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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  2020-01-02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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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법무부 장관.

◆ 생애

추미애는 문재인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의 사법개혁을 완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검찰개혁 문제를 놓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어떻게 합을 맞출지 주목을 받고 있다. 

1958년 5월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유아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여성으로 첫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다.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로 불리기도 했다.

민주당 분당 사태 당시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에 부딪혀 총선에서 낙마했다.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한 뒤 계속해서 국회에 입성하면서 ‘여성 첫 지역구 5선’ 고지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면서 대구경북(TK) 출신의 첫 여성 당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집권여당 대표도 지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후임자로 임명되면서 검찰·사법개혁 과제를 넘겨받았다. 

직설화법과 목표에 돌진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원칙과 소신’을 최고의 정치덕목으로 꼽는다. ‘강기(剛氣)로 똘똘 뭉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잔다르크를 빗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 활동의 공과

△법무부 장관 지명부터 임명까지
추미애는 2020년 1월2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주도하게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10월14일 사퇴한 뒤 11월 중순부터 추미애가 유력후보로 거명됐다. 판사 출신이고 검찰개혁에 관심을 보여왔던 데다 5선 의원이라 인사청문회 통과도 비교적 쉬울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2019년 12월5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추미애 의원은 판사 시절에 이어 헌정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신과 개혁성을 보여줬다"며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소명의식을 갖추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호흡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 문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추후에 차차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2019년 12월3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찰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추미애는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이 입법되면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완료해 개혁법안이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31일 국회에 2020년 1월1일까지 추미애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 뒤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지 않자 2020년 1월2일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 
추미애는 2018년 10월22일 민주당 혁신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혁신성장동력을 찾아내면서 관련 정책의 민주당 내부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11월 새만금 수상 태양광발전소를 찾아 새만금 개발에 따른 재생에너지 등의 혁신과제 수행을 논의했다. 

2019년 초 에너지신사업과 바이오헬스케어 등 분야별 혁신성장계획을 내놓았다. 그 뒤 벤처기업인에 이어 바이오의료기업인들과 만나고 5세대(5G) 이동통신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개발현장 등을 잇달아 찾았다. 2019년 4월 경상북도 구미에서 '구미형 일자리' 만들기에 온힘을 쏟겠다고 약속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는 행보를 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8년 12월 추미애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구을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역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2020년 4월 총선에서 추미애와 오 전 시장이 맞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추미애가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총선에 사실상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둘의 대결도 이뤄지지 않게 됐다.  

△민주당계 최초로 당대표 임기 완수
추미애는 2018년 8월2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임기 2년을 마쳤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대표가 임기 도중에 물러나지 않은 것은 추미애가 처음이다.

그는 2018년 8월22일 당대표 활동 성과와 평가를 담은 548쪽 분량의 백서를 냈다. 2018년 8월24일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적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 민주당의 아픈 역사를 끝냈다는 점이 큰 의미”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임기 도중 가장 뭉클했던 기억으로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를 꼽았다. 평화로우면서 헌법정신에 걸맞은 방식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2018년 8월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린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가 당선됐다. 추미애는 이때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백년정당의 역사를 써야 한다”며 “여러분과 함께 소임을 마치고 내려놓는 것이 이제 우리 정당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승리 공헌
추미애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에 당대표로서 공헌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결과 시도지사 17명 가운데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가운데 151명의 당선자를 냈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12명 가운데 11석을 민주당에서 차지했다.

추미애는 2017년 8월 정당발전위원회에서 지방선거 공천방안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민주당 시·도당 위원장들이 더불어민주당 당헌과 당규에 따라 공천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추미애는 국무위원 등의 공직자 인선에 민주당이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공천 논란이 합쳐져 추미애와 청와대, 민주당 내부의 ‘친문재인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추미애는 한 발 물러서 지방선거기획단에서 지방선거 공천에 관련된 당헌·당규 해석과 시행규칙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헌과 당규 기반의 공천 절차가 진행되면서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갈등도 봉합됐다.

추미애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2018년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전체 7천km 이상 움직이면서 후보들의 유세를 지원했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특히 힘을 실었다. 

중앙당 후원금 모금을 위한 홍보영상 ‘더치페이III-하드캐리!’ 영상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출연해 어깨춤을 추고 연기를 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민주당의 압승 직후인 2018년 6월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은 데는 경선 과정부터 본선까지 투명하고 공정하게 신뢰를 보여준 덕분”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효과’도 거의 절대적이었고 민주당도 단일대오로 일사불란하게 잘했다”고 말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18년 4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루킹’사건 대응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드루킹’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적극 대응했다.

2018년 4월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김동원씨 등 2명을 당에서 제명하고 ‘드루킹사건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추미애는 이날 회의에서 “드루킹사건을 계기로 물만난 듯 하는 야당의 저질 공세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드루킹사건은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수사당국은 드루킹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드루킹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경남지사 후보로 확정하며 드루킹사건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9년 5월9일 ‘드루킹 특검’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며 국회 정상화가 어려워지자 추미애는 “야당이 본질을 외면한 채 드루킹 바짓가랑이만 잡고 무모한 정쟁의 늪으로 국회를 끌고 간다”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같은 날 경남에서 열린 ‘민주당 필승 전진대회’에서 드루킹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후보에게도 “꿋꿋하고 당당하라, 절대로 쫄지 마라”며 격려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경수 후보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경남도지사로 당선됐다. 

△‘미투운동’ 옹호
집권여당의 여성 당대표로서 한국사회에 불어온 ‘미투운동’바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당에서 불거진 성희롱·추행 의혹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2018년 3월4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거리행진에 피켓을 들고 참석해 “미투운동, 위드유운동이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문화를 바꾸고 건전한 새로운 나라로 가는 길에 함께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2018년 3월5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안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한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대표로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안희정 도지사를 놓고 출당 및 제명조치를 밟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의 보도가 나온 뒤 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져 ‘신속한 대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투운동으로 고 장자연씨의 죽음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2018년 3월9일 “추악한 권력의 타락을 온몸으로 막고자 했으나 끝내 숨진 장자연씨와 관련해 검찰은 여지를 두지 말고 과감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8년 4월24일 당 윤리심판원에 선거캠프 여성 관계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강성권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상구청장 예비후보를 제명할 것을 지시했다.

△인터넷의 욕설·가짜뉴스 비판
2018년 신년사에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발, 가짜뉴스와 마타도어가 판치겠지만 국민과 함께 헤쳐 가겠다”며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2018년 1월8일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개설됐다. 추미애는 1월1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SNS에서 가짜뉴스와 인신공격, 욕설 등이 난무하고 있다”며 “이는 대단히 명백하고 상습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회 댓글조작·가짜뉴스법률대책단은 2018년 2월19일까지 총 375건의 가짜뉴스를 고소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그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소문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나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니고 오히려 가슴아픈 역사에 직접 동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논의로 야당 압박
2018년 1월12일 최고의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끝내 개헌 저지세력이 되겠다면 이는 민심 거역세력이 되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2월2일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하고 “올해 6월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으로,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개헌 요구에 적극 임하라”고 촉구했다. 야당도 개헌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국회가 개헌안 논의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2018년 4월3일 자유한국당이 개헌안을 확정하자 추미애는 “국회가 입법과 행정 전권을 행사하겠다는 사실상의 내각제”라며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한 총리가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국민주권, 3권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국민투표법 개정 무산으로 6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2018년 4월25일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이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기회를 날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7년 9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지공개념
추미애는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창한 '토지공개념'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는 개인 혼자만 소유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추미애는 2017년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언급하면서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인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기자단 간담회에서는 "헨리 조지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만들지 않은 노예와 토지 등을 시장에서 가격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그가 살아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고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는 2017년 11월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여권 안에서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에도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염 경기도지사가 2018년 9월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토지공개념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다만 이를 놓고 자유한국당 등에서 추미애가 '토지 국유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공격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는 2019년 12월30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토지국유화 표현을 언급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일익 담당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진행된 남북 사이 화해 분위기 조성에 여당 당대표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2017년 9월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에 동시 특사를 파견해 북미·남북 사이 투 트랙 대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전날인 9월3일 실시된 북한의 6차 핵 실험과 관련해 “한반도 정세를 위기로 몰아넣고 북한의 운명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정치적 도박으로 기록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14일부터 4박6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시를 방문해 미국의 민간 인사와 공직자들을 만나 한미동맹 강화 및 북핵 해법을 논의했다. 14일 열린 동포간담회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 테이블에 나온다면 북·미 수교도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30일 중국에서 열린 ‘세계 정당 고위급대회’에 참석했다. 다음날인 12월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한이 오판하지 않게 중국이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사이의 대화가 급진전하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며 해빙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2018년 2월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했다.

2018년 3월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지원 특별위원회’설치를 결정했다. 추미애는 “당 안팎의 한반도 외교 전문가를 모시고 대대적 정당외교 행보 차원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과 같은 협력의 틀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시청한 후 “참으로 감격스럽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을 위한 구체적 진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열린 만찬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했다.

2018년 9월30일 더불어민주당의 대미외교특사단 단장으로서 미국을 3박4일 동안 방문해 미국 의원들과 평양 공동방문을 제의하는 등 '9월 평양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를 위한 의원외교를 진행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도 추미애는 대북제재 완화 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3월 유튜브방송 '추미애TV'에서 "핵과는 무관한 징벌적 제재에 한정해 제재를 완화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외교가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보조
2017년 8월17일 적폐청산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가졌다. 위원회는 법·제도·문화 적폐원인 분석 및 개선, 각 부처 적폐청산 TF 모니터링, 국정농단 재판 상황 점검, 홍보방안 등을 논의했다.

