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국회서 나온 '홍콩 ELS' 피해자 목소리, “은행이 서민에 사기 친 것”

▲ 국회 의원회관에서 1월23일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토론회에 참석한 홍콩 H 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들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제1금융권인 은행이라는 안전성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서민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최근 대규모 손실이 예견되면서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홍콩 H 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의 피해 현황과 금융기관의 책임소재, 금융당국의 대책 마련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해자들은 각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ELS 판매 과정에서 있었던 은행들의 부적절한 행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이번 홍콩 H 지수 주가연계 상품 판매를 놓고 은행들의 행태에 금융소비자보호법을 포함한 현행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많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ELS 판매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100여명 넘게 참석하며 장소를 더욱 넓은 곳으로 옮기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피해자들 일부가 전문가들의 토론에 앞서 피해 사례를 설명했다. 피해 사례에서 나타난 공통적 문제점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인 ELS를 안정적이라 소개했다는 것이었다. 또 상품을 가입할 때 소비자가 체크해야 될 사항을 담당직원이 다 체크해 놓는 등의 행태도 여러 피해사례에서 지적됐다.

신한은행에서 ELS 상품으로 손실을 입었다는 한 피해자는 “제 명의로 ELS상품을 대리 가입한 아버지는 가입 당시 94세로 치매증세도 있었다”며 “오랫동안 은행에서 안정적인 상품만 가입하셨던 아버지는 자식보다 더 믿었던 은행원이 시키는 대로 서류와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상담 녹취록을 들어보니 저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생 하나의 은행을 고집하던 노인에게 칼을 꽂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토론회 시작 전 자신을 60대라 밝힌 다른 피해자도 “은행에서 ELS 상품을 소개하며 절대 손실이 안 난다고 했다”면서 “(손실 리스크가) 무서워서 안 한다고 했지만 은행이 안전함을 강조했다”고 토로했다.

농협에서 거래했다는 또다른 피해자도 “25년간 주거래은행인 농협에서 VIP대우를 받았는데 좋다는 말에 ELS상품을 가입하게 됐다”며 “담당직원은 절대 원금손실이 없고 6개월 만에 투자수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상품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고 만기가 다가오는 2023년 11월 상품설명서를 문자로 처음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고등학생을 ELS 상품에 가입시킨 사례도 소개됐다. 또 보험을 해지한 뒤 ELS 상품 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은행 직원이 고객인 양 보험사에 직접 전화를 건 녹취록을 튼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사례들을 들은 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저는 이번 ELS와 관련해 ‘불완전 판매’가 아니라 ‘사기성 부정 판매’라는 표현을 쓴다”고 말하자 이에 공감한 피해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은행들의 홍콩 H 지수 편입 ELS 판매는 금융소비자법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견해를 보였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사업자가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적합성 확인 △적정성 확인 △설명의무 준수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 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 6대 판매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은행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 국회서 나온 '홍콩 ELS' 피해자 목소리, “은행이 서민에 사기 친 것”

▲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토론회에서 손을 들어가며 피해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득의 대표는 “이 상품에 대해서는 홍콩 H 지수가 중국과 연동돼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중국 경기가 불안해졌을 때 변동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들을 향해 “(그러나) 다들 홍콩 H 지수가 중국 50대 기업과 연동돼 있는 것도 모르셨잖아요”라고 말했고 피해자들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복되는 대규모 ELS 투자손실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원금보장’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는 은행에서 고위험·고난도 금융상품인 ELS 판매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대표는 “은행을 이용하는 분들은 대부분 예금 같은 안정성을 추구한다”며 “은행이 이런 분들한테 구조적으로 원금손실 확률이 10~30% 있는 상품들을 판다면 이번 사태처럼 안전성은 강조하고 위험성은 지나가듯이 판매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민생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백주선 변호사는 수년 전에 금융기관들의 불완전 판매로 피해사례가 발생했는데도 또 다시 ELS 피해가 벌어진 점을 비판하며 제도개선을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금융상품의 부적절한 판매로 처음 일컬어진 것은 2008년 키코 사태고 그 때도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굉장히 안전한 상품으로 소개하며 판매했다”며 “지금 ELS 피해자들과 동일한 패턴, 비슷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통탄할 일”이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백 변호사는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도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굉장히 꺼린다”며 “대신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했는데 과징금을 부과해도 국고로 귀속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피해 직접구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면 은행이 불완전 판매로 향후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이런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 기구를 나눠 금융소비자보호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백 변호사는 “2008년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전후로 많은 나라들이 금융 감독기관을 구분해 영국, 일본, 미국 등은 금융소비자보호청 같은 기구를 따로 둔다”며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와 손실보상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기능이 작동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개최한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양 의원은 관련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 의원은 “금융기관이 수익을 얻는 게 금융기관의 노하우, 혁신으로 창출하는게 아니라 결국 돈 넣고 돈 먹기 장사인데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고 비판하며 “노후자금은 물론 은행에서 대출받아 투자했던 분들까지 어떻게든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