서에서는 탄소 배출권을 포함해 환경 인증서가 과학 기반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연구할 것”이라며 “다만 탄소 배출권과 관련된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를 다룰 때 탄소상쇄를 (감축 실적으로) 포함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이에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SBTi가 4월에 있었던 탄소 상쇄 인정 발표와 관련된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질 뒤프란 카본마켓워치 정책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보고서는 4월에 내놨던 발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라며 “당시 SBTi는 일부의 의도를 다른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진행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 애플 녹지조성사업 홍보 페이지 이미지. <애플> |
외신들은 이번 발표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자발적 탄소시장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SBTi가 탄소상쇄를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에 “아직 출발 단계에 있는 자발적 탄소 시장이 이번 발표로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자발적 탄소 시장 관계자들도 이번 보고서를 비판하고 나섰다.
탄소배출권 등급평가기관 ‘비제로 카본’의 토마스 리켓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번 발표로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있어) 다시 한 번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사라진 상황에 방치됐다”며 “향후 12개월 동안 기업들이 SBTi 인증체계에서 이탈하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자발적 탄소 시장이 위축되면 탄소상쇄를 활용한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이번 SBTi 보고서는 그린워싱이라는 오명으로 이미 점철된 탄소상쇄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블룸버그가 지난해 10월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자발적 탄소배출권 업체 `카리바`가 감축 실적을 부풀린 채 배출권을 판매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탄소배출권 시장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는 일로 여겨졌다.
당시 바우터 카이퍼스 ACT 자산운용 매니징 디렉터는 블룸버그를 통해 `카리바 건은 매우 심각한 사례`라며 `앞으로 시장이 어떤 식으로 이 같은 문제를 고쳐 나갈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CT 자산운용은 카리바에서 탄소 배출권 1만 개를 구입했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