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T&G가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외이사를 품고 이사회를 운영하게 됐다.

KT&G의 새 사장 선임에 반기를 들었던 최대주주 IBK기업은행이 주주제안을 통해 추천한 손동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새 사외이사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KT&G 탐탁지 않은 사외이사 손동환과 동행, 판사 시절 판결 보니 '부담되네'

▲ 28일 대전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KT&G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손동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KT&G 본사. <연합뉴스>


손 교수는 판사로만 20년가량 활동한 법조인 출신 교수인데 과거 판결들을 볼 때 KT&G가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대전 KT&G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손동환 교수가 새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진입하면서 앞으로 KT&G의 굵직한 의사결정 과정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만은 힘들 수 있다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손 교수는 KT&G 이사회가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이 아니다. KT&G는 애초 방경만 사장을 대표이사 후보로, 임민규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주총에서 방경만 사장이 최다 득표자가 됐고 그 뒤를 손 교수가 이으면서 임민규 이사회 의장은 자연스럽게 탈락했다. 이번 주총에는 총 3명의 이사 후보가 올라왔는데 KT&G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다득표 기준으로 상위 2명만 이사회에 합류하도록 했다.

손 교수는 KT&G와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던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인물이다.

IBK기업은행은 애초 손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해당 후보자는 공정거래 전문가로 다양한 소비재 사업의 법률 경험이 존재하고 경영진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회사에 조언할 수 있는 후보다”고 설명했다.

최고경영진의 눈치를 보며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제약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기존 사외이사들과 달리 이른바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후보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손 교수의 KT&G 이사회 합류는 민영화 이후 드물게 KT&G가 원하지 않았던 인물의 이사회 진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여태껏 KT&G 사외이사가 됐던 인물들은 대부분 이사회 내 기구인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추천된 사람들이었다.

IBK기업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최고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움직였던 이사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인물을 넣음으로써 KT&G의 경영을 직접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손 교수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KT&G 이사회가 다양한 전략적 결정을 놓고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손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판결은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공작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결이다.

손 교수는 2019년 12월 에버랜드 노조 와해 작업을 지시한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 부사장과 에버랜드 전 전무에가 각각 징역 1년4개월과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내렸다.

당시 판결에서 영국 작가 찰스 디킨즈의 1854년 소설 ‘어려운 시절’을 언급하며 삼성그룹 임원들을 꾸짖은 일로도 유명하다.

그는 판결문에서 “소설 속 공장주는 노동자의 유일하고 직접적인 목적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는 것과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으려는 것이라고 항상 떠벌린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 문장은 ‘노동자들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편견’을 드러낸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손 교수는 “21세기를 사는 피고인들이 풍자 대상과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의심이 든다”며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의 노조 와해 행위를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KT&G 입장에서는 기업을 대상으로 엄격한 법 집행을 추구하고 실행했던 손 교수의 성향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 KT&G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IBK기업은행이 직접 추천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손 교수의 이사회 입성은 분명 눈치가 보이는 일로 여겨진다.

손 교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담당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보험사들이 꾀병으로 몰아갔던 교통사고 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들을 처음으로 구제한 판사로도 유명하다.
 
KT&G 탐탁지 않은 사외이사 손동환과 동행, 판사 시절 판결 보니 '부담되네'

▲ 손동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판사 생활만 20년가량 한 판사 출신 교수로 과거 여러 이색 판결을 남겼다.


손 교수는 2005년 11월 버스 안에서 급정차 사고를 당한 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진단을 받은 사람이 관련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는 당시 “특정 질환의 발생 원인을 현재 과학 수준으로 명확히 해명할 수 없는데도 피해자에게 증명을 요구하면 법적 구제가 어려워진다”며 “사고로 충격을 입은 뒤 1개월 이내에 이 증후군이 나타났으므로 반대 증거가 없는 한 보험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며 피고가 원고에게 2억4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이 판결 역시 기업의 논리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손 교수가 2005년 낸 이 판결은 이후 관련 판례로 자리잡았다. 

손 교수는 물론 휴머니스트로서 면모도 갖추고 있다.

손 교수는 2009년 울산지방법원 근무 시절 한 식당에서 국밥 1그릇과 소주 1병 마신 뒤 주인에게 돈 없다며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소란을 피워 기소된 인물의 판결에서 실형 대신 벌금형을 내렸다.

손 교수는 당시 “형의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유치장에 넣어달라는 터무니없는 요청을 하다 경찰을 폭행했다”며 “(청송교도소) 출감 후 사회에서 그를 맞아줄 부모나 형제, 최소 일요일 오후 시간 그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저녁 한 끼를 사줄 친구가 있었더라면 과연 피고인이 이 같은 범행에 이르게 되었을까”라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손 교수는 “실형을 신고하기 보다는 아직도 이 사회가 피고인이 건강한 시민으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생활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이 피고인을 교화하는 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은 당시 ‘법원이 온정을 베풀었다’ ‘법에도 따뜻한 눈물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색 판결로 주목받았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