2017년 10월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가 운영과 통치행위에서 상실된 공적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목표”라며 10월12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에 ‘적폐청산’을 지상과제로 천명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정원의 대선 및 국내 정치 개입을 비롯해 강원랜드 등 불법 특혜 채용, MB 정부의 방송 장악과 관련된 문건과 증언을 공개하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1월18일에는 국정원 특활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국가재정법, 국정원법, 감사원법, 국회법,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 등 5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 대표가 현안과 관련된 법안을 직접 발의하는 것은 이례적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자증세와 인사 논란에서 문재인 정부 지원사격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고소득법인과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부자증세'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추미애는 2017년 7월20일 과세표준 5억 원을 넘는 소득자를 대상으로 세율을 현행 40%에서 42%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1만8천여 명으로부터 5천억 원 가량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과세표준 2천억 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5%로 3%포인트 올려 120여 개 기업으로부터 3조 원 정도의 법인세를 더 걷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 시달렸을 때도 추미애는 힘을 보탰다.

추미애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강행이 논란을 빚자 “외교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미래의 외교자산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 강경화 장관이 적임자”라며 “야당이 강경화 장관 임명을 놓고 협치 포기라고 우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가 ‘몰래 혼인신고’ 등의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을 때도 야당의 태도에 유감을 나타냈다. 추미애는 “안경환 전 후보가 도의적 판단에 따라 사퇴했음에도 야당은 이를 두고 문재인정부 인사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키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당의 새 진용 구성
추미애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손발을 맞출 인사들을 당에 적극 등용했다. 신임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 이춘석 의원과 김태년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춘석 사무총장은 호남 출신으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원내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친문계의 핵심으로 꼽히는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2017년도 예산을 직접 다루는 등 예산안에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이 사무총장 선임과 관련해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내 준 호남에 화답하는 차원”이라며 “대통령과 당 대표의 원활한 다리 역할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추미애는 당직 인선과 관련해 “당 인사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면서 문재인정부가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통합, 대탕평의 원칙과 능력주의에 입각해 인사를 적재적소에 기용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책위 수석부의장에 홍익표 의원, 민주연구원장에 김민석 의원, 당 대변인에 백혜련 의원과 김현 전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문미옥 의원 등을 임명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이 2017년 5월9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 현장에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 선언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선 승리
2017년 5월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추미애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정치력을 발휘하며 촛불정국과 함께 해 제1야당의 위상을 굳건히 만들었다. 

대선 과정에서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온라인 쇼핑몰 CF를 패러디한 유튜브 광고영상 ‘정책은 언제나 목마르다’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나와 연기를 하기도 했다.

△군 촛불집회 무력진압 논의 폭로
2016년 11월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추미애는 “박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서 물리적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폭로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제1야당의 책임있는 정치 지도자가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비판했고 박사모에서는 추미애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2018년 3월8일 군인인권센터가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국방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해 군병력 투입을 주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했다”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육군참모차장 육사40기)은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때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 3월20일 JTBC의 ‘국방부 위수령 검토 보도 논란’과 관련해서 추미애의 2016년 발언이 조명을 다시 받았다. 그해 7월5일에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군기무사령부에서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추미애는 2018년 7월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유례없이 질서를 지키며 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동안 기무사는 국민을 폭군으로 인식해 무력진압 계획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계엄령 이야기를 꺼냈던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안전을 걱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9년 10월21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라는 기무사 문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러자 추미애는 10월22일 SNS를 통해 “아무리 유언비어라 왜곡해도 결국 이렇게 진실은 드러난다”며 “국민을 총부리로 탄압하려는 극악무도한 계획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헌법적 중범”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선
2016년 8월 54.03%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로써 민주당계 정당의 6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구 출신 성 당대표가 탄생했다.

추미애는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끌어내면서 민생을 위해서 민생경선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2016년 2월 27일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참여했다.

주호영 당시 정보위원장이 2016년 2월 대표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수정발의했다. 당시 야당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면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운영절차의 한 형태로 입법부나 여타 입법 기관에서 구성원 한 사람이 어떤 안건에 대해 장시간 발언하면서 진행되는 표결을 지연하거나 완전히 막고자 하는 행위다.

추미애는 “판사 출신인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법”이라며 16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다. 이날 2시간34분에 걸쳐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법리적 측면에서 지적했다. 

△헌정 사상 첫 ‘지역구 5선 여성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추미애는 광진구 을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의 3파전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4만3980표(득표율 48.5%)를 얻어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 여성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추미애는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찬성 여파로 낙선한 것을 제외하면 15대부터 19대까지 4선을 했고 20대로 5선을 채웠다.

△문재인 지도부 입성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추미애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에 의해 최고위원을 맡게 되면서 지도부에 입성했다.

추미애는 권노갑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문제 발언에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권노갑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의 좌장 격인데 “당 운영을 할 때 주류는 60%, 비주류는 40%를 맡는 게 관행”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추미애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지세력을 받들고 챙기라는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지 지분을 챙기라는 게 그 분의 뜻은 아닐 거다”라며 “분열을 막고 통합을 호소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던 최고위원들과는 선을 그었다. 이것은 추미애가 이후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당한 자산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추다르크’ 탄생에서 노무현 탄핵 찬성 역풍, 정계 복귀까지 
1997년 대선을 앞둔 11월 말 대구 연청조직원들과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어 대구에서 선거유세를 이끌었다. 이때의 활약으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김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임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노무현 대선후보가 낮은 지지율로 고심할 때도 추미애는 지지를 거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발족한 뒤에는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성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돼지저금통' 국민성금 57억 원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추미애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와 만났을 때 "돈이 없어도 좋은 방법이 있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도와주겠는가?"는 제안을 받아 따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때의 여파로 2004년 총선에서도 낙선해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정계를 떠나야 했다. 

유학 이후 정계에 복귀해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 복귀에도 성공했다.

그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국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2012년 총선에서도 당선돼 4선 의원에 올랐다. 

민주당계 정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연이어 맡았고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소신 강한 판사부터 정계 입문까지
추미애는 판사 시절부터 강한 소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가 불온서적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검찰이 전국 법원에 서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다른 법원들은 영장을 모두 발부했지만 추미애만 '책을 유언비어로 볼 근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 뒤 인천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쳤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여성도 이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가 아닌가'라며 정계 입문을 권유했다. 

1996년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해 43.77%의 득표율로 당선하면서 판사 출신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총선을 앞두고 1차 조직책 신청에 탈락했지만 당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총선에 나가 승리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부인인 이희호 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추미애의 선거 유세를 돕기도 했다. 그 뒤 16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 비전과 과제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23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3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사법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과 자유한국당 등의 반발이 만만찮은 상황을 고려하면 어깨가 더욱 무겁다.

추미애는 검찰조직과 수사관행의 개편, 검찰 대상의 내부감찰 강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2019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던 검찰개혁의 첫단추를 꿰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는 같은날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법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의결되는 대로 후속조치를 빠르게 마쳐 개혁법안의 실효성 있는 시행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조직문화 개편과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 정비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만 검찰이 현재의 공수처법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낸 점을 고려하면 실제 시행 이후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당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임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집중수사를 받다가 물러났다. 이를 고려하면 추미애가 윤석열 검찰총장과 관계를 조율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이를 고려해 추미애가 윤 총장의 측근인사 등을 대상으로 검찰 인사권을 조기에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권한을 입맛대로 행사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 시민단체가 추미애를 자녀의 차용증 위조 의혹과 관련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 평가
▲ 추미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04년 4월13일 광주시 북구 말바우시장에서 총선 유세를 하던 도중 한 지지자로부터 '추다르크' 그림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화법이 직설적이고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타협이 없다고 해서 주변에서 ‘강기(剛氣)로 똘똘 뭉쳤다'는 말을 듣는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유세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의원이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 8월27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 동안 의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는 당권 경쟁에서 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친문 의원들조차 “사실 추 대표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냐”고 했다고 한다. 추미애 스스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인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 때문이다.

다만 추미애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18일 서울 종로 거리유세에서 “내가 잘못하면 내 멱살을 잡고 흔들 ‘대찬 여자’ 추미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장관 제안을 두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관은 추계 추씨다. 혈액형은 B형, 키는 160cm다. 

부모가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려서 겨우 세살의 나이에 외가집으로 보내졌다.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집이 빈털터리가 된 데다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나자 넉넉치 않았던 가정형편이 더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신발이 없어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다니다 셋방 마당 우물에 빠졌다. 당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끝에 ‘정의와 소신을 지키는 삶’을 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대학교 4학년 시절 학교 정문 출입을 검문하던 계엄군에게 '왜 내 학교를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대들었던 적이 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SNS에서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판사 시절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에 밤새 울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추미애를 등용하면서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며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일했을 때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모범생이었던 추미애는 학창시절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본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자 바로 교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말 처음 사법고시 1차를 통과했고 고시공부를 위해 해인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동창이자 이후 남편이 된 서성환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가 2차시험에 낙방했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영남 출신인 추미애와 달리 남편은 호남 출신인 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점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서성환씨는 추미애보다 3년 늦게 사법시헙에 합격한 뒤 전라남도 정읍에서 무료변론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바쁜 일정을 보낼 때도 휴대전화를 통해 자식들과 꼬박꼬박 연락하는 등 가족에게 자상한 편으로 알려졌다.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는 추미애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추미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으로 역풍을 맞아 삼보일배에 나선 것을 보고 딸들이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불교계의 성철 스님과 두 차례 만났다.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천 배를 하고 오라”며 조건을 걸었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천 배를 해내 대면에 성공했다고 한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가 좌우명이다.

