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SG닷컴이 재무적투자자들과 풋옵션 행사 조건으로 갈등을 겪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상품권 거래’에 따른 총거래액 부풀리기 문제가 지목되고 있다.

상품권을 판매할 때와 상품권이 사용될 때 두 차례에 걸쳐 총거래액을 인식하는 관행이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과를 과대 포장하기 위한 눈속임으로 인식할 수 있어서다.
 
SSG닷컴과 사모펀드 갈등 촉발한 ‘총거래액’, 기준 없다 보니 '갑론을박'

▲ SSG닷컴은 재무적투자자들과 상품권 거래에 따른 총거래액 중복 계상의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사진은 SSG닷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SSG상품권 이미지. < SSG닷컴 >


SSG닷컴뿐 아니라 상품권을 판매하는 다른 유통회사들도 이런 방식으로 총거래액을 종종 집계하고 있는데 이 방식의 옳고 그름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1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 결과 상품권을 판매하는 여러 이커머스기업은 상품권을 판매할 때 한 번 총거래액이 늘어났다고 인식하고 이후 이 상품권이 실제 사용될 때도 총거래액이 늘어났다고 재차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한 고객 A가 특정 플랫폼을 통해 해당 플랫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10만 원어치 샀다고 하면 이 때 해당 플랫폼의 거래액은 10만 원으로 인식된다.

고객 A가 고객 B에게 이 상품권을 전달한 뒤 고객 B가 해당 플랫폼에서 상품권으로 상품 10만 원을 결제했다고 하면 이 때 해당 플랫폼은 또다시 거래액이 10만 원 늘었다고 본다.

상품권이 실제로 구매된 것은 10만 원이지만 총거래액 관점에서 보면 모두 20만 원의 거래액 증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품권을 판매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해당 플랫폼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를 회계상 항목으로 집계하는 과정에서 두 번 중복해 처리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시각이 떠오른다.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실질적으로 일어난 거래는 10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총거래액이라는 명목에서 20만 원으로 공개하는 것은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이러한 ‘부풀리기 효과’를 염두에 두고 상품권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떠오르고 있다.

이커머스업계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상품권 판매를 총거래액에 포함시킨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상품권뿐 아니라 해당 플랫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캐시나 충전금 등이 결제될 때도 거래액에 포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무적투자자들이 보기에는 이커머스기업들의 이런 계산법이 다소 석연치 않을 수 있다.

총거래액 1조 원을 달성하는 것을 전제로 해당 플랫폼에 돈을 넣었는데 알고 보니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상품권 매출이라고 하면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SSG닷컴에 ‘중복 계상’을 이유로 문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장해보면 A라는 고객이 한 플랫폼에서 상품권 100만 원어치를 구입한 뒤 이를 자신의 계정에 등록해 상품 100만 원을 구입하면 그대로 거래액이 200만 원대로 부풀려진다. 이를 악용하면 특정 플랫폼이 거래액을 부풀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세계그룹은 과거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때 2023년 기준 SSG닷컴의 총거래액이 5조1600억 원을 넘지 못하면 재무적투자자 보유 지분을 웃돈 주고 사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SSG닷컴은 지난해 총거래액 5조7천억 원을 넘어 이 조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무적투자자들은 상품권 구입 등은 실질적 거래로 볼 수 없어 거래액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거래액이라는 항목 자체가 애매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시각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총거래액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회계적으로 명확한 항목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 계산해야 정확하다는 기준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며 “어피니티와 SSG닷컴이 갈등의 본질은 결국 총거래액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회계 기준이 없어 어느 누구의 손을 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 어피니티 측에서도 총거래액을 산정할 때 SSG닷컴 등 유통업계에서 해왔던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이 여의치 않다보니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협상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무제표에 공식 항목으로 등장하지 않는 총거래액이 유통업계에서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게 된 시기는 201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 이커머스 업계를 살펴보면 이렇다 할 절대강자가 없었다. 지금처럼 쿠팡과 네이버가 시장의 양대 강자 자리를 탄탄하게 한 상황이 아니었다보니 각 플랫폼들은 모두 저마다 총거래액을 앞세워 ‘사용자들이 많이 찾는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커머스가 각광받자 이런 현상이 더욱 도드라졌다. 온라인으로 주문이 몰리다보니 각 플랫폼들은 매 분기마다 총거래액이 얼마를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강조했다.

투자자 역시 총거래액을 해당 기업의 외형을 보여주는 중요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총거래액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신선식품을 전문으로 하는 이커머스 기업이 호텔과 항공권, 가전제품을 판매한 이유도 결국 총거래액 부풀리기 경쟁의 결과였다.

총거래액이 1조 원인 기업보다 총거래액이 2조 원, 3조 원을 하는 기업이 결국 더 큰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반론도 적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으로 투자업계의 분위기가 얼어붙다보니 단순히 총거래액이 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총거래액이 5조 원이지만 매년 수천억 원대 적자를 내는 기업보다 총거래액이 1조 원에 못 미치더라도 해마다 수백억 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SSG닷컴과 사모펀드 갈등 촉발한 ‘총거래액’, 기준 없다 보니 '갑론을박'

▲ 컬리 역시 2023년 9월 컬리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컬리캐시'로 충전할 수 있는 온라인 교환권 '컬리상품권'을 출시했으나 총거래액에는 상품권 판매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컬리>


이런 시각이 확산하면서 결국 SSG닷컴과 롯데온, 컬리 등 대부분의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2023년부터 총거래액 발표를 중단했다.

모든 플랫폼이 상품권 매출을 총거래액에 중복 계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컬리도 2023년 9월부터 컬리 플랫폼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온라인 교환권 ‘컬리상품권’을 출시했다. 하지만 컬리는 컬리몰에서 실제 결제가 이뤄졌을 때만 상품권을 거래액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유통회사들은 상품권 판매 수익을 회계로 어떻게 처리할까.

백화점기업들은 상품권을 판매했을 때 이를 거래가 이뤄진 행위로 보지 않는다. 실제 상품으로서 판매가 됐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부채로 잡는다.

실제로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상품권은 ‘계약부채’라는 항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상품권이 실제 점포에서 상품으로 교환됐을 때만 즉시 매출로 이전된다.

대형마트는 상품권 매출을 총매출로 인식한다. 일단 판매가 됐으니 총매출이라는 계정에 상품권 판매 매출을 넣어놓긴 하지만 실제로는 순매출이라는 지표를 더 중요하게 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