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모리 제재' 강화해 중국 반도체 굴기 억누를 가능성, 삼성·SK 촉각

▲ 미국의 중국 반도체산업 제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첨단 7나노 공정에서 자체 개발한 5G 반도체가 탑재되면서 미국이 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메이트 60 프로에 중국산 첨단 5G반도체뿐 아니라 외국산 부품으로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간 것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제재를 강화할 가능성이 제기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을 향한 다음 단계 반도체 제재 방안으로 반도체 제조장비 반입 금지 강화 또는 메모리 반도체 수출 제한 추가라는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IT매체 엔가젯은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에 중국에서 첨단 공정으로 자체 제작한 5G 반도체가 탑재된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제재가 부실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중국 반도체 추가 제재 방안으로 반도체 제조장비 반입 금지 강화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미국 상무부는 2022년 10월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한정해 이 조치에 관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둔 바 있고 최근 연장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지속해서 예외적 혜택을 받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37%를 중국 시안공장에서 생산한다.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를 우시 공장에서 만들며 낸드플래시의 20%를 다롄에서 제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화웨이가 자신들을 향한 직접적 제재를 피해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우회적으로 수입해 최신 스마트폰에 활용함에 따라 미국은 더 강력한 메모리 반도체 관련 제재를 가할 공산이 크다.

화웨이는 중국 군부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는 의혹에 연루돼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국가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 제품 불매뿐 아니라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까지 가한 바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직접적 제재 대상이 된 기업과 거래하는 다른 업체까지 2차로 제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여파로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화웨이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부활 조짐을 보임에 따라 미국 정부는 중국를 향해 반도체 제재에 고삐를 더 강하게 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화웨이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한 스마트폰의 주요 칩을 내재화 하면서도 메모리 반도체만큼은 한국산을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이 현재로서는 최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배경을 토대로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 자체에 대한 중국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한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일정 수준의 수출제한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가장 촉각을 곤두세울 만한 시나리오다.

한국무역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입동향을 국가별로 살펴볼 때 한국이 가장 많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국가로 파악된다.

한국은 2022년 기준 483억600만 달러(약 63조 원)어치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 국가별 집계에서 중국은 1위에 올랐다.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 자체에 대한 수출제한이 강화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여지가 크다.

중국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 메모리 반도체 판매액 규모는 2021년보다 14.3% 증가한 6282억 위안(113조 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두 회사의 피해규모가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자체를 교란 시킬 수 있어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의견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미국 '메모리 제재' 강화해 중국 반도체 굴기 억누를 가능성, 삼성·SK 촉각

▲ 중국 화웨이가 새롭게 내놓아 미중 반도체 갈등에 새로운 불씨로 떠오른 화웨이의 '메이트 60 시리즈' 모습. <화웨이>

반도체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중국 반도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경우 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는 탈중국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매체 니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에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요청했으나 삼성전자로부터 부정적 의견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니케이아시아가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베트남 반도체 공장 건설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중 반도체 갈등에 따른 위험 분산을 위해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중국 시안 공장이 속한 삼성중국반도체(SCS)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 17조 원으로 미국 오스틴공장(SAS) 자산 9조3천억 원의 2배 수준이라 삼성전자로서는 탈중국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00조 원 가까운 현금성 자산(97조1252억 원)을 들고 있어 생산 시설 이전에 관한 대응 역량은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화웨이 이슈에 엮인데 더해 중국 다롄에 새 메모리 반도체 공장도 짓고 있어서 탈중국을 꾀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콘퍼런스콜에서 최악의 경우 중국 장비를 국내로 들여오고 팹을 매각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위기대응 방안)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인 만큼 우선고려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여려 차례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재무 상황이 빡빡해 탈중국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 가동에도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다운사이클 대응 과정에서 재무부담이 확대된 상황이어서 미국의 대중국 규제강도가 강화될 경우 재무구조 개선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