종교는 불교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와 김구 선생이다.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 여행이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삼국지’를 꼽는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내가 만일’, ‘만남’ 등이다.    

건강을 위해 반신욕을 가끔 한다고 알려졌다. ‘밥심으로 버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먹는다.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꼽혔다.   

잠재적 대선주자로도 거명되지만 그를 따르는 거대 계파나 확고한 지지층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8년 11월 여야 5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과 매달 둘째주 금요일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국회 신뢰 회복을 논의하는 '이금회' 모임을 정례화했는데 추미애도 구성원에 포함됐다. 

◆ 사건사고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연합뉴스>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 제기
추미애는 2019년 12월30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치렀는데 이 자리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이 단독 후보로 공천된 점을 놓고 청와대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친분 있는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에게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미애는 "민주당 당헌과 당규에 입각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단수 후보가 확정됐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은 2020년 1월1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추미애를 공무상 비밀누설죄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은 추미애 측 관계자가 2019년 1월 당시 장환석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송철호 울산시장 측에 소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 시장이 장 행정관을 통해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울산시장 선거 공약에 반영했다고 자유한국당은 바라보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선 추미애가 2003년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채 다른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는 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추미애는 주석을 달지 않은 점은 문제로 인정했지만 선행지식과 배경지식 인용만으로는 표절로 볼 수 없다고 받아쳤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국회의원 임기를 이틀 남겨둔 상황에서 남은 정치자금 가운데 1억 원을 개인 저서 출판비로 썼다는 횡령 의혹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의 남편 서성환 변호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추미애는 저서를 출판하지 않고 1억 원을 돌려줬다는 출판사 사장의 주장과 관련해 돌려받은 돈을 한국심장병재단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5천만 원씩 기부했다고 해명했다.

아들이 군복무 중이던 2017년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은 문제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나 아들의 불법도박과 '코인투기' 의혹과 관련해 추미애는 "후보자 본인의 도덕성, 능력, 전문성을 청문회 취지에 맞게 질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공천 탈락자 자해 소동
더불어민주당이 2018년 4월30일 6·13지방선거 서울 중랑구청장 후보로 류경기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전략공천하자 공천 탈락자 성백진씨가 추미애 대표실 앞에서 자해소동을 벌였다.

성씨는 이날 정오경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전략공천 말고 경선으로 후보를 정하라”고 항의했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흉기를 꺼내 자해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제압됐다.

성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자해를 시도했다”며 “추 대표나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당발전위원회 관련 당내 갈등
2017년 8월1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추미애가 추진중인 정당발전위원회(정발위)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해 친문계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친문계 당원들은 지도부가 정당발전위 활동 방향 가운데 하나로 ‘지방선거에 대비한 당헌과 당규 등 제도 보완’을 꼽은 것을 두고 현행 민주당 당헌이나 당규에 따르면 지방선거 1년 전까지 공천 규정을 확정해야 하는데 이미 시한이 지난 것이라고 반발했다. 

2017년 8월20일 추미애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듯이 혁신과 개혁도 당장은 불편하지만 당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홍영표, 전해철 등 친문계 의원들이 다시 반발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2017년 8월2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당발전위는 당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과제에 집중하고 공천 관련 문제는 당헌과 당규에 따라 ‘지방선거기획단’에서 논의하기로 정리하면서 논쟁이 일단락됐다. 

△설화 논란
직설화법을 종종 쓰는 탓에 이른바 ‘설화 논란’에 종종 휩싸였다.

2018년 3월7일 “대한민국 남성 중에 (성폭력 문제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라는 발언 이후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사모님이 저랑 경북여고 친구니까 유 대표는 빼드리겠다“고 농담을 던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17년 9월12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후 국민의당을 향해 “땡깡부리고, 골목대장질 하고, 캐스팅보터나 하는 몰염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추미애를 직접 언급하며 반발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시정잡배 수준의 망언”,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원장은 “추미애 대표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품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그렇게 오만한 모습이 집권당의 대표인가”라고 비난했다. 

이 발언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동의가 어려워지자 추미애는 2017년 9월18일 “제 발언으로 마음 상한 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동의안은 9월21일 정상적으로 통과됐다.

2017년 8월2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소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부는 중요한 사건에 있어 사법부 스스로 인권을 침해하는 ‘인권침해 공범’이었다”며 “다시는 사법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사법기풍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추미애의 이 발언과 관련해 “재판 결과에 대해 비판은 가능하지만 충분한 근거를 갖고 논의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발언은) 사법부 신뢰에 영향을 많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야당 역시 “법치의 근간을 흔든다”며 반발했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입사특혜 의혹 관련 제보조작 사건을 두고 벌인 국민의당의 조사결과가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해 입길에 올랐다.

추미애는 국민의당이 제보조작 사건을 사실상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린 것을 두고 “꼬리 자르기를 했지만 당의 선대위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대표, 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께서 몰랐다고 하는 것은 ‘머리 자르기’”라고 공격했다. 

국민의당은 의원총회에서 추미애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2001년 7월 술자리에서는 ‘취중 폭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술자리에는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호웅 의원, 동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대한매일·한겨레·세계일보·CBS·연합뉴스 등의 취재기자 8명이 참석했다.

추미애는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한 소설가 이문열씨를 두고 “이문열 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뭐 조선일보를 국민의 4분의 1이나 보고 있다고” 라며 손으로 여러 차례 탁자를 내려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는 “비록 사석에서의 발언이지만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고 거친 발언을 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2016년 10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추미애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정준길 당시 전 새누리당 후보는 추미애가 허위사실을 공포했다며 2016년 4월 고발장을 냈다.

추미애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선거공보물을 배포·홍보한 혐의를 받았다.

이 선거공보물에는 ‘16대 국회 때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서울동부지법·동부지검의 광진구 자양동 존치 약속을 받아냈지만 17대 국회 낙선으로 송파구 문정동 이전을 막지 못했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겨있었다.

검찰은 ‘서울시장을 만나 법원·검찰청 부지 개발사업을 1순위로 추진하기로 약속을 받아냈다’는 부분이 허위라고 판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추미애의 기소를 결정했다.

이에 야3당은 청와대와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덮기 위해 야당 탄압에 나섰다며 반발했다.

추미애는 의원총회에서 “이미 13년 전인 2003년, 12월6일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에서 제 지역구(광진구)에 있는 동부지법 존치요청을 말씀드렸다”며 “당시 공감을 표시해 그런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추미애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80만 원의 벌금형을 받으면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선거법을 위반해 벌금 100만 원 이상 형벌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민주당 당론 반대
추미애는 2009년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민주당에서 반대하는 노조법 개정의 국회 통과를 뒷받침해 징계를 받았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의 임금 지급기준 조정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의결을 반대했다. 

추미애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의 설득에 실패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중재안을 만들었다. 그 뒤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회의장 문을 잠그고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여한 상태에서 표결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추미애가 당론을 어겼다는 점을 들어 2010년 2월2일 당원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결정했다. 추미애는 기자간담회에서 “당 지도부가 징계를 고집한 일은 민심과 산업현장의 미래를 외면한 안타까운 일”이라며 “징계에 개의치 않겠다”고 밝혔다.
▲ 추미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2004년 4월5일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삼보일배를 사흘째 진행하던 도중 광주 북구 각화동 농산물시장 앞에서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일이 추미애의 정치인생에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

추미애는 당초 “탄핵은 아직 익지 않았다”며 민주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탄핵을 반대했지만 표결 직전에 찬성으로 태도를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사과하고 탄핵을 모면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추미애는 “대통령이 정쟁의 국면을 더 크게 만들었다”며 돌아섰다.

추미애는 당시 탄핵을 찬성한 이유를 그의 회고록 '물러서지 않는 진심'에서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최고위원이던 추미애가 ‘3불가론’을 들어 탄핵에 맞서자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내용으로 남은 지도부 모두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당 지도부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의원 2명에게까지 탄핵 서명을 받겠다고 나서자 추미애는 “숯댕이(범죄자)가 검댕이(노무현 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며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탄핵 찬성)를 드리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추미애는 “범죄 혐의로 수감된 의원들까지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묻는 탄핵을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탄핵에 찬성한 역풍은 거셌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은 추미애는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다. 2박3일 동안 광주 금남로에서 5·18 망월동 묘역까지 15㎞를 걸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민주당도 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수감된 의원 2명에게 기어코 탄핵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추미애가 탄핵에 찬성한 이유가 회고록에 밝힌 이유대로라면 의미 없이 소신에 반하는 결정을 한 셈이다.

그 뒤 2년 동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추미애는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이때를 꼽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도 그는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견 발표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 마음의 빚을 당대표가 돼 대선 승리로 갚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추미애는 “내게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영영 가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추미애는 당대표로 취임한 뒤 2016년 8월31일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탄핵 사건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로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력 
▲ 춘천지방법원 판사 시절의 추미애. <추미애 네이버 블로그>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1989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일했다.

1993년 김제시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가 됐다. 

199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로 일했다. 

1997년 15대 대선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으로 활동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제1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개혁추진위원회 제3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를 다시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재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보도 맡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1년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지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중앙위원을 역임했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4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객원연구원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12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임했다.

2006년 법무법인 아주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제17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2008년 민주당 당무위원을 맡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세계한인민주회의 부의장으로 일했다.

2011년 민주통합당 당무위원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4선 의원이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 단장으로 일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 민주통합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3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6·4지방선거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 2016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일했다.

2016년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소녀상의눈물운동본부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5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2016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서울광진구을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재임하고 있다.

2016년 8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최고위원(당대표)을 맡았다.

