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역대급 열기로 시선을 모을 전망이다.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거센 가운데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 등의 주주 제안이 봇물을 이루고,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표 대결도 예상된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주주환원 확대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추가 지원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곳곳에서 전운이 감도는 ‘벚꽃 주총’ 이슈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3월 주총대전] 삼성 SK LG 주주환원 요구 높아진다, 행동주의 펀드 대공세

▲ 행동주의펀드 연합이 삼성그룹의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에 공격적 주주환원을 요구하면서 3월15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삼성, SK, LG 등 주요 대기업의 주주총회가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주주환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의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은 이미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현금배당 확대와 자사주 추가 매입 제안을 받았고, LG도 행동주의 펀드 주요 주주들로부터 언제든 비슷한 요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SK는 현재 주요 주주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가 없지만, 과거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공격받은 적이 있는 만큼 주총을 앞두고 분위기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5일 재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3월 주총 시즌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주주환원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주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3월15일 주총을 여는 삼성물산은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로부터 총공세를 받고 있다.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5개 행동주의펀드 연합은 삼성물산에 올해 5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비롯해 보통주와 우선주에 대해 주당 각각 4500원, 4550원씩 배당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금액은 삼성물산이 제안한 배당액보다 각각 76.5%, 75% 많은 규모다.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한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 측도 “삼성물산 주식은 내재 가치에 비해 과도하며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주주 제안은 삼성물산 내재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존 권고안에 부합하고, 회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제안을 수용하려면 삼성물산은 약 1조2364억 원이 필요하다. 이는 회사의 올해 예상 잉여현금흐름(FCF)을 넘어서는 규모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이를 막기 위해 다른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고 있다.
 
[3월 주총대전] 삼성 SK LG 주주환원 요구 높아진다, 행동주의 펀드 대공세

▲ LG와 SK는 현금이나 자사주를 활용한 주주환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3월27일 주총을 앞둔 LG그룹 지주사 LG도 3대 주주가 행동주의 펀드 성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실체스터다.

LG 지분 6.03%를 확보한 영국계 펀드인 실체스터는 특히 일본에서 적극적 주주제안을 해왔다.

실체스터는 2022년 일본 이와타은행, 시가은행 등 지방은행 대상으로 50% 배당성향,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100% 배당, 일부 최고경영자(CEO) 해임 등 공격적 주주행동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이미 KT 지배구조에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아직 LG에는 구체적 요구를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주주환원과 관련한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실체스터가 LG 지분을 늘린 점이 눈에 띈다”며 “막대한 현금을 활용한 적극적 주주환원 요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LG와 같은 날 주총을 여는 SK는 현재 주요 투자자 명단에 행동주의 펀드가 없는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특별관계자 외 5% 이상의 SK 지분을 보유한 곳은 국민연금공단(지분율 7.55%)뿐이다.

하지만 SK는 2005년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공격받아 경영권까지 위협을 받은 적이 있는 만큼, 최근 주주 행동주의 물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2년에는 라이프자산운용이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 SK가 2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SK는 2월22일 기준 25.52%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상장 대기업 가운데 롯데지주(32.51%)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최대주주는 경영권 다툼이 발생했을 때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는 소각을 통한 실질적 잔여지분 가치 상승이 있어야 주주환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주주와 소액주주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증권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최소한 소각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지난 2월26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에서 “상장기업의 배당수익률 저조, 자사주 매입·소각 부족이 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이라며 “기업들은 수익성 제고, 주주환원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