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쟁보다 더 무섭다.
최광호 한화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건설공사 현장에서 직원 철수를 추진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이슬람 국가(IS)와 전쟁 등 위험한 상황에도 공사를 진행해 이라크 정부와 신뢰를 쌓았다.
이번에 현장에서 코로나19 발생해 공사 중단조치를 내렸지만 실적에 크게 부담을 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사 진행상황에 맞춰 공사비가 지급되는 계약방식에 따라 공사기한과 관련한 추가비용 발생 압박이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가 저유가에 따라 공사비 지급에 부담을 느껴 공사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최 사장 어깨도 가볍다.
1일 한화건설에 따르면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에 100명을 넘기지 않는 필수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인력을 모두 국내로 복귀한 뒤 이라크 현지의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공사 재개시점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 사장은 공사를 강행해 진행속도를 유지하는 것보다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 공사에 속도를 낼 때를 대비해 현장 인력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라크는 6월 신규 확진자 수가 1천 명을 넘은 뒤 최근 2천 명에 가까울 만큼 코로나19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해외사업에서 현지 사정에 따라 현장 인력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은 국내 건설업계에선 흔하지 않은 일로 파악된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는 한화건설 해외 사업장 가운데 규모가 제일 커 올해 실적에는 일정 부분 악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화건설이 앞으로 공사일정을 무리해서 앞당길 필요성은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를 절반 가까이 진행하면서 공사를 위해 선투자했던 비용 회수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공사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진행상황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받는 기성고 방식의 계약구조도 현장인력의 대부분 철수를 결정하도록 하는 데 부담이 덜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켜야 할 공사기한이 없어 위반 때 위약금을 내야 하는 부담이 없다. 게다가 공사가 조금 미뤄진다 하더라도 한화건설이 받을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비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한화건설은 2015~2017년 이슬람 국가와 전쟁 등 이라크 정세 불안으로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대금 지급이 미뤄지는 상황에다 해외 플랜트사업의 손실도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플랜트가 한화건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고 국내사업 비중도 70% 이상을 차지해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를 미룬다고 해도 수익성에 미칠 영향이 과거와 비교해 크지 않다고 한화건설은 설명했다.
이라크 정부의 속사정도 최 사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파악된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저유가 상황에서 이라크 정부도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돼 공사대금 지급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이라크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는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한국형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0만세대의 주택을 비롯해 교육시설과 병원, 경찰서, 도로 등 기반시설을 조성한다.
이라크 정부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과 전쟁에서 기반시설이 모두 파괴되자 전쟁 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비스마야 건설공사 사업를 발주했다. 한화건설이 2012년 수주한 이 공사대금은 101억 달러(약 12조4천억 원) 규모다.
최 사장에게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은 의미가 남다르다.
과거 이라크 신도시사업을 총괄해 무리 없이 진행한 공로로 한화건설 대표에 올랐다. 2015년 6월 사장 취임 뒤에는 이라크 신도시사업 관련 미수금을 회수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었다.
이라크 총리를 지속해서 만나면서 사업 정상화를 위해 힘썼고 그 결과 2016~2019년 미수금을 2조 원 이상 받아 선투입 공사대금 대부분을 회수했다.
최 사장은 올해 들어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자 이라크 현지에 발이 묶인 직원들에게 “지금의 위기상황 역시 우리 임직원들이 하나 돼 잘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저 또한 빠른 시일 안에 현장으로 달려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편지를 보내는 등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현장인력의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빠르게 조치한 점은 한화건설의 대외 이미지 높이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건설이 현장인력 귀국을 진행하면서 협력사 우선으로 진행하는 등 본사 직원 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의 안전까지 중시하는 모습 보이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화건설은 현재 비스마야 코로나19 대책 본부(TF)를 꾸리고 외교부, 이라크 정부 등과 계속 소통하며 상황을 조율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UN특별기는 한화건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의 필수이동인력들이 일주일에 한번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외교부의 도움을 얻어 인력 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UN특별기를 통해 매주 30명에서 40명 정도가 귀국하는데 이라크 현지의 상황에 따라 추가 전세기 투입 등도 고려하고 있다.
이라크는 3월부터 공항을 폐쇄해 5월부터 편성된 UN특별기를 통해서만 주1회 출입이 가능하다. [비즈니스포스트 안정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