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라이벌] TSMC와 ‘3나노’ 경쟁 개막, 2023년 위기 대응의 핵심

▲ 류더인 TSMC 회장이 2022년 12월29일 대만 타이난시에서 열린 TSMC 3나노 반도체 양산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1부- 삼성 vs TSMC
(1) TSMC와 ‘3나노’ 경쟁 개막, 2023년 위기 대응에 핵심
(2) 파운드리 고객사 '싹쓸이' TSMC, 후발주자 삼성 '난제'

[비즈니스포스트] 2023년 새해를 불과 사흘 남짓 남겨둔 2022년 12월29일, TSMC는 대만 타이난 남부과학단지에 위치한 제18 공장에서 3나노 반도체 양산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고 알리는 행사를 열었다.

류더인 회장을 비롯한 TSMC 경영진은 물론 대만 정부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 해외 협력사 임원도 이날 행사에 대거 참석해 회사의 목표 달성을 축하했다. 2022년 초부터 “연내 3나노 반도체 대량생산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해 온 류 회장의 약속이 실현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TSMC는 (반도체산업의) 기술 리더십을 지켜내고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공정 기술과 신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으로 미래를 위한 전 세계의 기술 혁신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TSMC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나노미터 단위 급의 공정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새 기술을 도입할 때 지금처럼 주요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고 외부 관계자까지 초청하는 성대한 행사를 개최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런 TSMC가 이례적으로 3나노 미세공정 도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점은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기술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나노미터 단위의 숫자가 낮아진다는 것은 반도체를 더 정교하고 미세하게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반도체의 연산 성능은 더 높이고, 필요로 하는 전력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반도체 분야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반도체기업의 기술 수준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데도 중요한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제조기업들은 몇 나노급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두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가 기존에 주력으로 쓰던 5나노 미세공정을 넘어 3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는 점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 성과를 보여준다. 특히 TSMC와 같은 기업에 이런 업적은 막대한 사업 기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여러 고객사의 반도체를 대신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 특성상 한 단계 앞선 공정을 활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감 확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TSMC가 그동안 이런 기술 성과를 외부에 알리는 데 다소 소극적이다가 3나노 공정에서 이를 전면에 앞세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삼성전자다. TSMC가 삼성전자와 기술 경쟁을 민감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반도체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TSMC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서 오랜 기간 부동의 1인자로 ‘왕좌’를 지켰다. 뚜렷한 경쟁사가 없는 기업이기 때문에 기술력이 가장 앞선다고 자랑할 이유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2014년 14나노 공정을 앞세워 파운드리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수 년 안에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14나노 반도체로 외부 고객사 기반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TSMC의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기 시작했고 이후 10나노와 7나노 등 차세대 공정에서도 매서운 추격을 시작했다. 글로벌 경쟁사 대비 압도적 기술 선두를 자신하고 있던 TSMC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몇 년에 걸쳐 반도체 생산 실적을 쌓으면서 TSMC를 따라잡아 왔고, 결국 세계 파운드리시장에서 안정적인 2위 업체에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와 TSMC 사이 벌어지는 기술 경쟁을 따라잡기 어려워진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 등 기업은 조금씩 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삼성의 라이벌] TSMC와 ‘3나노’ 경쟁 개막, 2023년 위기 대응의 핵심

▲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 및 임직원, 협력사 대표 등이 2022년 7월25일 경기도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3나노 반도체 출하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그리고 2022년 6월 30일,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의 3나노 파운드리 반도체 양산을 발표했다. TSMC가 같은 해 연말까지 3나노 공정 도입을 목표로 두고 있던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반 년 정도 앞서 선두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약 1개월 뒤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최고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주요 경영진 및 임직원과 협력사 대표가 참석하는 반도체 출하식을 열었다. 이는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에서 삼성전자가 TSMC를 제치고 세계 최고에 오르게 됐다는 업적을 세계 반도체업계에 널리 알리는 중요한 행사였다.

TSMC에게 이날 행사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확보하고 있던 기술 선두를 이웃 국가의 경쟁사에 완전히 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경쟁사는 이미 자체 시스템반도체 설계 능력과 메모리반도체 등 TSMC가 갖추지 못한 기술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종합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다. 앞으로 최신 공정 기술을 활용해 성장할 수 있는 더 많은 잠재력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TSMC가 3나노 반도체 양산 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결국 삼성전자와 경쟁을 매우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에 해당한다. 

반도체시장에서 확실하게 기술 우위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고 인식되는 일은 고객사 수주 기회를 통한 미래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TSMC의 3나노 반도체 양산으로 삼성전자와 미세공정 기술 경쟁의 포문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두 회사의 3나노 반도체 경쟁이 2023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2023년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감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반도체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수요가 둔화하기 시작하며 전 세계 반도체기업에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와 TSMC의 3나노 공정 대결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2023년의 위기를 순조롭게 넘기고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시험대 역할에도 해당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을 총괄하는 최시영 사장은 2022년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 참석해 3나노 반도체에 그치지 않고 2025년 2나노, 2027년 1.4나노 공정을 새로 도입하겠다는 중장기 계획도 내놓았다. 

TSMC를 앞서 나가고 있는 삼성전자의 현재 성과를 수 년 뒤까지 장기간 이어질 기술 우위로 만들어 내겠다는 자신감과 포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