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vs 불법보조금', 시진핑 유럽 순방으로 '중국 전기차' 딜레마 부각

▲ 6일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호텔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공식 환영식에서 한 군인이 시 주석을 향해 거수경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순방으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전기차와 관련한 '딜레마' 상황이 부각되고 있다.  

유럽연합으로서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렴한 중국 전기차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중국 전기차에 주어지는 불법 보조금을 내버려두면 현지 전기차 업체들이 곤경에 빠질 수 있어서다.

8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유럽 사업 확장 방안을 두고 5일(현지시각)부터 엿새 동안 이어지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유럽 순방 기간 동안 현지 정치권 주요 인사 사이에서 엇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브루노 르 마리 재무장관은 6일 자국 자동차 부문 대표들과 만남 자리에서 중국 전기차 1위 기업인 BYD가 프랑스에 공장을 개설하는 안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같은 날 시 주석 및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연 3자 회의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불법 보조금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불법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가 유럽 시장에 출시돼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유럽 현지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유럽 주요 인사 사이에 이러한 상반되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에 ‘기후 목표’가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은 10년 뒤인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출시를 전면 금지하는 목표를 세웠다. 탄소절감과 같은 친환경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다. 

다만 유럽 내 전기차 제조기업의 생산능력으로는 이를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강력한 생산 능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들의 활용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4월23일 선보인 ‘글로벌 전기차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전기차 신차 가운데 60% 가량이 중국에서 출하됐다. 

유럽 내 전기차 비율은 절반 아래인 25%다. 폴크스바겐이나 스텔란티스와 같은 유럽 상위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까지 전기차 사업 부문에서 중국 업체들만큼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책 컨설팅 비정부기구(NGO)인 ‘교통과 환경’은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유럽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023년 7.9%에서 2027년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탄소중립 vs 불법보조금', 시진핑 유럽 순방으로 '중국 전기차' 딜레마 부각

▲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유럽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BYD가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최하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EURO) 2024’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을 보여주는 로고. < BYD >

중저가 차량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될수록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유럽이 환경 보호와 자국 전기차산업 육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게도 유럽 진출은 자국의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판매처를 다변화 할 수 있는 매력적 대안이다. 

시 주석의 이번 유럽 순방길에 상하이자동차(SAIC)나 샤오펑 등 중국 전기차 기업 대표단이 동행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럽이 미국과 달리 중국과 정치적 갈등 수위가 낮다는 점도 중국 업체들의 사업 확장에 긍정적 요소로 꼽힌다.

중국 전기차 기업으로서는 미 정치권의 견제 압력과 고관세라는 리스크를 안고 무리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대신 유럽 진출을 추진하는 게 수월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BYD와 체리자동차 그리고 상하이자동차 등 다수의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이미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체리자동차는 스페인 EV모터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카탈루냐 지역에 생산 설비를 준비하고 있다. BYD 또한 헝가리에 전기차 제조 공장을 신설해 2026년부터 차량을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현지 생산 거점도 마련해 판매를 더욱 늘리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물론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유럽 진출을 경계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의 판매량이 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자동차 산업 자체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프랑스의 씽크탱크인 프랑스 국제관계 연구소(IFRA) 산하 아시아 연구센터의 마크 줄리엔 소장은 닛케이아시아에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잃는 것을 넘어 몇 년 동안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며 “중국 전기차의 불공정 경쟁이 과소평가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3년 10월 중국 전기차 기업들을 상대로 불법 보조금 조사에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보조금 조사에 따라 중국 기업들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면 유럽연합이 세운 친환경 목표에서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유럽이 중국의 중저가 전기차 공세 앞에 관세를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 상황에 처했다”라고 평가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