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7과 미국이 각각 석탄 발전을 퇴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국을 향해서도 석탄 퇴출을 향한 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삼척블루파워 건설현장. <삼척블루파워> |
[비즈니스포스트] 전 세계 주요국들의 석탄발전소 퇴출 정책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 역시 국내에서부터 석탄발전 퇴출을 향한 많은 압박을 받고 있는데 국제적 압박까지 더해지며 다음 국가에너지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와 CNBC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G7 국가들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 장관 회의에서 2035년까지 석탄발전을 사실상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2035년 이후 가동하는 석탄발전소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100% 포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탄소 포집(CCS) 기술로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100% 잡아두는 일이 불가능하다.
앤드류 보위 영국 원자력·재생에너지 장관은 CNBC와 인터뷰에서 “이번에 G7 장관들이 이뤄낸 합의는 역사적인 성과”라며 “우리는 2030년대 전반기 내로 석탄 발전을 완전히 퇴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이번 합의와 관련한 세부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정식 발표는 이번 회의가 마무리되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G7 결의안은 지난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도입한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이어 나온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환경보호청은 해당 규정을 통해 2032년까지 발전소를 통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90%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에 2039년까지 탄소를 완전히 포집할 능력을 갖추지 않은 석탄발전소는 모두 가동이 중단된다.
사실상 서방 주요국들이 모두 석탄발전 중단이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루카 베르가마시치 이탈리아 싱크탱크 에코클라이밋 창립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번 석탄 발전 퇴출 계획으로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석탄 투자에서 손을 떼고 친환경 기술 투자를 가속화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신규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을 포함해 국내 석탄 발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 위치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1호탑. <산업통상자원부> |
정부는 2023년 1월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6년 이후에도 석탄 발전 비중을 14.4%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2036년까지 폐기되는 석탄발전소는 28기인데 같은 기간 동안 신규 발전소 4기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강원도 삼척시에 건설되고 있는 ‘삼척블루파워’로 애초 지난 19일 가동이 예정됐다. 하지만 국내외 환경 및 에너지 전문가들은 삼척블루파워가 경제성은 물론 에너지 확보 측면에서도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최근 글로벌 모니터 에너지(GEM), 시에라 클럽 등과 함께 내놓은 ‘석탄의 경제 대전환’ 보고서를 통해 "삼척블루파워가 자금 확보와 전력망 연계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은 국내 석탄발전 자금 조달 어려움과 사업 리스크 해결을 위해 잘못된 해결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석탄발전소 폐쇄를 우선순위로 둬야 함에도 송전이 제한된 석탄발전소가 인근 수요처에 직접 전력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했다”고 지적했다.
전력거래소 국가 전력계통 현황에 따르면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 수도권으로의 송전 용량은 약 11기가와트(GW)다. 삼척블루파워 1, 2호기가 모두 가동되면 동해안 발전량은 합계 17기가와트가 넘는데 이를 모두 수도권으로 보낼 만한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경북 울진부터 경기 가평까지 이어지는 초고압 직류송전선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으나 애초 2021년 말 준공 계획이 2026년 하반기까지로 밀렸다. 산불과 입지선정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 해도 확보되는 송전 능력은 합계 19기가와트인데 원전 정책으로 2036년까지 32기가와트까지 늘어날 동해안 발전용량을 감안하면 한참 부족하다.
더구나 삼척블루파워는 사업비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총사업비 4조9천억 원 가운데 1조 원이 조달되지 않은 채 공사에 착수했고 이를 메꾸기 위해 2019년부터는 회사채 1조1500억 원을 발행했다.
하지만 2021년부터 5차례 나눠 발행된 채권 9500억 원은 기후리스크 인식이 높아진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이 때문에 삼척블루파워는 애초 지난해 10월로 예정됐던 가동일도 계속 밀리고 있다.
정부는 투자 저해 요소가 된 기후리스크 해소를 위해 석탄발전소에 암모니아 혼소를 장려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할 것으로 지적됐다.
장석환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이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체하는 대신 암모니아를 탈석탄 전환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석탄발전소 수명 연장으로 이어진다”며 “석탄 의존도를 높여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국내외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이 에너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다음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석탄발전 퇴출 방안이 반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플로라 샹페노아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 석탄 프로그램 디렉터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국가는 더 조속히 폐쇄에 나서고 신규 석탄발전 계획이 있는 국가는 이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져올 편익을 앞서가는 국가에 빼앗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