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원료 수출 통제 본격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은

▲ 중국 상무부가 8월1일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시작하면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정부가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에는 갈륨과 게르마늄이 거의 활용되지 않는 만큼 당장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과 미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장기화돼 수출 통제 품목이 확대되면 국내 반도체업계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중국이 첨단산업에서 원자재를 전략자산화하는 움직임은 향후 국내 기업들에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가 8월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을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시행하면서 공급망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미국이 일본, 네덜란드와 같은 동맹국과 함께 첨단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자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반도체 원료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투자회사 BMO캐피탈마켓의 콜린 해밀턴 연구원은 BBC와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의 반도체장비 수출 제한 발표와 중국의 이번 수출 통제 발표 시기가 겹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중국에 반도체장비를 주지 않는다면 칩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핵심 소재 가운데 하나로 중국은 세계 최대 갈륨·게르마늄 생산국이다.

갈륨은 전기전도율이 높고 증발점이 낮다는 특성을 지닌 금속으로 전자제품, 반도체, 태양광 전지 등에서 사용되는 광물이다. 특히 갈륨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질화갈륨(GaN)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게르마늄은 반도체 박막 증착 공정(웨이퍼에 얇은 막을 입히는 공정)에 쓰이는 가스에 활용되는 물질이다.

두 물질 모두 미국, 벨기에 등 대체 공급처가 있으나 최대 생산지인 중국이 수출을 통제함으로써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양기욱 산업공급망정책관 주재로 ‘산업 공급망 점검회의’를 열고 갈륨, 게르마늄을 포함한 주요 수입 의존 품목에 대한 공급망을 점검하기도 했다.
 
중국 반도체 원료 수출 통제 본격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은

▲ 질화갈륨으로 만들어진 전력 반도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 국내 반도체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갈륨, 게르마늄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보다는 통신용, 차량용 반도체에 주로 활용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 전력 반도체에 쓰이는 갈륨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연구 단계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 반도체 비중이 높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만드는 메모리반도체 공정에서는 갈륨이 쓰이지 않는다”며 “따라서 중국의 이번 조치가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후 중국이 다른 반도체 소재에 대해서도 수출 통제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공급망 다각화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세대 반도체 소자로 부각되고 있는 실리콘카바이드(SiC)의 소재인 탄화규소만 해도 중국 생산량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향후 중국이 수출 통제 품목을 확대했을 때 국내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지역적 갈등이 부각되면서 반도체원료 공급망을 다각화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일본이 2019년 반도체 소재 3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실시했다가 올해 3월 해제하는 일이 있었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네온, 팔라듐과 같은 반도체 원료 확보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중국의 이번 수출 통제를 단순히 미국의 반도체장비 수출 제한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차세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의 원자재 전략자산화 기조가 국내 기업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안 분석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원자재를 전략자산화하는 동시에 자국 중심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주요 첨단산업에서 중국과 경합관계에 있으며 핵심광물 및 소재·부품에서 상당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종합적 관점의 통상 및 산업 전략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