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실적 부진과 원인
두산중공업은 2020년 연결기준 매출 15조1324억 원, 영업이익 1540억 원, 순손실 8384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2019년과 비교해 매출은 3.4% 줄고 영업이익은 85.7% 급감했다. 순손실 규모는 7341억 원 늘었다.
순손익만 따지면 두산중공업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째 순손실만을 보고 있다. 이 기간 누적 순손실은 3조5261억 원에 이른다.
두산중공업의 실적 부진을 놓고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탈석탄 정책 탓이라는 말도 일각에서 나온다.
두산중공업은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등 전통적 발전소의 주기기 제작을 주력으로 한다.
7차 전력수급계획이 수립될 때까지만 해도 두 발전소는 국내 전력수급계획상 발전용량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정부는 2017년 8차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면서 두 발전원의 비중을 장기적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대신 태양광과 풍력,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원 비중을 확대했다.
정부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두산중공업은 순손실 행진을 이어가지 않고 다시 이익을 보는 구간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두산중공업 실적 부진의 원인을 정부정책 변화가 아닌 경영상의 실책으로 보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8차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기 이전부터 글로벌 발전시장은 뚜렷한 탈석탄 기조를 보였다.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나 독일 지멘스 등 유수의 발전회사들도 실적 부진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박지원을 포함한 두산중공업 경영진이 글로벌 발전시장의 친환경 중심 전환에 둔감했으며 다음 성장동력을 일찌감치 준비하지 못해 회사가 순손실만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
두산중공업도 “매출의 대부분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나온다”고 설명하는 등 실적 부진의 원인을 국내 정책 변화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다.
두산중공업은 글로벌 발전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가스터빈과 풍력터빈, 수소, 소형 모듈원전 등 사업을 육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박지원이 글로벌 에너지시장의 변화에 대비를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의 예상보다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는 시선도 있다.
박지원은 일찍부터 가스터빈과 풍력터빈을 두산중공업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 두산중공업은 관련 연구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수행했다.
가스터빈의 경우는 글로벌 발전시장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이 호황기를 지나고 있었던 2013년부터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박지원은 가스터빈 원천기술을 보유한 이탈리아 회사 안살도에네르기아의 인수도 타진했으나 현지 여론의 반대에 막혀 무산됐다.
두산중공업은 자체사업부문 워터BG를 통한 해수 담수화사업이나 독일 자회사 두산렌체스 인수를 통한 폐자원 에너지화플랜트(WtE)사업도 준비하고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적으로 짓기 위한 초초임계압 화력발전 주기기 제작기술도 확보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석탄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출 수 있다.
△두산중공업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 풍력터빈
두산중공업은 풍력발전기용 터빈 제작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수준과는 다소 격차가 있다.
두산중공업은 5.5MW급 풍력터빈의 국제 형식인증을 2019년 7월에야 받았다. 2022년 상용화를 목표로 8MW급 풍력터빈의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글로벌 풍력터빈시장에서는 풍력터빈의 발전용량 대형화가 진행 중이다.
2021년 3월 현재 글로벌시장의 주류 풍력터빈은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 독일-스페인 지멘스가메사, 덴마크 베스타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스페인 노르덱스 등이 제작하는 8MW급 터빈이다.
이들은 12MW급 풍력터빈의 기술개발을 완료했으며 베스타스 등 트렌드의 최전선에 선 회사는 15MW급 터빈의 연구개발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두산중공업의 8MW급 풍력터빈 개발은 의미가 크다.
현재 시장에서 15MW급 풍력터빈 기술개발까지 진행되고 있지만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것은 8MW급 풍력터빈이다. 이마저도 새 풍력발전단지 구축사업에 쓰이는 터빈들이며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많이 설치된 모델은 5.5MW급 터빈이다.
두산중공업이 8MW급 풍력터빈을 개발한다는 것은 글로벌 풍력터빈 제조사들과 경쟁하는 출발선에 선다는 의미이다.
두산중공업의 8MW급 풍력터빈 실증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극복 방안으로 친환경사업을 육성하는 ‘그린뉴딜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린뉴딜정책의 뼈대 가운데 하나가 해상 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이다.
