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키운 김봉진, 푸드테크회사로 우아한형제들 간다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면 정의 당한다.’ 

창업에 관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의 조언이다. 마키아벨리의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를 살짝 비틀었다.

그는 2015년 음식과 정보기술을 합쳐 ‘푸드테크’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커지면서 사업에도 정의를 내릴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거창하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김 대표는 정말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자율주행 배달 로봇의 시제품 개발을 마쳤다. 시범 운영을 거쳐 이르면 5년 안에 상용화를 목표로 잡아놨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부터 정우진 고려대 교수팀과 함께 배달로봇 ‘딜리’를 개발하고 있다. 시속 4㎞로 움직이며 센서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하고 목적지까지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배달문화도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배달의민족이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고심한 결과가 배달 로봇 딜리"라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3월부터 AI(인공지능) 프로젝트 ‘배민데이빗’을 가동했다. 최근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김범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말에는 네이버로부터 350억 원을 투자받으면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 대표가 3년 전 말한대로 우아한형제들이 ‘푸드테크’ 회사에 걸맞게 사업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는 최근 ‘스타트업 한국을 말한다’ 대담에서 “사업을 정의하고 나니 주문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성장하는 시장에서 성장하는 기업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강조하는 스타트업의 또 다른 핵심은 비전 만들기다. 조직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비전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배달의민족을 출시한 이후 처음 5년 동안 회사의 비전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배달산업을 발전시키자’였다. 

실제로 배달의민족 등 배달앱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음식 주문습관은 전단지에서 모바일로 바뀌었다. ‘2016 배달음식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음식점의 80%가 배달앱을 사용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김 대표가 비전을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로 바꿨다. 인공지능(AI)과 배달 로봇 연구개발도 이 비전과 무관하지 않다. 아직 먼 얘기지만 딜리가 상용화되면 사람이 배달하기 힘든 장소나 시간에 활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2010년 초 카페베네 답십리점에서 무자본으로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배달의민족은 국내 최초로 배달앱 서비스를 시작한 배달통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서 출시된지 4년 만에 연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국내 배달앱시장 규모는 3조 원대로 지금도 배달의민족이 압도적 1위다. 점유율을 보면 배달의민족이 51%, ‘요기요’와 ‘배달통’이 각각 35%, 14% 정도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도 매출 1626억 원, 영업이익 217억 원을 거둬 전년보다 각각 91.6%, 768% 늘었다. 주문 건수 역시 매년 70% 안팎씩 오르고 있다. 월간 순이용자(MAU) 수는 최근 6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성공에는 이른바 'B급 감성’, 독특한 유머코드에 바탕한 브랜드 정체성의 역할이 컸다. 

김 대표는 사람처럼 브랜드도 ‘페르소나(인격)’를 지녀야 한다고 보고 사업 초창기부터 타깃을 확실히 정의했다. 배달음식을 주로 주문하는 조직의 막내들을 겨냥해 20~30대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다. 

배달의민족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재치있는 TV광고로 홍보를 시작했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등 웃음을 부르는 광고문구로 인지도를 높였다. 직접 만든 독특한 서체도 이 회사의 트레이드마크다.

원래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김 대표다운 경영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꿈을 접었다. 공고를 갔다가 뒤늦게 미술 공부를 시작해 서울예술전문대학교에 가긴 했으나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2010년부터 창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직원 16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700명 수준으로 커졌지만 가장 큰 과제는 10%대에 불과한 영업이익률 개선이다. 배달의민족은 2015년 배달앱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주문 중개수수료를 전면 폐지했다.

이렇다 보니 지금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수익구조 측면에서 김 대표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대표의 명함에는 지금도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적혀 있다. 그에게 사업과 디자인은 비슷하다. 둘 다 정확한 답이 없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