2016년부터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6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부터 세계한인민주회의 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근혜대통령퇴진 국민주권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더불어민주당 호남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2017년 한국·러시아의원외교협의회 회장으로 일했다.

2018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은 뒤 2020년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 학력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과정에 수학했다.

2004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2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남편 서성환 변호사의 청년 시절 모습. <추미애 네이버 블로그>

남편은 전라북도 정읍에서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 서성환씨다.

자녀로는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 아들 서재휘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서재현씨는 2018년 6월 주성훈씨와 결혼했다. 차녀 서재영씨는 2020년 기준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여성권익디딤돌’을 수상했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다.

2012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로부터 안중근 평화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1월 한양대학교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2018년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윤달선 한양대 석좌교수와 함께 수상했다.

◆ 기타

2008년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 2011년 ‘중산층 빅뱅’, 2013년 ‘물러서지 않는 진심’ 등 저서 3권을 출판했다.

2019년 12월11일 국회에 접수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추미애는 전체 재산으로 14억9871만 원을 신고했다. 국회 공보에서 공개된 2018년 기준 14억6452만 원보다 3천만 원 정도 늘어났다.

추미애 본인 명의의 재산은 서울 광진구 아파트(8억7천만 원)과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2억 원)을 포함한 14억6천만 원으로 집계됐다. 남편 서성환 변호사는 은행 채무 1억5천만 원을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추미애 본인은 여성이라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아들 서재휘씨는 2016년 육군에 들어가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어록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관련된 시비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사회 전체의 불안도 가중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9/12/30,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치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따로 메시지가 없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그 길이 매우 험난하다." (2019/12/05,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 기자들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에게 별도의 메시지를 받았는지 질문받자)

“박근혜 정부의 계엄령 검토는 예나 지금이나 ‘팩트’다.” (2019/10/22,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진영 대 진영 간 갈등을 자꾸 촉발 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은 단순히 페이스북 글을 지웠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자극이 있을 수 있다. 무수한 인내가 필요한 자리다. 반응을 즉각적으로 하다 보면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9/03/26,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SNS에 욕설과 과격한 발언을 올렸던 문제를 지적하면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미국 여론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는 일을 모두가 '안됐으면 좋겠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형국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2019/03/07,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추진을 위한 남북 통합철도망 구축' 토론회에서)

"역사는 아무리 구부리고 비틀어도 결국 정의로운 방향으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로 양심을 팔기 이전에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에 겸허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2019/02/18,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규제 탓에 창업을 못한다는 말은 안 나오게 하겠다. 규제는 걱정 '1도(조금도)' 안 해도 된다.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3종이 1월부터 시작됐으니 '규제 때문에 안 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다. 현장에서 사업을 하다 이런저런 규제에 막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 (2019/01/25,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위해 국제사회를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은 평화를 통한 경제협력의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2018/10/11,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미국 현지에서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공화당의 관계자들, 그리고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을 만나서 비핵화의 확고한 의지, 그리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평화의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잘 다녀오겠다." (2018/09/30, 더불어민주단 대미외교특사단 단장을 맡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외풍을 막아내는 ‘추풍’이 될 것을 약속하겠다.” (2018/08/25,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당대표 임기를 마치는 소회를 풀면서)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쩐다(錢多) 쩐다(錢多). 정의 평화 민생 복지 지켜주고 싶나, 총알 필요하다.” (2018/05/31,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후원회에서 후원금 모금을 목적으로 내놓은 홍보영상 ‘더치페이III-하드캐리!’ 영상에서)

“어제는 홍준표 대표가 ‘믿을 형님이 없어졌다’며 장탄식을 했을 것 같다. 홍 대표가 그토록 믿던 아베 총리마저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겠느냐. 위로의 박수를 보내달라” (2018/5/10,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로 맹비난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판하며)

“자유한국당이 국가기관들을 동원한 권력형 댓글 조작과 드루킹 일당의 댓글 장난을 동일시하는 것은 ‘파리’를 보고 ‘새’라고 하는 것” (2018/4/20, 자유한국당이 드루킹 사건을 문재인 캠프의 대선 여론조작으로 몰고 가려는 것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며)

“선곡을 잘했다. 우리 대통령이 바로 J다” (2018/2/9, 강릉을 방문한 북한 예술단이 ‘J에게’를 부르자 현송월 단장에게 농담을 건네며)

“병을 오래 치료했다고 해서 ‘병간호에 지쳤다. (환자를) 이제 버리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017/10/30,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에 매몰돼 미래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답변하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소수 의견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표결을 무산시키는 것은 헌재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고 헌재가 헌법적 권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적폐세력으로서 반기를 든 것이다.” (2017/09/01,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결산안 처리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 야당을 비판하며)

“국민의 법 감정을 외면한 법원의 결정은 하늘의 땅 차이처럼 동떨어진 천양현격(天壤懸隔)의 판결” (2017/07/28,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1심 재판부가 각각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것을 비판하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등 여유 있는 계층이 고통분담 측면에서 세금을 좀 더 내달라. 다른 나라 경제는 회복을 하고 살아나는데 한국 경제만 국정농단과 국정공백으로 후퇴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수출대기업이 아니라 서민이다. 확대재정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세수 기반 확보가 필요한데 법인세를 손대지 않으면 세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2017/07/21, 충청북도 청주 오송 폭우 피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감격스럽다. 국민 통합의 시대, 사회 대개혁의 원년,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뚜벅 뚜벅 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지지해 달라. 지난 23일 동안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을 빠짐없이 실천할 수 있고 급한 것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오직 국민 여러분만 믿고 가겠다.” (2017/05/09,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 기념행사에서)

“대구정신을 가진 대구의 딸로 민주당 지휘봉을 잡고 있다. 문 후보가 통합의 완결점을 대구에서 찍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문재인을 화끈하게 도와주시고 '대끼리(대길의 영남 방언)'가 대구를 지키는 민주정부 3기에서도 지속적으로 대구를 책임지겠다.” (2017/04/19,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재인 대통령 후보지지 발언을 하며)

“박근혜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비리도 역대 없었던 창조적 행태다. 불공정 대한민국의 끝을 보는 것 같다” (2016/10/07,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세균 의장은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대검 공안부에 배당하더니 대통령 측근과 대통령 연루여부를 따져야하는 권력부패형 미르사건은 형사부에 배당했다. 국민들이 참 웃기다고 할 것이다.” (2016/10/07, 페이스북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전경련이 두 재단을 공중분해시키고 통합한다고 한다. 그동안 모르쇠로 대응하더니 청와대 기획설 등 권력형 비리로 의혹이 번지자 군사 작전하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꼬리 자르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 (2016/10/04, 페이스북에서)

“사드만으로 북핵을 막을 수 없다. 정부 사드로 북핵을 막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국민에게 줘서는 안 된다. 핵을 군사적으로 푼 나라가 있나. 공멸할 우려가 있다.” (2016/09/29,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당대표 초청토론회에서)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은 대통령에게 그냥 잘 보이고 싶은 거 뿐이어서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고 하면 끝날 것이다.” (2016/09/27,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이 대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해 단식 중단을 재차 요청하자 바로 단식을 그만뒀다.)

“쌀값은 식량 주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량 주권은 못 챙기면서 측근들만 챙기는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의무도 사라진 밥쌀 수입을 계속 추진하면서 쌀값 대폭락을 초래했다. 특히 쌀 생산 과잉을 우려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쌀 자급자족 기반마저 붕괴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016/09/27, 전북 김제에서 쌀값 폭락 대책마련 현장 간담회를 열고)

“유가족이 반대하는 부검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과는 고사하고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 막아서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의 품격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고,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가시는 길 만큼은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반드시 지켜드리겠다. 진실을 규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겠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농민 백남기 부검 신청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가결한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이 됐다. 해임건의안은 실체적·절차적 사유를 갖췄는데 대통령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청와대의 망가진 인사 시스템이 문제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박 대통령이 거부하자)

“북한 핵이 점점 더 고삐풀린 괴물처럼 돼가는 건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으로 간 결과다. 나라가 궁지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드는 큰 실수를 했다.” (2016/09/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공언하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한진해운 사태는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국제적 문제가 돼버렸다.” (2016/09/07,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 문제에 대해)

“법인세 정상화는 기업과 국민이 상생 하는 길이다.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세수를 채운 것은 서민과 국민이다. 법인세 정상화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민생경제 위기 탈출의 첫 신호가 될 것이다. (2016/09/06,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3년이나 내리 불참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단 한번도 방문 안 한 제주 4·3추모제에 참석해줄 것을 당부드린다.” (2016/08/29,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한 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판사로 재직한 제 경험에 비추어 이 법(테러방지법)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6/02/27,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주자로 발언대에 올라)

“정치는 과정이고 선거는 결과인데, 과정에 개입하면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결과에 개입한 것 아닌가. 원세훈 무죄 판결 대로라면 앞으로 국정원은 정치개입은 해선 안 되지만, 최고 권력이 바뀌는 대선개입은 해도 위법이 아니게 된다.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다.” (2014/09/12, 트위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박근혜 후보의 인식은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 정보는 차단함으로써 생기는 확신인 ‘확증편향’에 가깝다. 사법체계에 대해 무지하며 도덕적이지 않다.” (2012/09/12, 인혁당 사건에 대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역사 인식을 문제삼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에서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력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내리자 이를 ‘한 마디로 가치없는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피땀 흘려 가꾼 민주주의를 유신의 딸에게 맡길 수 없지 않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꿩처럼 우아하게 살아왔다면 나는 매처럼 도전하며 당당하게 살아왔다. 꿩을 잡는 게 매다. 박 전 위원장을 확실히 잡겠다.” (2012/06/09,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중산층의 붕괴를 막으려면 보수 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임무 교대를 해야 한다. 외형 성장을 강조하는 식은 중산층 기반이 없어 미래가 없다. 보수 정권이 대기업 위주의 외형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가계 중심의 성장을 해야 한다.” (2011/10/12,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산층 붕괴 문제에 대해)

“내 마지막 꿈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다수의 국민들을 끌고 나갈 힘이 있다면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11/13,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 정치인으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 활동의 공과

△법무부 장관 지명부터 임명까지
추미애는 2020년 1월2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주도하게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10월14일 사퇴한 뒤 11월 중순부터 추미애가 유력후보로 거명됐다. 판사 출신이고 검찰개혁에 관심을 보여왔던 데다 5선 의원이라 인사청문회 통과도 비교적 쉬울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2019년 12월5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추미애 의원은 판사 시절에 이어 헌정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신과 개혁성을 보여줬다"며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소명의식을 갖추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호흡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 문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추후에 차차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2019년 12월3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찰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추미애는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이 입법되면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완료해 개혁법안이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31일 국회에 2020년 1월1일까지 추미애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 뒤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지 않자 2020년 1월2일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 
추미애는 2018년 10월22일 민주당 혁신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혁신성장동력을 찾아내면서 관련 정책의 민주당 내부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11월 새만금 수상 태양광발전소를 찾아 새만금 개발에 따른 재생에너지 등의 혁신과제 수행을 논의했다. 

