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횡령이사 퇴진’ 정관 변경안을 앞세워 삼양식품을 압박하며 2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HDC그룹의 지주사 HDC는 표면적으로 ‘윤리경영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주사체제 전환에 따른 보유지분 정리 등 후속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몽규가 ‘우호관계’ 유지해온 삼양식품에 칼을 빼든 진짜 이유

정몽규 HDC그룹 회장.


21일 HDC에 따르면 3월22일 삼양식품 주주총회에서 '배임이나 횡령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사를 결원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사 자격정지 정관변경 안건을 상정하는 방안이 예정돼 있다.

HDC 관계자는 “정관변경 안건 상정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최근 사회적으로 윤리경영을 향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의사 표명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따른 보유지분 정리를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DC그룹은 2018년 5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공정거래법을 적용받게 됐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계열사에 속하지 않는 회사의 지분을 5%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HDC는 들고 있던 삼양식품 지분 16.99% 가운데 12%가량을 팔아야 한다.

이 요건은 2년의 유예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에 HDC가 앞으로 있을 삼양식품 지분 매각에 대비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HDC가 지분 매각 전에 삼양식품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이미지 상승을 통해 주가를 올린 뒤 투자차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HDC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법에는 비계열사의 주식가액이 자회사 장부가액의 15% 이내면 비계열사 주식을 5% 이상 들고 있어도 된다는 예외조항이 있다”며 “HDC가 보유하고 있는 삼양식품 등 비계열사 지분이 HDC 자회사들 장부가액의 15%를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HDC에 따르면 HDC 자회사들의 장부가액은 2018년 9월 기준으로 1조1913억 원이다. 삼양식품을 포함한 비계열사들의 장부가액은 1679억 원으로 HDC 자회사 장부가액의 14%가량이다.

그러나 장부 가치의 변동에 따라 언제든 팔아야 할 상황이 닥칠 수 있다. HDC 관계자는 '삼양식품 지분을 앞으로 계속 보유할 것인가'를 묻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삼양식품 오너 일가의 일탈 행위가 삼양식품 이미지를 떨어뜨리자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HDC가 적극적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HDC가 정관변경을 추진한다는 발표를 한 다음 날인 15일 삼양식품 주가는 전날보다 4.39% 상승하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과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은 선대 회장들의 인연으로 어릴 때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정관변경 안건은 전인장 회장을 바로 겨냥하고 있어 단순히 ‘윤리경영’ 차원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보인다.

전인장 회장은 1월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아내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 역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만약 정관변경 안건이 통과되면 두 사람은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

전인장 회장은 2018년 9월 기준 특수 관계인 등을 포함해 삼양식품 지분 47.7%를 쥐고 있어 2대주주 HDC가 제안한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는 있다.

HDC가 이런 압박을 배경으로 배당 확대 등 주주에게 유리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등 ‘주주권의 적극적 행사’가 사회적 화두에 오르고 있는 만큼 HDC의 이번 주주제안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규 회장과 전인장 회장의 아버지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고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같은 이북 출신으로 생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2005년 삼양식품이 경영난에 처하자 현대산업개발은 삼양식품 오너 일가의 지분을 20% 넘게 사들이며 자금 지원에 나섰다. 이후 HDC(구 현대산업개발)은 삼양식품의 지분을 일정 수준 유지하며 든든한 아군 역할을 해왔다. [비즈니스포스트 홍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