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전 회장 에릭 슈미트 “인공지능은 제2의 핵무기, 펜타곤도 바뀌어야"

▲ 구글 전 회장 에릭 슈미트가 미국 국방부를 향해 빅테크를 비롯한 같은 민간 영역과 인공지능 분야 협업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에릭 슈미트가 2015년 세계경제포럼에 참여해 이야기하는 모습. <플리커>

[비즈니스포스트] 인공지능 기술이 군사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등장이 전쟁에 영향을 미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구글 전 회장 에릭 슈미트의 전망이 나왔다.

미국 국방부가 이런 변화에 대응해 빅테크 기업과 같이 신기술에 긴밀한 대응 체계를 갖추고 민간 기술기업과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15일 전자전문매체 와이어드 보도에 따르면 에릭 슈미트는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빅테크 기업과 같이 바뀐다면 인공지능은 군사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지배력을 갖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슈미트는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 전 대통령에게 “핵무기는 미래의 전쟁 양상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편지를 보냈던 일화를 소개했다.

자율성과 탈중앙화 등 특징을 갖춘 인공지능 시스템도 군사 분야에서 핵무기와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슈미트는 인공지능 기술이 군사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쓰이기 위해 민간 기술기업과 협력을 넓혀야 하고 더 나아가 국방부도 빅테크 기업과 같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슈미트는 미국 국방부의 관료주의가 조직을 항공모함처럼 느리게 움직이도록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내부에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비효율적 시스템에 갇혀 변화를 이뤄내지 못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보연구단체 마이터 코퍼레이션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소프트웨어 구입 및 설치에 이미 수 년이 소모되어 실제 사용을 시작하는 시점에는 구식 모델을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대로 빅테크 기업은 일반적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최신 기술을 신속히 도입하는 특징을 지녔기에 그가 미국 국방부의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인공지능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2021년 군사 분야의 인공지능 기술을 신속히 강화해야 한다며 향후 5년 동안 15억 달러(1조 9179억 원) 규모의 투자결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발언을 두고 군사 전문가들은 미 국방당국의 움직임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슈미트의 발언은 빅테크 시대의 문을 연 구글 전 회장이 국방부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는 2016년부터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 위원장을 맡았다. 2021년 위원회가 해체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방부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슈미트가 위원장을 맡던 NSCAI는 2021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인공지능 생태계와 사이버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 정부에 민간 영역과 협업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슈미트는 군사 분야에서 민간 영역 투자에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 그는 사이버 보안 플랫폼인 이스타리 등 인공지능기술 스타트업들에 모두 20억 달러(약 2조5572억 원) 이상을 투자해 왔다. 
 
구글 전 회장 에릭 슈미트 “인공지능은 제2의 핵무기, 펜타곤도 바뀌어야"

▲ 민간의 인공지능 기술이 안보 영역에서 쓰이는 걸 둘러싸고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사진은 네덜란드 브룬숨 나토군 북부사령부에 세워져 있는 무인정찰기 MQ-1 프레데터에 구글 로고를 합성한 사진. <플리커>

민간 영역의 인공지능 기술이 국방 분야에 사용되는 걸 윤리적 관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민간기업의 드론 영상을 군사 정보로 사용하려던 국방부와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 메이븐’을 중단한 적이 있다. 약 3천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윤리적인 이유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와이어드는 슈미트가 주장하는 내용과 같이 정부와 민간이 인공지능을 두고 협업하는 분야가 늘어날수록 더 큰 투명성과 책임이 요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슈미트의 대변인인 멜리사 스타벤하겐은 “슈미트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항상 완전히 공개해왔다”며 “그는 이러한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윤리적 우려에 대한 슈미트의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군사 분야에서 사용하는 인공지능이 안보 강화를 통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킨다고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군사 분야에 인공지능 활용의 중요성은 미국이 중국을 안보 경쟁자로 두고 있는 현 국제질서 아래에서 더 무거운 메시지로 다가온다. 중국도 국가 안보에 활용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미국 안보유망기술센터(CSET)는 ‘중국 군사 당국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2021년 보고서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매년 16억 달러(약 2조457억 원)를 군사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가 5년 동안 투자하는 전체 금액보다 중국의 연간 투자금이 더 많은 것이다.

슈미트는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상상해보라”며 “우리는 빅테크 회사를 창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