2019년 초 에너지신사업과 바이오헬스케어 등 분야별 혁신성장계획을 내놓았다. 그 뒤 벤처기업인에 이어 바이오의료기업인들과 만나고 5세대(5G) 이동통신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개발현장 등을 잇달아 찾았다. 2019년 4월 경상북도 구미에서 '구미형 일자리' 만들기에 온힘을 쏟겠다고 약속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는 행보를 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8년 12월 추미애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구을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역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2020년 4월 총선에서 추미애와 오 전 시장이 맞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추미애가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총선에 사실상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둘의 대결도 이뤄지지 않게 됐다.  

△민주당계 최초로 당대표 임기 완수
추미애는 2018년 8월2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임기 2년을 마쳤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대표가 임기 도중에 물러나지 않은 것은 추미애가 처음이다.

그는 2018년 8월22일 당대표 활동 성과와 평가를 담은 548쪽 분량의 백서를 냈다. 2018년 8월24일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적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 민주당의 아픈 역사를 끝냈다는 점이 큰 의미”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임기 도중 가장 뭉클했던 기억으로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를 꼽았다. 평화로우면서 헌법정신에 걸맞은 방식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2018년 8월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린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가 당선됐다. 추미애는 이때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백년정당의 역사를 써야 한다”며 “여러분과 함께 소임을 마치고 내려놓는 것이 이제 우리 정당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승리 공헌
추미애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에 당대표로서 공헌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결과 시도지사 17명 가운데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가운데 151명의 당선자를 냈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12명 가운데 11석을 민주당에서 차지했다.

추미애는 2017년 8월 정당발전위원회에서 지방선거 공천방안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민주당 시·도당 위원장들이 더불어민주당 당헌과 당규에 따라 공천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추미애는 국무위원 등의 공직자 인선에 민주당이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공천 논란이 합쳐져 추미애와 청와대, 민주당 내부의 ‘친문재인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추미애는 한 발 물러서 지방선거기획단에서 지방선거 공천에 관련된 당헌·당규 해석과 시행규칙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헌과 당규 기반의 공천 절차가 진행되면서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갈등도 봉합됐다.

추미애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2018년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전체 7천km 이상 움직이면서 후보들의 유세를 지원했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특히 힘을 실었다. 

중앙당 후원금 모금을 위한 홍보영상 ‘더치페이III-하드캐리!’ 영상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출연해 어깨춤을 추고 연기를 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민주당의 압승 직후인 2018년 6월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은 데는 경선 과정부터 본선까지 투명하고 공정하게 신뢰를 보여준 덕분”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효과’도 거의 절대적이었고 민주당도 단일대오로 일사불란하게 잘했다”고 말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18년 4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루킹’사건 대응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드루킹’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적극 대응했다.

2018년 4월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김동원씨 등 2명을 당에서 제명하고 ‘드루킹사건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추미애는 이날 회의에서 “드루킹사건을 계기로 물만난 듯 하는 야당의 저질 공세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드루킹사건은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수사당국은 드루킹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드루킹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경남지사 후보로 확정하며 드루킹사건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9년 5월9일 ‘드루킹 특검’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며 국회 정상화가 어려워지자 추미애는 “야당이 본질을 외면한 채 드루킹 바짓가랑이만 잡고 무모한 정쟁의 늪으로 국회를 끌고 간다”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같은 날 경남에서 열린 ‘민주당 필승 전진대회’에서 드루킹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후보에게도 “꿋꿋하고 당당하라, 절대로 쫄지 마라”며 격려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경수 후보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경남도지사로 당선됐다. 

△‘미투운동’ 옹호
집권여당의 여성 당대표로서 한국사회에 불어온 ‘미투운동’바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당에서 불거진 성희롱·추행 의혹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2018년 3월4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거리행진에 피켓을 들고 참석해 “미투운동, 위드유운동이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문화를 바꾸고 건전한 새로운 나라로 가는 길에 함께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2018년 3월5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안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한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대표로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안희정 도지사를 놓고 출당 및 제명조치를 밟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의 보도가 나온 뒤 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져 ‘신속한 대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투운동으로 고 장자연씨의 죽음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2018년 3월9일 “추악한 권력의 타락을 온몸으로 막고자 했으나 끝내 숨진 장자연씨와 관련해 검찰은 여지를 두지 말고 과감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8년 4월24일 당 윤리심판원에 선거캠프 여성 관계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강성권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상구청장 예비후보를 제명할 것을 지시했다.

△인터넷의 욕설·가짜뉴스 비판
2018년 신년사에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발, 가짜뉴스와 마타도어가 판치겠지만 국민과 함께 헤쳐 가겠다”며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2018년 1월8일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개설됐다. 추미애는 1월1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SNS에서 가짜뉴스와 인신공격, 욕설 등이 난무하고 있다”며 “이는 대단히 명백하고 상습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회 댓글조작·가짜뉴스법률대책단은 2018년 2월19일까지 총 375건의 가짜뉴스를 고소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그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소문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나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니고 오히려 가슴아픈 역사에 직접 동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논의로 야당 압박
2018년 1월12일 최고의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끝내 개헌 저지세력이 되겠다면 이는 민심 거역세력이 되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2월2일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하고 “올해 6월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으로,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개헌 요구에 적극 임하라”고 촉구했다. 야당도 개헌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국회가 개헌안 논의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2018년 4월3일 자유한국당이 개헌안을 확정하자 추미애는 “국회가 입법과 행정 전권을 행사하겠다는 사실상의 내각제”라며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한 총리가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국민주권, 3권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국민투표법 개정 무산으로 6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2018년 4월25일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이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기회를 날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7년 9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지공개념
추미애는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창한 '토지공개념'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는 개인 혼자만 소유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추미애는 2017년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언급하면서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인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기자단 간담회에서는 "헨리 조지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만들지 않은 노예와 토지 등을 시장에서 가격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그가 살아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고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는 2017년 11월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여권 안에서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에도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염 경기도지사가 2018년 9월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토지공개념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다만 이를 놓고 자유한국당 등에서 추미애가 '토지 국유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공격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는 2019년 12월30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토지국유화 표현을 언급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일익 담당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진행된 남북 사이 화해 분위기 조성에 여당 당대표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2017년 9월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에 동시 특사를 파견해 북미·남북 사이 투 트랙 대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전날인 9월3일 실시된 북한의 6차 핵 실험과 관련해 “한반도 정세를 위기로 몰아넣고 북한의 운명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정치적 도박으로 기록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14일부터 4박6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시를 방문해 미국의 민간 인사와 공직자들을 만나 한미동맹 강화 및 북핵 해법을 논의했다. 14일 열린 동포간담회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 테이블에 나온다면 북·미 수교도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30일 중국에서 열린 ‘세계 정당 고위급대회’에 참석했다. 다음날인 12월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한이 오판하지 않게 중국이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사이의 대화가 급진전하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며 해빙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2018년 2월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했다.

2018년 3월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지원 특별위원회’설치를 결정했다. 추미애는 “당 안팎의 한반도 외교 전문가를 모시고 대대적 정당외교 행보 차원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과 같은 협력의 틀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시청한 후 “참으로 감격스럽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을 위한 구체적 진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열린 만찬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했다.

2018년 9월30일 더불어민주당의 대미외교특사단 단장으로서 미국을 3박4일 동안 방문해 미국 의원들과 평양 공동방문을 제의하는 등 '9월 평양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를 위한 의원외교를 진행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도 추미애는 대북제재 완화 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3월 유튜브방송 '추미애TV'에서 "핵과는 무관한 징벌적 제재에 한정해 제재를 완화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외교가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보조
2017년 8월17일 적폐청산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가졌다. 위원회는 법·제도·문화 적폐원인 분석 및 개선, 각 부처 적폐청산 TF 모니터링, 국정농단 재판 상황 점검, 홍보방안 등을 논의했다.

