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 본부에서 열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시민사회 연속 토론회'에서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보면 2038년까지 원자력발전소 30기를 운영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수명이 다해서 멈춰 있는 원전까지 포함해 단 한 기도 퇴출하지 않은 채 운영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 본부에서 열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시민사회 연속 토론회'에서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원전 운영 계획이 원전이 있는 지역 시민들은 굉장히 불안해 하는 상태인데 행정계획은 이를 전부 무시한 채 진행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는 기후위기비상행동,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 탈석탄법연대, 탈핵시민행동이 주최하고 플랜1.5, 녹색연합 등의 주관으로 열렸다.
발제를 맡은 이영경 사무국장은 “11차 전기본에서 수명 연장이 결정된 한빛 원전이 있는 부안군에서는 한수원을 향해 계획 재고를 요청했으나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부안군에선 지난달 규모 4.8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수원 등에 따르면 원전에는 큰 피해는 없었으나 원전을 향한 주민 불안감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한빛 원전이 제9차 전기본에서는 원래 퇴역이 예정됐던 노후 원전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이 사무국장은 “(11차 전기본은) 기존 수명 연장 절차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주민 수용성 확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또 전기본에서 언급한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해서도 한수원은 전기본에 어떤 방식으로 원전이 건설된 것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원전을 무탄소 전원으로 분류하면서 굉장히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늘리는 것처럼 언급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그린워싱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원자력 에너지의 친환경 여부는 꽤 오랫동안 이어진 논란거리다. 1997년 교토의정서가 체결될 당시에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하자는 프랑스와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주장이 있었으나 대다수 국가가 이를 반대하면서 결정이 보류됐다.
올해 5월 유럽연합(EU)에서는 탄소중립산업법(NZIA) 최종안에 엄격한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원자력을 녹색 기술로 포함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원자력 에너지의 탄소 감축 효율이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원자력 발전은 온실가스 1.5기가톤을 감축할 것으로 분석된 반면 재생에너지 감축 규모는 9기가톤에 달할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무국장은 “IPCC분석은 핵발전이 감축할 수 있는 탄소량은 굉장히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핵발전은 유리한 고지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원전 계획이 송전망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전부터 늘려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다른 발제자로 나선 이상복 이투뉴스 기자는 “11차 전기본에서 2038년까지 건설하겠다는 원자력과 태양광을 합치면 약 80기가와트에 달하는 규모”라며 “하지만 한국전력에서는 2030년까지 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송배전망 확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전 등에서 주요 대안으로 꼽는 것은 초고압직류송전(HVDC)이다. 교류 방식을 사용하는 기존 전력망과 달리 직류를 통해 대량의 전력을 송전하는 기술이다.
교류 송전보다 에너지 손실이 적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 때문에 차세대 원거리 송전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 기자는 “북당진에 건설된 HVDC를 보면 원래 3기가와트 규모로 건설됐는데 지금 송전되는 전력을 보면 1기가와트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HVDC는 생각보다 계통복합적으로 여러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11차 전기본에서 정부는 분산전원 정책을 추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지방에 발전소를 건설하고 송전은 수도권으로 하는 모순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 기자는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소멸을 가속화하는 메가시티 공약은 계속 난무하는데 11차 전기본을 보면 수도권 발전소 건설 계획은 하나도 없다”며 “정권 변동에 따라 에너지 계획이 계속 바뀌는 모습을 보이는데 좀 더 일관적인 정책 추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