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역대급 열기로 시선을 모을 전망이다.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거센 가운데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 등의 주주 제안이 봇물을 이루고,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표 대결도 예상된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주주환원 확대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추가 지원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곳곳에서 전운이 감도는 ‘벚꽃 주총’ 이슈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3월 주총대전] '늑대 무리' 주주환원 확대 빗발치는 삼성물산, 이재용에 득일까 독일까

▲ 국내 기업들에 주주환원 강화 기대감이 커자면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상승은 최대 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국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환원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상승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인 삼성물산을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주주환원 강화 기대감에 올해 들어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다만 주주환원 강화는 삼성물산의 재무 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해야 하는 이재용 회장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관련 사항을 의결한다.

이번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어느 때보다 시장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시티오브런던,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5곳 행동주의 펀드들이 손잡고 삼성물산에 올해 5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비롯해 보통주 주당 4500원, 우선주 주당 4550원에 이르는 배당 등 강도 높은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4일에는 팰리서캐피탈도 주주제안을 놓고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태도를 밝히는 등 삼성물산을 향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울프팩(wolfpack, 늑대무리) 전략이 본격화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따라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정부가 2월26일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에 정책적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실적으로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최초 주주제안을 한 5곳 행동주의 펀드의 지분은 모두 합쳐 1.46% 정도이기 때문이다. 팰리서캐피탈의 지분 0.62%를 합쳐봐야 2% 남짓에 그친다.

반면 이 회장이 직접 들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은 18.1%다. 이 회장의 지분에 총수 일가를 비롯해 삼성그룹 소속 재단법인 등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까지 더한 지분율은 33%를 웃돈다. 

이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KCC가 보유한 지분 9.17%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42% 이상은 이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지분으로 평가된다.

7.25%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는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더욱 우세하다.

주총에서 표 대결의 결과와 관계없이 행동주의 펀드가 강도 높은 주주제안을 내놓은 목적은 이미 어느 정도 달성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투자 수익 극대화를 위해 주가 부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과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 등이 이어지면서 주주환원 강화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주식 시장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 주가는 2월19일 종가 기준 17만400원까지 올라 2015년 9월 이후 8년 5개월만에 17만 원 선을 넘겼다. 지난해에 10만 원 선 안팎에서 움직이다 1월 말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발표 이후 힘을 받은 것이다. 8일 종가는 16만8200원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가 내놓은 주주제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으로 주주환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해 시장 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전체 1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배당 규모의 10.9% 확대 등 주주정책을 발표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6일 삼성물산을 두고 “주주환원 확대와 성장동력 확보를 통해 밸류업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기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이재용 회장에게도 최근 삼성물산을 둘러싼 흐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강화와 주가 상승은 이 회장 개인 자산의 증대, 삼성물산 지배력 강화, 상속세 재원 마련 등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챙길 배당금만 보더라도 주주배당 확대에 따라 수백억 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 회장은 상속세로 매년 5천억 원 가까이 납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회장은 올해 1월 기준으로 삼성물산 보통주 3388만220주를 들고 있다. 삼성물산이 결정한 보통주 1주당 2550원을 배당한다면 이 회장은 863억9456만 원을 배당금으로 받게 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대로 보통주 1주당 4500원을 배당하면 이 회장이 받을 배당금은 1524억6099만 원으로 660억 원가량 늘어난다.

자사주 소각으로 지배력도 강화된다. 이 회장 보유 지분은 삼성물산이 예정대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면 현재 18.1%에서 20.7%까지 확대된다. 주주제안대로 5천억 원 규모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해 소각한다면 21%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삼성그룹의 총수로서 이 회장이 삼성물산 주주환원 확대를 반갑게만 볼 수 없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하는데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인 만큼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을,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보유하는 등 삼성그룹의 지분구조 정점에는 삼성물산이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그룹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그룹에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펼쳐지는 이유도 삼성그룹의 덩치에 비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작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이 어떻게 지배구조를 개편할지를 놓고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다만 지주사 전환, 인적분할, 계열사 지분 확보 등 어떤 형태로든 삼성물산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삼성물산은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재정적 여력을 확보해야 하기에 주주환원을 마냥 강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해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려면 공정거래법상 3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 경우 지분 매수에 최대 100조 원 이상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직접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지만 인적분할 이후 합병을 통해 지주사를 설립하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로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도 반대매수청구권 행사 규모를 최대 1조5천억 원으로 설정했다. 현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등 기업가치를 고려하면 필요한 비용이 이를 상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재용 회장은 2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덜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3기 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2월20일 “콘트롤타워 부활 등 지배구조 현안에 여러 사정을 고려해 가장 올바른 해법을 찾도록 3기에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