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영에 바쁜 와중에 디지털농협의 첫 발을 내딛고 유통구조 혁신의 밑그림을 그렸지만 농업인 소득안정을 위한 핵심공약인 농업인 월급제와 관련해 구체적 시행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20일 농협 안팎에 따르면 이성희 회장이 취임한 뒤로 농협의 업무 전반에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회장은 4차산업혁명시대에 농업분야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디지털농협으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디지털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범농협 업무자동화를 지원하는 ‘NH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포털’을 개발해 방대한 자료를 비교·조회하거나 분석·입력하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주요 계열사와 일부 농·축협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한 뒤 내년부터는 전국 1118개 농·축협을 비롯해 모든 계열사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융권에서 로봇 프로세스자동화를 도입하는 일은 많지만 모든 계열사가 참여하는 방식의 포털시스템을 만든 것은 국내에서 농협이 처음이다.
7월22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는 참석자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안건을 논의했다. 이 회장이 ‘종이 없는 이사회’를 시작으로 범농협 업무환경에 디지털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농협 관계자는 "김병원 전 회장 시절엔 NH농협금융지주 차원에서만 디지털을 강조했는데 이성희 회장은 금융뿐만 아니라 경제사업을 아우르는 농협 전반에 디지털DNA를 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농협의 디지털 전환 외에도 농축산물 유통 모든 부문에 걸쳐 대대적 혁신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시도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부문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 농축산물 유통환경 변화가 빨라지는 만큼 실효성 있는 농축산물 유통혁신방안을 모색해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이 회장은 4월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출범시켜 유통혁신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바른 유통위원회는 10월 ‘농협의 농산물 생산·유통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이 회장은 올해 1월31일 회장에 올랐다. 취임과 동시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쉬지 않고 뛰었다.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원예농가 등의 피해가 커지자 전사적으로 꽃 소비 촉진 캠페인을 벌이고 취임식도 농가방문으로 대신하는 등 현장경영을 강화했다.
코로나19에 연이어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농가 피해가 늘어나자 피해복구 활동에도 여념이 없다. 최근 농협 59주년 창립기념식도 집중호우 피해복구 활동으로 갈음했다.
이 회장은 최근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6개월이 6일처럼 지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집중호우 등 당면 현안에 부지런히 대응하면서도 디지털 전환이나 유통구조 개선 등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주요 공약 가운데 ‘농업인 월급제’ 확대 도입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시행계획 등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농업인 월급제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대출’로 지역농협이 농민에게 소매대금을 선지급한 다음 수확 뒤 그 돈을 되돌려 받는 제도를 말한다. 이때 지자체가 대출이자비용을 지원해 농업인의 대출비용을 줄여준다. 2013년 경기도 화성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뒤 현재 각 지차체에서 개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농업인 월급제는 소득의 안정적 배분과 계획 경영을 통해 농가의 경영 안전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장은 농협이 나서서 농업인 월급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시행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재원을 마련하는 데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부를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