2021년 3월 기준으로 정부는 전라남도 신안에 3단계에 걸쳐 2030년까지 8.2GW 규모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이 사업의 입찰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 12월 전라북도와 전북 서남권 해상 풍력발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업 유치 업무협약도 맺었다. 이 사업은 시범단지 200MW, 확산산지 2GW 등 모두 2.4GW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2028년까지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들의 본격적 착공시기와 맞물려 두산중공업이 8MW급 풍력터빈의 개발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도 이 시점에 맞춰 8MW급 풍력터빈의 개발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상 풍력발전 실증단지 구축사업을 8MW급 터빈의 실증 기회로 삼아 본사업 입찰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8MW급 풍력터빈의 실증을 무사히 마친다면 글로벌 풍력터빈시장에서도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에너지업계는 바라본다.
△두산중공업도 수소경제의 일원
정부는 장기적으로 수소를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수소경제위원회를 꾸리는 등 정책적으로 민간 수소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두산중공업도 수소사업을 미래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점찍어 육성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 4월23일 창원시, 창원산업진흥원과 수소 액화플랜트의 실증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액화수소를 하루 0.5톤 생산하는 수소 액화플랜트를 EPC방식(기자재 조달부터 공사, 시운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한 회사가 도맡는 방식)으로 건설하고 실증을 진행했다.
기체 상태의 수소는 영하 253도의 극저온에서 액화한다.
액화수소는 부피가 기체수소의 800분의 1 수준에 그쳐 저장과 운송이 쉽다. 기체수소의 저장탱크보다 작은 저장탱크를 활용할 수 있어 수소충전소 건설 부지의 규모도 줄일 수 있다.
이 실증을 거쳐 두산중공업은 2020년 11월6일 국내 첫 수소 액화플랜트를 수주했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까지 창원 본사 공장부지에 하루 5톤의 액화수소를 생산하는 수소 액화플랜트를 짓고 20년 동안 유지보수를 시행하기로 했다.
경남도와 창원시가 수소 액화사업을 위한 행정업무를 지원한다. 이들은 액화수소 구매도 확약했다.
BNK경남은행도 민간사업비용 610억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한다.
△두산퓨얼셀의 두산중공업 자회사 편입
두산퓨얼셀은 2020년 11월26일 최대주주 등 특별관계자가 기존 '두산 외 34명'에서 '두산중공업 외 34명'으로 변경됐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이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일가 13명이 두산퓨얼셀 보통주 1276만3557주(23%)를 두산중공업에 무상으로 증여한 데 따른 최대주주 변경이다.
2020년 11월25일 장 마감가격 기준으로 6062억6895만7500원어치다.
두산중공업은 두산퓨얼셀 지분을 넘겨받은 데 따른 자본확충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게 됐다.
두산퓨얼셀은 국내 발전용 수소연료전지시장에서 점유율 1위 회사다.
두산중공업은 이 지분 양수로 풍력터빈, 중소형 원자로, 가스터빈 등 기존의 친환경 발전기술에 연료전지를 더하게 됐다.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수소사업과 두산퓨얼셀 연료전지사업의 시너지 효과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의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두산중공업은 2020년 9월22일 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진행했다. 매각주관사는 크레디트스위스가 맡았다.
두산중공업은 가지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전량(36.07%)을 매물로 내놔 계약이 성사되면 경영권도 이전된다. 투자업계는 이 지분의 가치를 8천억 원 안팎으로 예상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자회사 두산밥캣의 지분 51.05%가 이번 거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투자안내문(티저레터)을 통해 밝혔다.
이에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사업부문만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될 것이라고 투자업계는 내다봤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은 2020년 연말 인수합병시장을 뜨겁게 달군 ‘빅딜’이었다.
전략적투자자들만 놓고 봐도 건설기계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엔진을 조달하는 한화그룹, 건설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픈 GS건설 등이 인수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글렌우드프라이빗에쿼티 등도 재무적투자자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한화그룹은 일찌감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GS건설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본입찰을 앞두고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크레디트스위스가 2020년 11월24일 진행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본입찰을 통해 인수후보는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KDBI) 컨소시엄과 유진그룹 지주사 유진기업으로 좁혀졌다.
