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재욱 인터오페라 부회장. 진 부회장은 리먼브러더스, 슈로더, 크레디트스위스 등을 거쳐 세계적 금융그룹 UBS에서 UBS자산운용 싱가포르 대표이사 및 아태지역 부대표, 한국에서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등 30년 넘게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활동한 금융전문가다. <진재욱 제공> |
[비즈니스포스트]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바샤커피(Bacha Coffee).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 매장에 들르거나 지인에 선물할 목적으로 구매하게 되는 대표적 상품이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브랜드지만 정작 사용되는 원두는 싱가포르산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입한 원두를 싱가포르에서 로스팅해 포장한 뒤 팔 뿐이다. 바샤커피에는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중개’ 역할을 통해 성장한 싱가포르의 국가적 정체성이 녹아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은 현재. 싱가포르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와 탄소배출권 등 거래시장(이하 REC 등 거래시장)에서도 새로운 중개 중심지가 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REC 등 거래를 위한 플랫폼 구축에 뛰어든 한국인이 있다. 바로 진재욱 인터오페라 부회장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2024년 1월 한국을 방문한 진 부회장을 만나 REC 등 거래시장과 관련한 그의 생각을 들어 봤다.
진 부회장은 30년 넘게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활동한 금융전문가다.
1991년 미국 뉴욕의 리먼브러더스에 입사한 뒤 슈로더, 크레디트스위스 등을 거친 뒤 1997년에 세계적 금융그룹 가운데 하나인 UBS에 합류했다. 이후 UBS자산운용 싱가포르 대표이사 및 아태지역 부대표를 지냈고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에서 하나UBS자산운용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진 부회장이 2020년에는 싱가포르에서 인터오페라의 공동 창업자가 됐다.
인터오페라는 블록체인 인프라 제공업체로 REC 등 거래 플랫폼 ‘오페라X’의 공식 기술파트너다. 오페라X는 국제결제은행(BIS) 홍콩 혁신센터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공동으로 추진한 '제네시스 2.0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진 부회장이 REC 등 거래시장에 뛰어든 것은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가 통상환경을 좌우할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공급망 관리 차원으로 주요 다국적기업들이 주문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확보하는 문제는 조만간 수출로 먹고 사는 아시아지역 국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진 부회장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탄소배출권의 거래 역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은 앞으로 3~5년이면 충분히 성장할 것이니 이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현재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진 부회장은 인터오페라의 오페라X를 통해 REC 등 거래시장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으로 차별화 방향을 잡았다.
“금융업계를 떠난 뒤 새로운 일을 해보려 구상하는 중에 핀테크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과 만나 교류를 하다 보니 금융과 기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일에 확신이 생겼다.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암호화폐가 우선 떠오를 수 있는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나 탄소배출권은 모든 정부가 공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진 부회장이 몸담은 인터오페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현재 REC 등 거래시장의 과제인 이중 계산 등 문제 해결을 넘어 새로운 시스템 구축까지 바라보고 있다.
“인터오페라는 현재 REC 등 거래 플랫폼 구축 외에도 인증서를 자동으로 등록, 발행, 고객을 위한 수탁, 거래, 상쇄(Off Set) 등 처리는 물론 추후적인 ESG리포팅까지 원활하게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진 부회장이 새로운 구상을 펼칠 나라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여러 요소를 고려한 결과다. 그는 REC 등 거래시장을 향해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관심이 특히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REC 등 거래시장과 관련해서는 대기업들이 주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동남아시아 지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사업이라고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탄소배출권을 창출하는 프로젝트는 사실 선진국에서 하기 어려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린 인프라 확충을 통해 세계의 공장을 유치하려는 의도도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싱가포르는 특히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국제탄소배출권 거래소인 ‘클라이밋 임팩트 X(CIX)’를 열기도 했다.
진 부회장은 REC 등 거래시장에서 한국이 싱가포르와 협력할 필요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싱가포르는 금융 측면에서 세제 등 관련해 큰 혜택이 있고 최근에는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 위상을 다지고 있다. 최근에는 REC 등 거래시장을 구축하면서 녹색 경제 영역에서도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싱가포르가 국제기구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나라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한국은 싱가포르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대외적 평가가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진 점은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중동과 협력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도 힘줘 말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동안 한국의 위상이 워낙 크게 높아졌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는 거부감 없이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동에서도 한국에 강한 친근감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시아가 동북아시아와 중동을 아우를 수 있는 위치인 만큼 싱가포르에서 동남아시아의 장점과 한국의 기술, 중동의 자본을 연결할 수 있는 기업을 한번 키워보고 싶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