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다툼에서 폴크스바겐과 포드의 강한 합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폴크스바겐과 포드는 SK이노베이션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의 고객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두 회사가 배터리 다툼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 고객 폴크스바겐과 포드의 배터리 합의 압박은 부담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


2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0년 동안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입금지를 결정하면서 미국 전기차배터리 고객사인 폴크스바겐과 포드에 부여한 유예기간이 두 회사의 처지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시선이 나온다.

국제무역위는 폴크스바겐에 2년, 포드에 4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유예기간은 새로운 배터리 납품사를 찾기 위한 시간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회사는 하나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적합한 사양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복수의 회사를 선정한 뒤 조건 협상을 거쳐 계약을 맺는다”며 “이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폴크스바겐이 받은 유예기간 2년은 물론이고 포드가 받은 4년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유예기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두 완성차회사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폴크스바겐은 판결이 내려진 10일 성명을 통해 “폴크스바겐은 의도치 않은 희생자인 만큼 유예기간을 최고 4년으로 연장해 달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두 회사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짐 팔리 포드 CEO도 트위터에서 “두 회사의 합의가 미국 제조사들과 노동자들에 최선의 방향”이라며 합의를 촉구했다.

폴크스바겐과 포드의 목소리는 이미 국제무역위가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 준 만큼 실질적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을 향한 합의 종용의 압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크스바겐과 포드의 합의 종용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 완성차회사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고객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고객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향한 공세를 거두지 않는다면 폴크스바겐과 포드는 미국에서 전기차사업 본격화를 앞두고 배터리 공급사를 교체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두 완성차회사가 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마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 대신 폴크스바겐과 포드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방안도 있기는 하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폴크스바겐과 포드는 파우치형 NCM배터리(니켈, 코발트, 망간을 조합한 양극재를 쓰는 배터리)를 원한다”며 “LG에너지솔루션 말고는 SK이노베이션 대신 두 회사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두 완성차회사가 원하는 시점에 기존 계약과 완전히 동일한 사양의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선이 배터리업계에서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9.8GWh 규모의 배터리 1공장과 12GWh 규모의 2공장을 각각 짓고 있다. 이 가운데 1공장은 폴크스바겐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곳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공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생산능력이 5GWh에 그친다. 이것만으로는 SK이노베이션이 폴크스바겐에서 수주한 물량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만든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미국 오하이오에 내년 1월 가동을 목표로 30GWh 규모의 배터리공장을 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공장의 물량은 상당 부분 GM이 흡수하는 만큼 폴크스바겐과 포드가 원하는 물량을 맞춰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배터리공장을 더 짓는 투자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 1공장은 이미 시제품 생산에 들어간 만큼 이 생산 스케쥴을 따라잡기는 시간상 불가능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을 향한 폴크스바겐과 포드 두 완성차회사의 합의 종용에는 절박함이 담겨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도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두 완성차회사의 사업 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SK이노베이션과 합의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은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미국 행정부의 판결 검토기간인 4월10일이 지날 때까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판결 거부권 행사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합의가 없다면 국제무역위의 판결이 발효된다.

국제무역위가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 판결을 내린 만큼 판결 이전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더 많은 합의금을 받아내려 할 것이라는 시선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판결 직후 보고서를 통해 예상 합의금이 과거 LG에너지솔루션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던 최대 3조 원 수준을 넘어 5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만을 내세우다가 고객사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앞으로 델라웨어 연방법원 등의 판결로 내려질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금까지 적용하면 피해금액의 200%까지 합의조건에 포함할 수 있다”면서도 “합의금에 손해배상을 포함할지 여부는 SK이노베이션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로 협상에 나서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