현대중공업지주 컨소시엄이 결국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20년 12월23일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양해각서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중국 법인인 DICC의 소송 리스크와 관련한 특별 면책조항도 포함됐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는 DICC의 상장 실패에 따른 배상문제를 놓고 사모펀드들과 최대 1조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소송을 치르고 있었다.
1심은 두산인프라코어가, 2심은 사모펀드들이 각각 승소했다. 3심 판결만이 남은 가운데 사모펀드 연합이 보유한 DICC 지분 20%의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을 대법원이 인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양해각서에는 이 소송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을 두산중공업이 부담한다는 원칙적 면책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최종 패소한다면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를 8천억 원 안팎에 매각하고도 DICC 지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추가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법원은 2021년 1월14일 이 소송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사모펀드 연합이 보유한 DICC 지분 20%의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권한은 인정됐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21년 2월5일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4.97%를 8500억 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사모펀드 연합도 DICC 보유지분 20%를 이번 본계약에 얹어 매각하겠다는 뜻을 두산중공업에 전했다.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이 이 지분을 먼저 사들인 뒤 현대중공업 쪽에 넘겨야 한다.
두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지주는 사모펀드 연합의 DICC 지분 20%를 2천억 원 미만의 가치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두산중공업은 8500억 원에서 사모펀드 연합의 DICC 지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뺀 만큼만 마지막에 손에 쥐게 된다.
△두산중공업 경영 정상화로 가는 길
두산그룹은 2020년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6천억 원가량의 지원을 받았다. 순수 자금수혈만 따지면 3조 원가량이다.
이를 상환하기 위해 두산그룹은 보유 자산과 계열사들의 연쇄 매각에 나섰다. 가장 먼저 매각된 것은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골프장 클럽모우CC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 8월2일 하나금융-모아미래도 컨소시엄과 클럽모우CC 매각거래를 완료했다.
매각대금 1850억 원 가운데 회원권 입회보증금의 반환비용 등 금액을 제외한 1200억 원가량이 채권단 지원자금을 상환하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은 2020년 8월20일 벤처캐피탈 자회사 네오플럭스의 지분 96.77%를 신한금융지주에 730억 원을 받고 매각하는 주식 매매계약(SPA)을 맺었다.
두산은 2020년 9월4일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배터리용 동박회사 두산솔루스의 지분 18.05%를 2382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가 보유한 두산솔루스 지분 34.88%도 스카이레이크가 4604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두산은 이날 사모펀드 소시어스프라이빗에쿼티-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자체사업인 모트롤BG(유압기기사업)를 4530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도 맺었다.
2020년 9월21일에는 이사회에서 두산그룹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를 부동산 전문 투자회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8천억 원을 받고 매각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도 실시됐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 9월4일 이사회를 열고 1조3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의결했다.
액면가 5천 원의 보통주 1억2149만5330주를 주주배정 뒤 일반공모 방식으로 신규 발행하는 방식이다. 구주 1주당 신주 0.383982425주의 비율이다.
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는 애초 예정 발행가액인 1주당 1만700원보다 소폭 낮은 1주당 9980원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신주 청약률이 100.27%로 초과 청약까지 발생하는 등 유상증자는 흥행했다.
두산중공업은 유상증자를 통해 1조2천억 원가량을 확보하게 됐다.
두산그룹이 채권단 상환자금을 속전속결로 마련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중 어느 계열사가 팔리느냐에 쏠리게 됐다.
예상 기업가치로만 따지면 두 계열사 가운데 하나만 매각해도 두산그룹은 채권단으로부터 수혈받은 직접 자금지원 3조 원을 모두 상환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 법인 DICC의 사모펀드 보유지분 문제 등 복잡함을 안고 있어 시장은 두산밥캣의 매각을 점쳤다.
이런 예상을 깨고 두산인프라코어가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의 현금 창출원 역할을 두산밥캣에 맡기기로 결정한 셈이다.
△두산중공업 채권단 지원에 구사일생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2020년 3월과 6월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이 별도기준으로 3조8천억 원가량이었다. 그러나 2019년 말 기준 보유한 별도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3500억 원에 그쳤다.
코로나19로 자본시장이 경색돼 두산중공업이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도 없었다.
