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새로운 먹거리로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부각되는 가운데 이를 이을 차세대 반도체로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이 떠오르고 있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HBM과 달리 CXL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사에 앞서 양산을 시작해 차세대 메모리 시장을 선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차세대 메모리 'CXL' 선점 속도전, 이정배 'HBM 사태' 재연 막는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이 차세대 메모리 CXL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


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제2의 HBM’으로 CXL를 꼽으며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CXL은 컴퓨터 시스템 내부에서 다양한 구성요소들 사이에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기 위한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에서 중앙처리장치(CPU)와 함께 사용되는 가속기, 메모리, 저장장치 등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CXL의 가장 큰 특징은 확장성이다.

기존에는 CPU를 중심으로 메모리와 저장장치 등 각 장치에 별도 인터페이스가 존재해 각 장치에서 통신을 할 때 다수의 인터페이스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으로 데이터 처리량이 늘어나자 지연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하지만 CXL을 활용하면 기존의 여러 인터페이스를 하나로 통합해 각 장치를 직접 연결하는 만큼 데이터 처리 길(pathway)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 서버 구조를 교체하지 않고도 SSD를 꽂는 자리에 CXL 기기를 장착하면 시스템의 D램 용량이 늘어나는 방식이어서 서버업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욜 인텔리전스는 CXL 메모리 플랫폼 시장이 2030년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30년 약 1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센터 메모리 시장에서 5분의 1을 차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CXL 개발은 삼성전자가 다소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는 2021년 5월 업계 최초로 CXL을 기반으로 한 D램 기술을 개발했고 2023년 5월 ‘CXL 2.0’ 제품을 새롭게 출시하고 4분기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0월7일에는 CXL 생태계 확대를 위해 오픈소스 기반 소프트웨어 솔루션도 공개했다.

SK하이닉스가 9월20일 인텔 '이노베이션 2023' 행사에서 ‘CXL 2.0’을 공개한 것과 비교하면 몇 개월 앞서고 있는 셈이다. 다만 ‘DDR5 기반 CXL’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아직 기술우위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란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세계 최고로 불리던 ‘메모리 경쟁 우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리를 높인 메모리반도체로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4세대 제품인 HBM3도 양산해 선제적으로 엔비디아에 제품을 공급하며 삼성전자보다 우위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차세대 메모리 'CXL' 선점 속도전, 이정배 'HBM 사태' 재연 막는다

▲ 삼성전자 CXL 2.0 D램. <삼성전자>


이에 삼성전자는 제2의 HBM인 CXL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17일 삼성전자 뉴스룸에 올린 기고문에서 “CXL 메모리 모듈 등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메모리 대역폭과 용량을 원하는 만큼 확장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하며 차세대 반도체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CXL D램에서 데이터저장 외에 연산기능까지 담당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황상준 삼성전자(005930)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 부사장은 “HBM-PIM(고대역폭메모리+지능형반도체)은 D램 내부에 데이터 연산 기능을 탑재해 메모리 대역폭의 병목 현상을 개선한다”며 “최근에는 CXL D램에서 PIM 아키텍처를 구성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CXL은 2024년부터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이 2024년 상반기에 출시하는 서버용 CPU ‘시에라포레스트’는 최초로 CXL 2.0 탑재가 가능한 제품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인텔에 공급하기 위해 올해 4분기 CXL 2.0 양산을 시작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호환성 문제로 데이터센터용 제품에만 CXL이 활용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향후에는 개인용 CPU에도 CXL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차세대 메모리 인터커넥트 표준이 CXL로 정리되면서 향후 채택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새로운 수요가 발생해 데이터센터용 서버 D램 수급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