2017년 10월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가 운영과 통치행위에서 상실된 공적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목표”라며 10월12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에 ‘적폐청산’을 지상과제로 천명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정원의 대선 및 국내 정치 개입을 비롯해 강원랜드 등 불법 특혜 채용, MB 정부의 방송 장악과 관련된 문건과 증언을 공개하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1월18일에는 국정원 특활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국가재정법, 국정원법, 감사원법, 국회법,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 등 5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 대표가 현안과 관련된 법안을 직접 발의하는 것은 이례적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자증세와 인사 논란에서 문재인 정부 지원사격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고소득법인과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부자증세'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추미애는 2017년 7월20일 과세표준 5억 원을 넘는 소득자를 대상으로 세율을 현행 40%에서 42%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1만8천여 명으로부터 5천억 원 가량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과세표준 2천억 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5%로 3%포인트 올려 120여 개 기업으로부터 3조 원 정도의 법인세를 더 걷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 시달렸을 때도 추미애는 힘을 보탰다.

추미애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강행이 논란을 빚자 “외교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미래의 외교자산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 강경화 장관이 적임자”라며 “야당이 강경화 장관 임명을 놓고 협치 포기라고 우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가 ‘몰래 혼인신고’ 등의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을 때도 야당의 태도에 유감을 나타냈다. 추미애는 “안경환 전 후보가 도의적 판단에 따라 사퇴했음에도 야당은 이를 두고 문재인정부 인사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키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당의 새 진용 구성
추미애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손발을 맞출 인사들을 당에 적극 등용했다. 신임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 이춘석 의원과 김태년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춘석 사무총장은 호남 출신으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원내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친문계의 핵심으로 꼽히는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2017년도 예산을 직접 다루는 등 예산안에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이 사무총장 선임과 관련해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내 준 호남에 화답하는 차원”이라며 “대통령과 당 대표의 원활한 다리 역할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추미애는 당직 인선과 관련해 “당 인사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면서 문재인정부가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통합, 대탕평의 원칙과 능력주의에 입각해 인사를 적재적소에 기용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책위 수석부의장에 홍익표 의원, 민주연구원장에 김민석 의원, 당 대변인에 백혜련 의원과 김현 전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문미옥 의원 등을 임명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이 2017년 5월9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 현장에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 선언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선 승리
2017년 5월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추미애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정치력을 발휘하며 촛불정국과 함께 해 제1야당의 위상을 굳건히 만들었다. 

대선 과정에서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온라인 쇼핑몰 CF를 패러디한 유튜브 광고영상 ‘정책은 언제나 목마르다’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나와 연기를 하기도 했다.

△군 촛불집회 무력진압 논의 폭로
2016년 11월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추미애는 “박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서 물리적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폭로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제1야당의 책임있는 정치 지도자가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비판했고 박사모에서는 추미애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2018년 3월8일 군인인권센터가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국방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해 군병력 투입을 주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했다”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육군참모차장 육사40기)은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때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 3월20일 JTBC의 ‘국방부 위수령 검토 보도 논란’과 관련해서 추미애의 2016년 발언이 조명을 다시 받았다. 그해 7월5일에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군기무사령부에서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추미애는 2018년 7월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유례없이 질서를 지키며 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동안 기무사는 국민을 폭군으로 인식해 무력진압 계획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계엄령 이야기를 꺼냈던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안전을 걱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9년 10월21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라는 기무사 문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러자 추미애는 10월22일 SNS를 통해 “아무리 유언비어라 왜곡해도 결국 이렇게 진실은 드러난다”며 “국민을 총부리로 탄압하려는 극악무도한 계획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헌법적 중범”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선
2016년 8월 54.03%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로써 민주당계 정당의 6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구 출신 성 당대표가 탄생했다.

추미애는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끌어내면서 민생을 위해서 민생경선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2016년 2월 27일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참여했다.

주호영 당시 정보위원장이 2016년 2월 대표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수정발의했다. 당시 야당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면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운영절차의 한 형태로 입법부나 여타 입법 기관에서 구성원 한 사람이 어떤 안건에 대해 장시간 발언하면서 진행되는 표결을 지연하거나 완전히 막고자 하는 행위다.

추미애는 “판사 출신인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법”이라며 16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다. 이날 2시간34분에 걸쳐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법리적 측면에서 지적했다. 

△헌정 사상 첫 ‘지역구 5선 여성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추미애는 광진구 을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의 3파전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4만3980표(득표율 48.5%)를 얻어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 여성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추미애는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찬성 여파로 낙선한 것을 제외하면 15대부터 19대까지 4선을 했고 20대로 5선을 채웠다.

△문재인 지도부 입성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추미애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에 의해 최고위원을 맡게 되면서 지도부에 입성했다.

추미애는 권노갑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문제 발언에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권노갑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의 좌장 격인데 “당 운영을 할 때 주류는 60%, 비주류는 40%를 맡는 게 관행”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추미애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지세력을 받들고 챙기라는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지 지분을 챙기라는 게 그 분의 뜻은 아닐 거다”라며 “분열을 막고 통합을 호소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던 최고위원들과는 선을 그었다. 이것은 추미애가 이후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당한 자산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추다르크’ 탄생에서 노무현 탄핵 찬성 역풍, 정계 복귀까지 
1997년 대선을 앞둔 11월 말 대구 연청조직원들과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어 대구에서 선거유세를 이끌었다. 이때의 활약으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김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임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노무현 대선후보가 낮은 지지율로 고심할 때도 추미애는 지지를 거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발족한 뒤에는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성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돼지저금통' 국민성금 57억 원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추미애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와 만났을 때 "돈이 없어도 좋은 방법이 있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도와주겠는가?"는 제안을 받아 따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때의 여파로 2004년 총선에서도 낙선해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정계를 떠나야 했다. 

유학 이후 정계에 복귀해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 복귀에도 성공했다.

그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국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2012년 총선에서도 당선돼 4선 의원에 올랐다. 

민주당계 정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연이어 맡았고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소신 강한 판사부터 정계 입문까지
추미애는 판사 시절부터 강한 소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가 불온서적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검찰이 전국 법원에 서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다른 법원들은 영장을 모두 발부했지만 추미애만 '책을 유언비어로 볼 근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 뒤 인천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쳤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여성도 이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가 아닌가'라며 정계 입문을 권유했다. 

1996년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해 43.77%의 득표율로 당선하면서 판사 출신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총선을 앞두고 1차 조직책 신청에 탈락했지만 당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총선에 나가 승리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부인인 이희호 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추미애의 선거 유세를 돕기도 했다. 그 뒤 16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 비전과 과제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23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3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사법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과 자유한국당 등의 반발이 만만찮은 상황을 고려하면 어깨가 더욱 무겁다.

추미애는 검찰조직과 수사관행의 개편, 검찰 대상의 내부감찰 강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2019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던 검찰개혁의 첫단추를 꿰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는 같은날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법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의결되는 대로 후속조치를 빠르게 마쳐 개혁법안의 실효성 있는 시행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조직문화 개편과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 정비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만 검찰이 현재의 공수처법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낸 점을 고려하면 실제 시행 이후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당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임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집중수사를 받다가 물러났다. 이를 고려하면 추미애가 윤석열 검찰총장과 관계를 조율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이를 고려해 추미애가 윤 총장의 측근인사 등을 대상으로 검찰 인사권을 조기에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권한을 입맛대로 행사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 시민단체가 추미애를 자녀의 차용증 위조 의혹과 관련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 평가
▲ 추미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04년 4월13일 광주시 북구 말바우시장에서 총선 유세를 하던 도중 한 지지자로부터 '추다르크' 그림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화법이 직설적이고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타협이 없다고 해서 주변에서 ‘강기(剛氣)로 똘똘 뭉쳤다'는 말을 듣는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유세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의원이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 8월27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 동안 의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는 당권 경쟁에서 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친문 의원들조차 “사실 추 대표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냐”고 했다고 한다. 추미애 스스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인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 때문이다.

다만 추미애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18일 서울 종로 거리유세에서 “내가 잘못하면 내 멱살을 잡고 흔들 ‘대찬 여자’ 추미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장관 제안을 두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관은 추계 추씨다. 혈액형은 B형, 키는 160cm다. 

부모가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려서 겨우 세살의 나이에 외가집으로 보내졌다.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집이 빈털터리가 된 데다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나자 넉넉치 않았던 가정형편이 더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신발이 없어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다니다 셋방 마당 우물에 빠졌다. 당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끝에 ‘정의와 소신을 지키는 삶’을 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대학교 4학년 시절 학교 정문 출입을 검문하던 계엄군에게 '왜 내 학교를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대들었던 적이 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SNS에서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판사 시절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에 밤새 울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추미애를 등용하면서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며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일했을 때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모범생이었던 추미애는 학창시절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본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자 바로 교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말 처음 사법고시 1차를 통과했고 고시공부를 위해 해인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동창이자 이후 남편이 된 서성환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가 2차시험에 낙방했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영남 출신인 추미애와 달리 남편은 호남 출신인 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점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서성환씨는 추미애보다 3년 늦게 사법시헙에 합격한 뒤 전라남도 정읍에서 무료변론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바쁜 일정을 보낼 때도 휴대전화를 통해 자식들과 꼬박꼬박 연락하는 등 가족에게 자상한 편으로 알려졌다.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는 추미애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추미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으로 역풍을 맞아 삼보일배에 나선 것을 보고 딸들이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불교계의 성철 스님과 두 차례 만났다.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천 배를 하고 오라”며 조건을 걸었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천 배를 해내 대면에 성공했다고 한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가 좌우명이다.

종교는 불교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와 김구 선생이다.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 여행이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삼국지’를 꼽는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내가 만일’, ‘만남’ 등이다.    

건강을 위해 반신욕을 가끔 한다고 알려졌다. ‘밥심으로 버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먹는다.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꼽혔다.   

잠재적 대선주자로도 거명되지만 그를 따르는 거대 계파나 확고한 지지층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8년 11월 여야 5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과 매달 둘째주 금요일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국회 신뢰 회복을 논의하는 '이금회' 모임을 정례화했는데 추미애도 구성원에 포함됐다. 