이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020년 3월 두산그룹에 1조2천억 원을 긴급 수혈했다. 같은 해 6월에도 1조8천억 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같은 해 4월 두산중공업이 상환해야 하는 외화공모채 6천억 원을 전환 대출해줬다.
대신 두산그룹은 2020년 5월29일 채권단과 두산그룹 경영 정상화방안에 합의했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의 사업 체질을 석탄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등 고전적 발전사업 중심에서 친환경발전사업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원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그룹이 보유한 자산뿐만 아니라 일부 계열사들까지 매각할 것도 함께 약속했다.
다만 채권단과 두산그룹은 두산그룹 경영 정상화 방안의 세부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채권단의 지원 덕분에 두산중공업의 상환압력은 해결됐다. 시장은 두산그룹의 지원자금 상환을 위한 행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투자업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배터리용 동박회사 두산솔루스와 연료전지회사 두산퓨얼셀뿐만 아니라 그룹의 현금 창출원인 건설기계회사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까지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두산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계열사 연쇄 매각이 저가에 이뤄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퍼졌다.
산업은행은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연쇄 매각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매각을 재촉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2020년 6월17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두산그룹의 자산 매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할 것이다”며 “매각의 기한을 정해 놓으면 쫓기게 되고 적정가격 아래로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최 부행장은 “두산그룹이 생각하는 매각 시기와 관련해 충분한 검증이 끝난 상태”라며 “자산 매각이 계획대로 된다면 긴급 자금지원과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두산그룹이 조기에 정상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두산중공업 경영위기의 본격화
두산중공업은 2020년 들어 재무난에 따른 경영위기를 마주했다. 시작은 2017년 4월 발행한 4998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였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 금액대로 발행회사의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다. 두산중공업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는 2020년 5월4일이 풋옵션(자산을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 행사가 가능해지는 날이었다.
두산중공업이 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처음 발행할 당시 이 사채의 주식 매입권리 행사가격은 2만3450원이었다. 이때만 해도 두산중공업 주가가 1만8천 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두산중공업이 신주인수권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증권업계는 내다봤다.
그러나 풋옵션 행사일을 앞두고 두산중공업 주가는 3천 원 수준에 그쳤다.
신주인수권부사채 가운데 그룹 지주사격 두산이 보유한 920억 원을 제외한 4078억 원에 상환청구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두산중공업은 2019년 말 별도기준으로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3500억 원가량에 불과했다.
두산중공업은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해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상환청구에 대응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며 자본시장에서 유동성이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용등급 AA급 미만의 회사들은 회사채 발행이 모두 흥행하지 못했고 채권 발행을 주관하겠다고 나서는 증권사도 거의 없었다.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은 BBB-급에 불과했다.
이에 두산중공업은 신주인수권부사채뿐만 아니라 과거 발행했던 채권들을 상환하기 위한 리파이낸싱(회사채를 발행해 기존 차입금을 상환하고 금리를 조절하는 재무전략)조차 진행할 수 없었다.
주가가 액면가인 5천 원에도 미치지 못해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상법상 액면가 미만 주식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려면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주주들이 이 유상증자를 허락할 리도 없었다.
두산중공업은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전환상환, 상환 만기가 다가온 차입금과 외화공모채 등을 합쳐 모두 3조8천억 원에 이르는 부채의 상환압력을 마주했다.
두산중공업이 자력으로 이를 상환할 길은 없었고 시장에서는 두산중공업이 파산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퍼졌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불안감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투자업계는 돌아본다.
두산중공업의 재무적 위기는 자회사 두산건설을 향한 무리한 지원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 많다.
두산건설은 2011년부터 2019까지 9년 연속으로 순손실을 냈는데 누적 순손실은 2조8338억 원이다. 이 기간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수혈한 자금은 유상증자와 보일러 열교환기사업 현물출자 등 직간접적 지원을 합쳐 2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두산중공업도 2011~2019년 누적 순손실 2조1318억 원을 봤다. 특히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동안은 단 한 해도 순이익을 내지 못했으며 이 기간만 따졌을 때 누적 순손실은 2조6877억 원이다.
