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결국 사람(인재)이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위해 HR제도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CEO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14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2018년부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관심을 보였는데 올해 들어 직원들이 가정과 일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최 회장은 올해 '100번 토론'을 추진한다. SK그룹 임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행사를 100회 마련한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나누고 회사 정책에 반영할 계획을 세웠다.
그룹 총수가 한 해 동안 100회에 걸쳐 직원들과 직접 만남을 마련하기는 아주 드문 일이다. 최 회장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100번 토론의 주제를 직원들의 행복으로 잡았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과 같은 전통적 경영 목표를 내세우지 않았다. 직원이 행복하면 업무 효율 증대나 성과는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신년행사에서도 사업 계획 대신 직원들의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는 행동원칙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꿔야 한다”며 "단순히 행복을 위한 제도만 만들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실제적 참여가 뒷받침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신년행사가 끝난 뒤 올해 계획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무엇보다 구성원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짧게 대답하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최근에 직원들과 만난 두 번째 소통의 장에서도 최 회장은 같은 기조를 보였다.
최 회장은 “직장 생활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며 “조직, 제도, 사람을 바꾸는 긍정적 변화가 한 번에 생기지 않는 만큼 구성원 스스로가 조그마한 해결방안이라도 꾸준히 찾아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워라밸과 직원들의 행복을 강조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행복감을 느낄 때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가능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신입사원과 대화에서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대기업 생존의 길”이라며 “새 시대에서 인재는 삶과 일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이를 통해 생명력 넘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뜻에 따라 직원들의 행복감을 높여주는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직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빅 브레이크(Big Break)’제도가 대표적인데 직원들에게 2주 동안의 장기휴가를 권장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권하는 만큼 휴가를 쓰는 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연월차를 더하면 최장 3주 동안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SK그룹 계열사 가운데 SK텔레콤은 2017년부터 상사 결재 없이 휴가 쓸 수 있는 ‘휴가 셀프 승인’ 제도를 도입했다.
직원이 휴가를 기안해 승인하면 알람 메일이 소속 팀장과 팀원들에게 전달되는 식으로 직원들이 상사에게 미리 따로 보고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휴가를 조정해 사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의 C&C부문 등이 2018년부터 뒤를 이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눈치보지 말고 휴가 쓰는 문화를 강조하기도 한 만큼 전사적으로 이런 직원들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 제도들이 유연하게 잘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가 ‘구성원이 행복해져야 기업이 잘되고 사회가 잘 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