◆ 사건사고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연합뉴스>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 제기
추미애는 2019년 12월30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치렀는데 이 자리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이 단독 후보로 공천된 점을 놓고 청와대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친분 있는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에게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미애는 "민주당 당헌과 당규에 입각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단수 후보가 확정됐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은 2020년 1월1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추미애를 공무상 비밀누설죄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은 추미애 측 관계자가 2019년 1월 당시 장환석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송철호 울산시장 측에 소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 시장이 장 행정관을 통해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울산시장 선거 공약에 반영했다고 자유한국당은 바라보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선 추미애가 2003년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채 다른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는 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추미애는 주석을 달지 않은 점은 문제로 인정했지만 선행지식과 배경지식 인용만으로는 표절로 볼 수 없다고 받아쳤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국회의원 임기를 이틀 남겨둔 상황에서 남은 정치자금 가운데 1억 원을 개인 저서 출판비로 썼다는 횡령 의혹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의 남편 서성환 변호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추미애는 저서를 출판하지 않고 1억 원을 돌려줬다는 출판사 사장의 주장과 관련해 돌려받은 돈을 한국심장병재단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5천만 원씩 기부했다고 해명했다.

아들이 군복무 중이던 2017년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은 문제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나 아들의 불법도박과 '코인투기' 의혹과 관련해 추미애는 "후보자 본인의 도덕성, 능력, 전문성을 청문회 취지에 맞게 질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공천 탈락자 자해 소동
더불어민주당이 2018년 4월30일 6·13지방선거 서울 중랑구청장 후보로 류경기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전략공천하자 공천 탈락자 성백진씨가 추미애 대표실 앞에서 자해소동을 벌였다.

성씨는 이날 정오경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전략공천 말고 경선으로 후보를 정하라”고 항의했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흉기를 꺼내 자해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제압됐다.

성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자해를 시도했다”며 “추 대표나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당발전위원회 관련 당내 갈등
2017년 8월1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추미애가 추진중인 정당발전위원회(정발위)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해 친문계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친문계 당원들은 지도부가 정당발전위 활동 방향 가운데 하나로 ‘지방선거에 대비한 당헌과 당규 등 제도 보완’을 꼽은 것을 두고 현행 민주당 당헌이나 당규에 따르면 지방선거 1년 전까지 공천 규정을 확정해야 하는데 이미 시한이 지난 것이라고 반발했다. 

2017년 8월20일 추미애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듯이 혁신과 개혁도 당장은 불편하지만 당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홍영표, 전해철 등 친문계 의원들이 다시 반발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2017년 8월2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당발전위는 당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과제에 집중하고 공천 관련 문제는 당헌과 당규에 따라 ‘지방선거기획단’에서 논의하기로 정리하면서 논쟁이 일단락됐다. 

△설화 논란
직설화법을 종종 쓰는 탓에 이른바 ‘설화 논란’에 종종 휩싸였다.

2018년 3월7일 “대한민국 남성 중에 (성폭력 문제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라는 발언 이후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사모님이 저랑 경북여고 친구니까 유 대표는 빼드리겠다“고 농담을 던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17년 9월12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후 국민의당을 향해 “땡깡부리고, 골목대장질 하고, 캐스팅보터나 하는 몰염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추미애를 직접 언급하며 반발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시정잡배 수준의 망언”,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원장은 “추미애 대표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품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그렇게 오만한 모습이 집권당의 대표인가”라고 비난했다. 

이 발언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동의가 어려워지자 추미애는 2017년 9월18일 “제 발언으로 마음 상한 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동의안은 9월21일 정상적으로 통과됐다.

2017년 8월2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소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부는 중요한 사건에 있어 사법부 스스로 인권을 침해하는 ‘인권침해 공범’이었다”며 “다시는 사법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사법기풍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추미애의 이 발언과 관련해 “재판 결과에 대해 비판은 가능하지만 충분한 근거를 갖고 논의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발언은) 사법부 신뢰에 영향을 많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야당 역시 “법치의 근간을 흔든다”며 반발했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입사특혜 의혹 관련 제보조작 사건을 두고 벌인 국민의당의 조사결과가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해 입길에 올랐다.

추미애는 국민의당이 제보조작 사건을 사실상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린 것을 두고 “꼬리 자르기를 했지만 당의 선대위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대표, 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께서 몰랐다고 하는 것은 ‘머리 자르기’”라고 공격했다. 

국민의당은 의원총회에서 추미애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2001년 7월 술자리에서는 ‘취중 폭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술자리에는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호웅 의원, 동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대한매일·한겨레·세계일보·CBS·연합뉴스 등의 취재기자 8명이 참석했다.

추미애는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한 소설가 이문열씨를 두고 “이문열 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뭐 조선일보를 국민의 4분의 1이나 보고 있다고” 라며 손으로 여러 차례 탁자를 내려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는 “비록 사석에서의 발언이지만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고 거친 발언을 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2016년 10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추미애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정준길 당시 전 새누리당 후보는 추미애가 허위사실을 공포했다며 2016년 4월 고발장을 냈다.

추미애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선거공보물을 배포·홍보한 혐의를 받았다.

이 선거공보물에는 ‘16대 국회 때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서울동부지법·동부지검의 광진구 자양동 존치 약속을 받아냈지만 17대 국회 낙선으로 송파구 문정동 이전을 막지 못했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겨있었다.

검찰은 ‘서울시장을 만나 법원·검찰청 부지 개발사업을 1순위로 추진하기로 약속을 받아냈다’는 부분이 허위라고 판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추미애의 기소를 결정했다.

이에 야3당은 청와대와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덮기 위해 야당 탄압에 나섰다며 반발했다.

추미애는 의원총회에서 “이미 13년 전인 2003년, 12월6일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에서 제 지역구(광진구)에 있는 동부지법 존치요청을 말씀드렸다”며 “당시 공감을 표시해 그런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추미애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80만 원의 벌금형을 받으면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선거법을 위반해 벌금 100만 원 이상 형벌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민주당 당론 반대
추미애는 2009년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민주당에서 반대하는 노조법 개정의 국회 통과를 뒷받침해 징계를 받았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의 임금 지급기준 조정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의결을 반대했다. 

추미애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의 설득에 실패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중재안을 만들었다. 그 뒤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회의장 문을 잠그고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여한 상태에서 표결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추미애가 당론을 어겼다는 점을 들어 2010년 2월2일 당원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결정했다. 추미애는 기자간담회에서 “당 지도부가 징계를 고집한 일은 민심과 산업현장의 미래를 외면한 안타까운 일”이라며 “징계에 개의치 않겠다”고 밝혔다.
▲ 추미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2004년 4월5일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삼보일배를 사흘째 진행하던 도중 광주 북구 각화동 농산물시장 앞에서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일이 추미애의 정치인생에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

추미애는 당초 “탄핵은 아직 익지 않았다”며 민주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탄핵을 반대했지만 표결 직전에 찬성으로 태도를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사과하고 탄핵을 모면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추미애는 “대통령이 정쟁의 국면을 더 크게 만들었다”며 돌아섰다.

추미애는 당시 탄핵을 찬성한 이유를 그의 회고록 '물러서지 않는 진심'에서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최고위원이던 추미애가 ‘3불가론’을 들어 탄핵에 맞서자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내용으로 남은 지도부 모두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당 지도부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의원 2명에게까지 탄핵 서명을 받겠다고 나서자 추미애는 “숯댕이(범죄자)가 검댕이(노무현 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며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탄핵 찬성)를 드리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추미애는 “범죄 혐의로 수감된 의원들까지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묻는 탄핵을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탄핵에 찬성한 역풍은 거셌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은 추미애는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다. 2박3일 동안 광주 금남로에서 5·18 망월동 묘역까지 15㎞를 걸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민주당도 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수감된 의원 2명에게 기어코 탄핵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추미애가 탄핵에 찬성한 이유가 회고록에 밝힌 이유대로라면 의미 없이 소신에 반하는 결정을 한 셈이다.

그 뒤 2년 동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추미애는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이때를 꼽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도 그는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견 발표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 마음의 빚을 당대표가 돼 대선 승리로 갚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추미애는 “내게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영영 가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추미애는 당대표로 취임한 뒤 2016년 8월31일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탄핵 사건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로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력 
▲ 춘천지방법원 판사 시절의 추미애. <추미애 네이버 블로그>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1989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일했다.

1993년 김제시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가 됐다. 

199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로 일했다. 

1997년 15대 대선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으로 활동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제1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개혁추진위원회 제3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를 다시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재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보도 맡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1년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지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중앙위원을 역임했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4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객원연구원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12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임했다.

2006년 법무법인 아주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제17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2008년 민주당 당무위원을 맡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세계한인민주회의 부의장으로 일했다.

2011년 민주통합당 당무위원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4선 의원이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 단장으로 일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 민주통합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3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6·4지방선거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 2016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일했다.

2016년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소녀상의눈물운동본부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5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2016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서울광진구을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재임하고 있다.

2016년 8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최고위원(당대표)을 맡았다.

2016년부터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6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부터 세계한인민주회의 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근혜대통령퇴진 국민주권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더불어민주당 호남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2017년 한국·러시아의원외교협의회 회장으로 일했다.

2018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은 뒤 2020년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 학력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과정에 수학했다.

2004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2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남편 서성환 변호사의 청년 시절 모습. <추미애 네이버 블로그>

남편은 전라북도 정읍에서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 서성환씨다.

