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 유럽 최대 화두는 미국과 ‘보조금 전쟁’, 한국에 반사이익 기대

▲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위원장이 현지시각으로 1월17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유럽연합의 정책적 산업 지원 법안에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 AFP > 

[비즈니스포스트]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들이 미국에서 주도하는 ‘보조금 전쟁’에 유럽의 대응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미국에 맞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 지원 방안을 내놓으며 한국 기업들이 이중으로 수혜를 노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19일 “다보스포럼 참가자들은 미국의 산업 정책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인프라 법안 등은 반도체와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산업 육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법안의 주된 내용은 미국 정부가 최대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경제 성장 동력을 신산업 중심으로 바꿔내기 위해 이와 관련된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연합 측은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미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유럽이 미국에 맞서 경쟁력을 갖춰내려면 강력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앞세웠다.

글로벌 주요 기업의 투자 유치 기회를 미국에 대부분 빼앗길 가능성이 떠오르는 만큼 유럽도 이제 미국에서 주도하는 ‘보조금 전쟁’에 참전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위원장은 다보스포럼 연설을 통해 “유럽연합은 미국의 막대한 친환경 보조금에 맞서기 위해 2030년까지 다수의 법안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제공하는 데 대해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유럽을 매우 강력히 자극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주요 정부 관계자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유럽연합이 미국의 지원 정책을 교훈으로 삼아 산업 정책 수립에 참고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도 “바이든 정부 정책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이 유럽보다 많은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렸다”며 “보조금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과 주요 소속 국가들은 이처럼 미국 정부의 핵심산업 지원 정책이 유럽에 불러올 잠재적 위협과 이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을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이 마무리된 뒤 이런 논의는 더욱 구체화된 단계에 접어들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반도체와 전기차, 친환경 산업 등 지원 정책으로 발전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미 반도체기업의 유럽 내 공장 투자에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은 세부 내용을 협의하는 단계에 와 있다. 앞으로는 더욱 속도가 붙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분열된 세계에서 협력’을 주제로 내걸고 개최되었는데 이런 이름에 걸맞게 미국과 주요 산업 공급망이 분열되고 있는 유럽 내에서 국가들 사이 협력이 강화되는 셈이다.
 
다보스포럼 유럽 최대 화두는 미국과 ‘보조금 전쟁’, 한국에 반사이익 기대

▲ 삼성SDI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공장 이미지.

세계 경제의 이런 큰 흐름 변화는 수출 및 해외사업 의존이 높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영향은 대부분 긍정적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한화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미국의 반도체와 친환경 지원 법안에 수혜기업으로 꼽히는 한국 주요 업체들이 유럽에서 이중으로 수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지원법 및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해당 기업들은 미국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공장 투자 및 제품 생산 과정에서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받거나 현지에서 고객사에 공급 물량을 확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유럽연합도 미국을 뒤따라 비슷한 지원 정책을 도입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유럽에도 생산공장 증설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인센티브 확보를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삼성SDI 등 기업은 이미 글로벌시장에서 각각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주요 업체에 해당한다.

한국 기업들이 유럽에 투자 의사를 밝힌다면 유럽연합과 해당 국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반길 공산이 크다.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생산설비,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생산공장 등이 미국에 이어 유럽에 설립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성사 여부는 결국 유럽연합의 지원 의지에 달려 있다.

유럽연합 특성상 주요 법안을 추진하고 도입하기까지 여러 국가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면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는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

다만 다보스포럼을 계기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산업 지원 정책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이런 과정에서 이견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수시장 집행위원은 “유럽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힘을 모아 대응하지 않는다면 다수의 기업이 미국으로 가버리고 말 것”이라며 “이는 유럽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