△두산중공업의 ESG경영
두산중공업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등급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020년 두산중공업의 ESG경영에 통합 A등급을 매겼다. 구체적으로는 환경분야에서 A, 사회책임분야에서 A+, 지배구조분야에서 B+등급이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2016년 사회책임분야에서 B+, 2017년에는 지배구조분야에서 B+ 등급을 받았다. 조금씩 개선해 가는 추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분야는 두산중공업의 ESG경영에서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된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1주 보유주주에 부여하는 제도다.
두산중공업은 기업 지배구조헌장도 제정하지 않았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박지원은 현재 두산중공업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 ▲ 박지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가운데)이 2020년 9월17일 경남 창원시의 두산중공업 본사 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함께 가스터빈용 세라믹코팅 블레이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두산중공업 미래 성장동력의 다른 축 가스터빈
두산중공업은 새로운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인 가스터빈사업에서 순항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 12월23일 한국서부발전과 김포 열병합발전소에 가스터빈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두산중공업이 공급하는 가스터빈은 2019년 9월에 독자개발에 성공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이다. 두산중공업은 김포 열병합발전소에 가스터빈을 공급함으로써 실증에 나선다.
김포 열병합발전소는 2020년 착공에 들어가 2022년 준공된다. 두산중공업은 2021년 가스터빈을 출하해 김포 열병합발전소에 설치하고 준공 이후 2년 동안 실증을 진행한다.
이 실증에 성공하면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사업은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말 발표된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노후한 복합발전소 및 석탄화력발전소의 리파워링(발전소의 전력 생산원을 바꾸는 작업)을 고려하면 2030년까지 국내 복합발전소에 필요한 가스터빈 규모는 20GW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국산화로 향후 국내 복합발전시장에서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 9월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국산화에 성공해 한국을 세계 5번째 가스터빈 독자모델 보유국 반열에 올렸다.
가스터빈은 박지원이 이전부터 두산중공업의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점찍은 사업분야로 2013년 국책사업으로 채택됐다.
두산중공업은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위해 2013년 이탈리아의 대형 가스터빈회사 안살도에네르기아 인수전에도 참전했지만 현지 여론의 반대가 커 실패했다.
두산중공업은 자체 연구를 통해 사업역량을 기르는 쪽으로 노선을 바꿔 2021년 가스터빈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두산중공업은 2019년 1월 독자개발 가스터빈의 시제품을 선보였고 같은 해 9월 초도제품을 생산했다.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 독자개발에 글로벌 발전업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글로벌 발전시장에서 가스터빈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MHPS), 이탈리아 안살도에네르기아 등 4개에 불과하다. 시장 점유율로만 따지면 가스터빈은 GE, 지멘스, MHPS의 3자 독점시장이다.
이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 일찍부터 터빈 관련 기술을 연구했다.
가스터빈은 LNG(액화천연가스)복합발전소의 핵심기술이다. 제작기술을 제트엔진 등 비행체에 응용할 수 있어 항공과 우주 등 사업 확장의 여지가 크다.
가스터빈 제작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소재 국가들은 가스터빈기술을 극비로 취급한다.
국내에 외산 가스터빈을 도입해 지어진 LNG 복합화력발전소는 여럿 있다. 대부분 일본 MHPS의 터빈이 적용됐다.
다만 가스터빈을 정비할 때는 터빈 제작회사들이 직접 정비인력을 파견한다. 이들은 가스터빈을 정비할 때 부품의 규격이나 조립방식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가림막을 치고 작업한다.
가스터빈은 제작하는 회사가 소수인지라 제품을 만들어 발전소에 납품한 뒤 유지보수계약으로도 추가 수익을 낼 여지가 크다.
이종욱 두산중공업 상무는 가스터빈 초도생산품 공개행사에서 기자에게 “가스터빈은 비유하자면 면도날과 같다”며 “G사가 제작한 면도날과 D사의 면도기는 규격이 다른 것처럼 한 회사가 제작한 가스터빈의 유지보수를 다른 회사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사업은 발전소 공급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9월17일 창원 스마트그린산업단지를 방문하는 도중 두산중공업 창원 본사 공장을 현장 시찰했다.