자녀로는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 아들 서재휘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서재현씨는 2018년 6월 주성훈씨와 결혼했다. 차녀 서재영씨는 2020년 기준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여성권익디딤돌’을 수상했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다.

2012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로부터 안중근 평화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1월 한양대학교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2018년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윤달선 한양대 석좌교수와 함께 수상했다.

◆ 기타

2008년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 2011년 ‘중산층 빅뱅’, 2013년 ‘물러서지 않는 진심’ 등 저서 3권을 출판했다.

2019년 12월11일 국회에 접수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추미애는 전체 재산으로 14억9871만 원을 신고했다. 국회 공보에서 공개된 2018년 기준 14억6452만 원보다 3천만 원 정도 늘어났다.

추미애 본인 명의의 재산은 서울 광진구 아파트(8억7천만 원)과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2억 원)을 포함한 14억6천만 원으로 집계됐다. 남편 서성환 변호사는 은행 채무 1억5천만 원을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추미애 본인은 여성이라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아들 서재휘씨는 2016년 육군에 들어가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어록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관련된 시비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사회 전체의 불안도 가중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9/12/30,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치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따로 메시지가 없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그 길이 매우 험난하다." (2019/12/05,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 기자들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에게 별도의 메시지를 받았는지 질문받자)

“박근혜 정부의 계엄령 검토는 예나 지금이나 ‘팩트’다.” (2019/10/22,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진영 대 진영 간 갈등을 자꾸 촉발 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은 단순히 페이스북 글을 지웠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자극이 있을 수 있다. 무수한 인내가 필요한 자리다. 반응을 즉각적으로 하다 보면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9/03/26,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SNS에 욕설과 과격한 발언을 올렸던 문제를 지적하면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미국 여론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는 일을 모두가 '안됐으면 좋겠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형국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2019/03/07,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추진을 위한 남북 통합철도망 구축' 토론회에서)

"역사는 아무리 구부리고 비틀어도 결국 정의로운 방향으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로 양심을 팔기 이전에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에 겸허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2019/02/18,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규제 탓에 창업을 못한다는 말은 안 나오게 하겠다. 규제는 걱정 '1도(조금도)' 안 해도 된다.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3종이 1월부터 시작됐으니 '규제 때문에 안 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다. 현장에서 사업을 하다 이런저런 규제에 막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 (2019/01/25,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위해 국제사회를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은 평화를 통한 경제협력의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2018/10/11,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미국 현지에서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공화당의 관계자들, 그리고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을 만나서 비핵화의 확고한 의지, 그리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평화의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잘 다녀오겠다." (2018/09/30, 더불어민주단 대미외교특사단 단장을 맡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외풍을 막아내는 ‘추풍’이 될 것을 약속하겠다.” (2018/08/25,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당대표 임기를 마치는 소회를 풀면서)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쩐다(錢多) 쩐다(錢多). 정의 평화 민생 복지 지켜주고 싶나, 총알 필요하다.” (2018/05/31,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후원회에서 후원금 모금을 목적으로 내놓은 홍보영상 ‘더치페이III-하드캐리!’ 영상에서)

“어제는 홍준표 대표가 ‘믿을 형님이 없어졌다’며 장탄식을 했을 것 같다. 홍 대표가 그토록 믿던 아베 총리마저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겠느냐. 위로의 박수를 보내달라” (2018/5/10,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로 맹비난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판하며)

“자유한국당이 국가기관들을 동원한 권력형 댓글 조작과 드루킹 일당의 댓글 장난을 동일시하는 것은 ‘파리’를 보고 ‘새’라고 하는 것” (2018/4/20, 자유한국당이 드루킹 사건을 문재인 캠프의 대선 여론조작으로 몰고 가려는 것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며)

“선곡을 잘했다. 우리 대통령이 바로 J다” (2018/2/9, 강릉을 방문한 북한 예술단이 ‘J에게’를 부르자 현송월 단장에게 농담을 건네며)

“병을 오래 치료했다고 해서 ‘병간호에 지쳤다. (환자를) 이제 버리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017/10/30,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에 매몰돼 미래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답변하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소수 의견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표결을 무산시키는 것은 헌재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고 헌재가 헌법적 권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적폐세력으로서 반기를 든 것이다.” (2017/09/01,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결산안 처리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 야당을 비판하며)

“국민의 법 감정을 외면한 법원의 결정은 하늘의 땅 차이처럼 동떨어진 천양현격(天壤懸隔)의 판결” (2017/07/28,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1심 재판부가 각각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것을 비판하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등 여유 있는 계층이 고통분담 측면에서 세금을 좀 더 내달라. 다른 나라 경제는 회복을 하고 살아나는데 한국 경제만 국정농단과 국정공백으로 후퇴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수출대기업이 아니라 서민이다. 확대재정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세수 기반 확보가 필요한데 법인세를 손대지 않으면 세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2017/07/21, 충청북도 청주 오송 폭우 피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감격스럽다. 국민 통합의 시대, 사회 대개혁의 원년,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뚜벅 뚜벅 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지지해 달라. 지난 23일 동안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을 빠짐없이 실천할 수 있고 급한 것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오직 국민 여러분만 믿고 가겠다.” (2017/05/09,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 기념행사에서)

“대구정신을 가진 대구의 딸로 민주당 지휘봉을 잡고 있다. 문 후보가 통합의 완결점을 대구에서 찍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문재인을 화끈하게 도와주시고 '대끼리(대길의 영남 방언)'가 대구를 지키는 민주정부 3기에서도 지속적으로 대구를 책임지겠다.” (2017/04/19,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재인 대통령 후보지지 발언을 하며)

“박근혜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비리도 역대 없었던 창조적 행태다. 불공정 대한민국의 끝을 보는 것 같다” (2016/10/07,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세균 의장은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대검 공안부에 배당하더니 대통령 측근과 대통령 연루여부를 따져야하는 권력부패형 미르사건은 형사부에 배당했다. 국민들이 참 웃기다고 할 것이다.” (2016/10/07, 페이스북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전경련이 두 재단을 공중분해시키고 통합한다고 한다. 그동안 모르쇠로 대응하더니 청와대 기획설 등 권력형 비리로 의혹이 번지자 군사 작전하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꼬리 자르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 (2016/10/04, 페이스북에서)

“사드만으로 북핵을 막을 수 없다. 정부 사드로 북핵을 막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국민에게 줘서는 안 된다. 핵을 군사적으로 푼 나라가 있나. 공멸할 우려가 있다.” (2016/09/29,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당대표 초청토론회에서)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은 대통령에게 그냥 잘 보이고 싶은 거 뿐이어서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고 하면 끝날 것이다.” (2016/09/27,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이 대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해 단식 중단을 재차 요청하자 바로 단식을 그만뒀다.)

“쌀값은 식량 주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량 주권은 못 챙기면서 측근들만 챙기는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의무도 사라진 밥쌀 수입을 계속 추진하면서 쌀값 대폭락을 초래했다. 특히 쌀 생산 과잉을 우려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쌀 자급자족 기반마저 붕괴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016/09/27, 전북 김제에서 쌀값 폭락 대책마련 현장 간담회를 열고)

“유가족이 반대하는 부검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과는 고사하고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 막아서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의 품격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고,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가시는 길 만큼은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반드시 지켜드리겠다. 진실을 규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겠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농민 백남기 부검 신청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가결한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이 됐다. 해임건의안은 실체적·절차적 사유를 갖췄는데 대통령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청와대의 망가진 인사 시스템이 문제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박 대통령이 거부하자)

“북한 핵이 점점 더 고삐풀린 괴물처럼 돼가는 건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으로 간 결과다. 나라가 궁지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드는 큰 실수를 했다.” (2016/09/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공언하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한진해운 사태는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국제적 문제가 돼버렸다.” (2016/09/07,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 문제에 대해)

“법인세 정상화는 기업과 국민이 상생 하는 길이다.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세수를 채운 것은 서민과 국민이다. 법인세 정상화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민생경제 위기 탈출의 첫 신호가 될 것이다. (2016/09/06,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3년이나 내리 불참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단 한번도 방문 안 한 제주 4·3추모제에 참석해줄 것을 당부드린다.” (2016/08/29,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한 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판사로 재직한 제 경험에 비추어 이 법(테러방지법)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6/02/27,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주자로 발언대에 올라)

“정치는 과정이고 선거는 결과인데, 과정에 개입하면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결과에 개입한 것 아닌가. 원세훈 무죄 판결 대로라면 앞으로 국정원은 정치개입은 해선 안 되지만, 최고 권력이 바뀌는 대선개입은 해도 위법이 아니게 된다.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다.” (2014/09/12, 트위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박근혜 후보의 인식은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 정보는 차단함으로써 생기는 확신인 ‘확증편향’에 가깝다. 사법체계에 대해 무지하며 도덕적이지 않다.” (2012/09/12, 인혁당 사건에 대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역사 인식을 문제삼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에서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력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내리자 이를 ‘한 마디로 가치없는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피땀 흘려 가꾼 민주주의를 유신의 딸에게 맡길 수 없지 않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꿩처럼 우아하게 살아왔다면 나는 매처럼 도전하며 당당하게 살아왔다. 꿩을 잡는 게 매다. 박 전 위원장을 확실히 잡겠다.” (2012/06/09,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중산층의 붕괴를 막으려면 보수 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임무 교대를 해야 한다. 외형 성장을 강조하는 식은 중산층 기반이 없어 미래가 없다. 보수 정권이 대기업 위주의 외형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가계 중심의 성장을 해야 한다.” (2011/10/12,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산층 붕괴 문제에 대해)

“내 마지막 꿈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다수의 국민들을 끌고 나갈 힘이 있다면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11/13,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 정치인으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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