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삼성전자 D램 위기론은 최근 메모리반도체 업계를, 그리고 주식시장까지 뜨겁게 달궈왔다.

위기론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다. 한 쪽 줄기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감산 등의 타이밍을 놓쳐 단기적으로 실적의 위기가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한 쪽 줄기는 장기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분야인 HBM에서 SK하이닉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의 미래로 불리는 HBM을 엔비디아에 납품하려 했다가 납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서 불발됐다든가, 엔비디아에서 삼성전자의 HBM 제품명인 “HBM3P”를 두고 자신들과 SK하이닉스의 제품명과 겹치니 제품명을 변경하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항상 앞서고 있던 ‘1등’ 삼성전자가 HBM과 관련해서는 최초 타이틀을 SK하이닉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소식 역시 삼성전자 D램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삼성전자의 D램 사업은 위기에 빠진 것일까? 이대로 SK하이닉스에게 추격을 허용하고, 차세대 D램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오히려 SK하이닉스를 추격하는 위치로 바뀌게 되는 일이 발생할까?

미래란 모르는 일이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소한 지금 제기되고 있는 삼성전자 D램 위기론 자체는 상당 부분 과장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줄기 측면에서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첫 번째는 단기적 실적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사실 D램이 사이클 산업이라는 것만 살피더라도 쉽게 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현재 여러 글로벌 매체에 따르면 D램 시장의 업사이클이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테크인사이츠의 디렉터인 안드리아 라티는 “올해 D램 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40% 감소한 500억달러(약 66조 7650억 원) 수준이지만 내년은 올해보다 37% 증가한 69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물론 D램 시장의 호황기가 오는 것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게도 똑같이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삼성전자에게 ‘더’ 좋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생산능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사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D램 수요가 다시 폭증한다면 생산능력이 큰 기업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생산하는 즉시 D램이 팔려나가기 때문에 당연히 많이 찍어내는 쪽이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지만 삼성전자의 생산능력은 SK하이닉스의 생산능력과 비교해 약 1.4배~1.5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D램 생산량과 관련해 “모든 생산력을 최고로 가동하면 2배 이상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능력 차이를 따라잡는다는 것이  D램 시장같은 과점시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한 회사가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 시작하면 과점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따라서 올리게 되고, 그렇다면 순식간에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 모두가 불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술 이야기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말할 때 조금 더 중요하고, 장기적인 줄기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 D램 위기론의 요체는 더 이상 D램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는 이제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데, 이 이야기는 아까도 이야기 한 것처럼 차세대 D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HBM 시장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HBM 시장은 이제 막 개화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2021년 전세계 D램 시장 규모는 925억 달러, 그런데 HBM 시장 규모는 수요가 폭증했다는 올해 기준으로도 20억 달러에 불과하다.

HBM 시장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 유망한 시장이지만 현재의 시장 점유율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HBM은 기존 D램 시장을 ‘대체’하는 시장이 아니라 D램 시장과 함께 커가는 시장이다. 삼성전자가 완전히 헤게모니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HBM 시장점유율뿐 아니라 기술력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게 밀렸다고 하긴 하지만, 예전에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 보여줬던 1세대 이상의 기술력 차이가 나버리는 ‘초격차’ 수준은 아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SK하이닉스가 HBM 분야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독식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삼성전자가 크게 뒤쳐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이제 기술개발의 초기 단계이고, SK하이닉스가 넓은 시야로 HBM 시장에 먼저 주목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에 놓인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삼성전자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삼성전자 위기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과장됐고, 특히 다른 경쟁자들에게 뒤쳐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삼성전자의 인프라, 자본력만 보더라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프라와 관련해서 아까 생산능력 차이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했기 떄문에 장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EUV는 초미세공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로 원래 파운드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장비지만, 지금은 D램에서도 EUV 공정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이 장비는 세계에서 ASML이라는 회사 한 곳에서만 생산하는 장비고, 그러다 보니 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EUV 보유 대수에서 삼성전자는 나머지 두 경쟁자들을 커다란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는 EUV를 파운드리 사업에도 투입하고 있는 만큼 정확히 D램 생산공정에 EUV가 몇 대 사용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쟁사보다는 확실히 장비 측면에서 우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본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현재 무려 80조 원 수준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이든, 인프라든 결국은 자본싸움이라는 것을 살피면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삼성전자 D램 위기론을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는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기업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봐왔다. 안일하다게 생각하다가 경쟁사들에게 뒤처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점유율 격차 역시 2023년 2분기 기준 6.3%포인트까지 줄었는데, 이는 최근 10년 안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마음 놓고 있어도 되는 상황은 분명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1:1 비교를 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주가 추이를 보더라도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SK하이닉스 주가의 상승세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 영상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다른 영역, 삼성전자 파운드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