문 대통령은 가스터빈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나서 “세계에서 네 나라밖에 못하던 것을 이제 우리가 하게 됐다. 아주 굉장한 일을 한 것이다”며 감탄했다. 이후 가스터빈 블레이드에 ‘대한민국 중공업의 힘!’이라는 서명을 남겼다.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정비서비스 계약
두산중공업은 2019년 6월24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의 정비 및 보수사업을 맡을 사업자에 선정됐다.
두산중공업은 이 계약을 통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알 다프라 지역에 위치한 바라카 원전 1~4호기 등 모두 4기의 정비서비스를 5년 동안 맡게 된다.
원자로를 비롯해 터빈과 발전기 등 핵심기기를 공급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전한 정비 및 보수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계약내용이다.
두산중공업은 “두산은 한국수력원자력 및 한전KPS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바카라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10년 이상 참여했다”며 “바라카 원전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쪽짜리 수주계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총 사업규모 2조~3조 원의 장기 정비사업을 10~15년 맡을 것이라는 애초 전망과 달리 5년짜리 단기계약에 그쳤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놓고 “발주처 측과 합의에 따라 사업의 연장계약이 가능하다”며 구체적 계약 변경 내용을 놓고는 말을 아꼈다.
△소형 모듈원전사업으로 손 뻗어
두산중공업은 2019년 4월29일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와 소형 모듈원자력발전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최초로 소형 모듈원전을 만든 회사다.
소형 모듈원전은 원전 핵심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을 원자로 용기에 담은 일체형 원전이 지하수조에 담겨있는 형태다.
만일의 사고로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더라도 지하수조가 냉각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았다.
이번 협약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뉴스케일파워의 소형 모듈원전 설계를 검토하고 원자로 모듈을 공급한다. 원자로 모듈은 핵 원료를 통해 증기를 발생시키는 원자력 증기공급계통(NSSS)으로 소형모듈 원전의 핵심설비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 7월부터 12월까지 뉴스케일파워에 지분투자를 하면서 사업협력을 위한 본계약도 맺었다.
소형 모듈원전은 친환경발전 중심으로 에너지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진행할 때 건설비용이 저렴하면서도 효율이 높고 안전하다는 강점을 들어 소형 모듈원전 관련 기술의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디지털혁신
박지원은 디지털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박지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 사업영역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해 회사의 가치사슬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설비 자동화 등을 통해 고정비 지출을 줄이고 이를 투자재원으로 쓰려는 목적이다. 산업환경의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두산중공업은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소 조기경보나 보일러 튜브 관리시스템 등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했다.
발전소 핵심설비인 스팀터빈 대형 버킷 생산을 자동화하고 보일러와 원자력공장에 용접 로봇을 도입해 2018년에 3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했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까지 자동화설비와 산업용 로봇 35종을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2022년까지 공장의 냉난방 설비와 작업용 도구, 전기, 가스 등 에너지 통합컨트롤센터를 구축하면 연간 약 42억 원을 아끼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 위한 인력 구조조정
박지원은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인적 조정을 시행했다.
두산중공업은 2018년 12월 직원 400여 명을 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전출했고 사무직에 한해서 만56세 이상부터 적용되는 조기퇴직 연령기준을 만 50세 이상으로 낮췄다.
2019년 1월부터는 과장급 이상 사무관리직이 2개월씩 순환휴직했다.
직원 수는 2016년만 해도 7728명이었으나 2019년 3분기 기준으로 6784명까지 줄었다. 이 기간에 140명이 넘던 임원 숫자도 60여 명으로 감소했다.
△인수합병을 통한 동유럽 진출 실패
박지원은 2006년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 부사장으로 일하며 루마니아의 중공업회사 르바르네르IMGB를 145억 원에 인수하는 과정을 주도했다.
철강 주단조, 원자력발전소 및 건설자재, 조선관련 부품 등을 생산하던 르바르네르IMGB를 사들여 두산IMGB로 두산중공업에 편입시키자 일각에서는 박지원이 두산중공업의 동유럽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두산IMGB는 두산중공업에 인수된 뒤 단 한 차례도 연간 순이익을 내지 못한 채 순손실만 보고 있다.
2014년에는 두산중공업이 두산IMGB를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인수 의사를 밝히는 곳조차 없어 매각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