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허 회장이 올해 그룹차원에서 대형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계열사 전반의 재무구조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녹십자그룹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는 자회사인 GC녹십자헬스케어를 통해 2020년 2월 국내 1위 전자의무기록(EMR) 솔루션 기업 ‘유비케어’를 2088억 원에 인수했다.
유비케어 인수는 녹십자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자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2번째로 컸다.
3월에는 메이플투자파트너스가 조성한 프로젝트펀드에 핵심 출자자로 참여해 O2O(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 솔루션기업 ‘케어랩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허 회장의 이런 인수합병 움직임은 백신과 혈액제제 등에 치우친 녹십자그룹의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유비케어 인수는 기존 사업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연결하는 디지털헬스케어사업 확장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녹십자그룹 계열사들의 차입금은 증가하고 있다.
녹십자홀딩스의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2015년 말까지 1천억 원 내외로 유지됐지만 2020년 3월 말 기준 7154억 원까지 늘었다.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세전·이자지급전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도 0.7배에서 7.3배로 대폭 상승했다.
유준기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캐나다 혈액제제공장은 2017년 10월 준공됐으나 인허가 등의 문제로 가동이 지연되면서 비용 발생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비케어 지분투자 등으로 차입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계열 전반의 재무위험에 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녹십자그룹의 주력 사업회사인 GC녹십자도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GC녹십자의 순차입금은 2015년 말 194억 원에서 2019년 말 3416억 원으로 증가했다. 연구개발비와 고정비 부담은 증가하는 가운데 설비투자(CAPEX)가 늘면서 2016년 이후부터는 부족한 자금을 외부차입에 의존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재윤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5월 보고서를 통해 “GC녹십자는 단기적으로도 통합완제공장 마무리 투자, 오창 공장 기타생산 설비확충 등의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어 차입부담 확대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며 “GC녹십자 등급전망을 기존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결국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허 회장은 올해 5월 녹십자홀딩스 손자회사인 녹십자엠에스의 ‘혈액백’사업을 매각했다. 혈액백은 녹십자엠에스가 50여 년 동안 운영하던 사업으로 한때 연매출 200억 원을 내던 알짜사업이었다.
녹십자그룹 관계자는 “녹십자엠에스 혈액백사업은 국내의 한 기업에 매각했으며 인수주체와 매각금액 등은 비공개”라고 말했다.
올해 초 인수를 추진했던 케어랩스도 포기했다.
오히려 허 회장은 최근 케어랩스 지분을 매각했다.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웰빙이 보유한 케어랩스 지분은 7.24%였는데 6월24~26일 장내매도를 통해 66억 원어치를 팔아 지분율이 2.03%로 감소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허일섭 회장은 2003년 경남제약과 대신생명을 인수했고 2015년 일동제약 인수도 검토했을 만큼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라며 “하지만 최근 계열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비케어 인수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허 회장은 과거 많은 인수합병에 성공한 적이 있다.
허 회장은 2003년 1600억 원에 인수한 대신생명을 8년 뒤 현대자동차에 2283억 원에 매각했다. 2003년에 인수했던 경남제약도 2007년에 되팔아 35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2012년부터는 일동제약에 투자해 지분율을 29.4%까지 늘렸는데 인수합병에는 실패했지만 지분 매각을 통해 661억 원을 벌었다.
또 하반기부터 계열사들의 실적이 개선돼 자금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긍정적 측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