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국가들 '화석연료 사업자에 탄소세 부과' 선언, 그린워싱 우려도

▲ '2023년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가 6일 종료됐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나이로비 선언'을 발표하고 선진국들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글로벌 탄소세 도입과 탄소 배출권 시장 확대 등을 결의했다. 사진은 '2023년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 폐회식에 모인 아프리카연합(AU) 정상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아프리카 국가들이 탄소세 부과와 탄소배출권 시장 확대 등을 통해 자력으로 기후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로 결의했다. 또 기후 대응 관련 국제적 지원을 세계 각국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6일(현지시각) 아프리카연합(AU) 가입국들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를 종료하면서 ‘나이로비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을 통해 아프리카연합 가입국들이 세계 각국에 요청한 연간 지원금은 약 1천억 달러(약 133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기후 피해를 기준 삼아 책정된 금액이다. 기후정책이니셔티브(Climate Policy Initiative)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아프리카는 기후변화 대응에 매년 약 3000억 달러(약 400조 원)가 필요하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합쳐 300억 달러(약 40조 원) 수준의 자금 조달 능력만을 갖추고 있다.

이에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주최를 맡은 아랍에미리트는 회의 현장에서 아프리카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45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과 독일 등의 지원 약속도 잇따랐다.

이번 나이로비 선언이 과거 기후 관련 합의들과 다른 점은 지원금 요청 외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력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수 있는 다른 구체적 방안들도 함께 마련했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탄소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이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탄소세는 땅에서 나오는 화석연료 모든 배럴마다 다 붙이는 것이 옳다"며 "근원에서부터 화석연료 배출에 세금을 붙이면 거기서 나오는 피해로 인한 부담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루토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해 화석연료의 채굴 단계에서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 걸쳐 글로벌 탄소세를 부과하는 데에 합의했다.

해당 합의는 11월에 열리는 COP28에 제출돼 아프리카 외에 다른 국가들도 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해당 제안이 법제도화되면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에 따라 기후변화에 미치 피해액을 산정해 이에 걸맞는 세금이 화석연료 채굴자에게 부과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강화된 탄소세 제도에 더해 탄소 배출권 시장 확대를 통해 재정적 여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프리카국가들 '화석연료 사업자에 탄소세 부과' 선언, 그린워싱 우려도

▲ 4일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가 열린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위자들이 아프리카에서 화석연료 채굴을 멈추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합의돼 출범한 ‘아프리카 탄소 시장 이니셔티브(ACMI)’에 따르면 아프리카 탄소배출권 시장은 2050년에는 2000억 달러(약 266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아프리카는 다양한 자연 열대우림과 강 등 탄소 흡수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어 최적의 탄소 상쇄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 일대의 콩고 습지만 해도 연간 탄소흡수량이 15억 톤에 이른다. 대한민국 연간 탄소배출량의 두 배가 넘는 양을 흡수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아프리카의 탄소배출권은 아랍에미리트가 4억5000만 달러(약 6000억 원)어치를, 영국 HSBC금융그룹이 2억 달러(약 2667억 원)어치를 구매하기로 선언하면서 시장 규모 확대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와 환경운동가들은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의 구상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기후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을 위한 지원 정책이나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자닌 모시리 국제위기감시기구 분석가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많은 아프리카 지역사회가 홍수와 가뭄으로 고통받는 동시에 내전 등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며 “이들이 이번 친환경 투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나오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모시리가 속한 국제위기감시기구는 이번 회의에 앞서 탄소배출권 시장 확대를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모시리는 “이번 회의는 아프리카 국가 주도로 열린 첫 번째 기후회의였는데 약하고 불충분한 선언 하나로 끝났다”며 “서구권 선진국들의 이미 실패한 탄소배출권 시장을 아프리카에 떠넘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프리카국가들 '화석연료 사업자에 탄소세 부과' 선언, 그린워싱 우려도

▲ 4일 회의가 열린 케냐 나이로비 시내를 행진하는 시위자들. '기후 부채'를 당장 갚으라는 문구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회의가 열린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회의 기간 동안 500명이 넘는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탄소배출권 시장 확대와 글로벌 탄소세 도입이 아프리카가 가진 자연자산들을 ‘상품화’하는 행위라며 기업과 선진국들의 ‘그린워싱(친환경 포장)’을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선진국들이 배출권이나 탄소세 등 간접적 방식이 아니라 배출한 탄소에 따른 피해액을 환산해 ‘기후 부채’로 놓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직접 상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아브 오칸다 기독교후원재단 상임고문은 로이터를 통해 “탄소세 부과는 환영한다"면서도 "하지만 실제로 오염원을 배출하는 자들이 돈을 내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탄소배출권 등 ‘가짜 해결책’은 오염 배출자들이 무임승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는 케냐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표들과 안토니오 구테흐스 국제연합 사무총장,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등 각국 주요 인사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