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대한민국 재계를 움직이는 대기업 총수들 중에서도 유독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화의 불꽃 카리스마 김승연 회장이다.

김승연 회장 하면 상남자, 의리, 보스, 화끈함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한화의 사업분야 자체가 좀 카리스마가 있다. 화학, 무기, 에너지 등등 굵직굵직하다.

김승연 회장의 외모도 한몫했다. 쫙 빗어넘긴 올백 머리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또 단신이지만, 상체가 발달한 역삼각형의 체형 역시 강렬한 포스를 풍긴다.

김승연 회장의 화끈함과 인정을 보여주는 미담도 굉장히 많다.

천안함 희생자들의 유가족 24명을 한화에 취업시켜줬고 국가도 외면했던 애국자 로버트 김을 남몰래 후원해준 일화, 또 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 매년 여의도 불꽃축제를 화끈하게 주최하고 있다.

이런 경영 외적인 행보를 떠나서 김승연 회장의 독보적인 존재감에는 진짜 이유가 있다.
 
바로 43년간 국내 최장수 오너로 그룹을 이끌면서 한화를 재계 7위의 대기업으로 올려놨기 때문이다.

현재 한화의 주력사업인 한화생명 같은 금융 계열사, 태양광 에너지 사업,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유통 사업, 우주항공과 방위산업 등 이런 것들을 김승연 회장이 직접 M&A로 키워냈다.

특히 최근엔 대우조선해양 인수까지 성사시키면서 향후 한화그룹이 재계 6위, 5위로까지 올라설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연 한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만든 김승연 회장의 진짜 저력은 뭘까?

◆ 29살의 젊은 총수, 인수합병 성공 스토리의 시작

김승연 회장은 1952년 김종희 한화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올해 나이는 만 71세다.

부친 김종희 회장은, 고등학생이던 김승연 회장을 공장으로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일찍부터 사업 현장 교육을 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경영 수업을 받던 김승연 회장은 1981년, 부친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한화의 회장직에 오르게 된다. 이때 나이가 불과 29살이었다.

서른도 안 된 최연소 재벌총수를 두고 회의적 시선이 쏟아지자 김승연 회장은 초장부터 기선제압에 나섰다. 취임 직후  적자만 500억 원에 이르던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컬 인수를 밀어붙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경험없는 총수의 객기 등으로 비관적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김 회장은 이 인수합병을 끝까지 추진했고, 인수 1년만에 두 회사들은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에도 김승연 회장의 인수합병 성공사는 계속 이어졌다. 

2002년 김승연 회장은 당시 누적 손실액만 3조 원에 이르던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그룹의 안정과 새로운 성장을 위해선 금융업이 황금열쇠가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대한생명은 3년만에 국내 2위의 생명보험사로 성장했고,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 한화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사업이 됐다.

김 회장은 2012년에는 파산한 독일 태양광 기업 큐셀을 사들였다. 역시 영업적자만 635억 원에 달했기 때문에 안팎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규모의 경제만 갖추면 태양광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본 김 회장은 이 인수합병을 그대로 추진했다.

현재 한화솔루션으로 성장한 큐셀은 세계 태양광 시장을 주름잡는 강자가 됐다.

2014년에는 삼성의 방산, 석유화학 부문 4개 회사를 인수하는 빅딜을 단행하기도 했다. 역시 당시에는 부실기업을 떠안았다는 부정적 시각도 많았지만 이 빅딜로 한화그룹은 재계 7위로 단숨에 도약했으며 현재 이 계열사들은 한화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면서 우주 항공사업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회장은 어떻게 알짜 회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부실 회사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일까?

김승연의 인수합병 성공 비결, 독서와 완벽주의 그리고 의리경영

그 첫 번째 비결은 바로 독서로 얻은 통찰력이다. 

김승연 회장은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특히 경영서와 로마 역사서를 즐겨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과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폭넓은 독서를 통해 통찰력과 안목을 길러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두 번째는 완벽주의다.

성하현 전 한화 부회장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실행에 옮기지 않는 편집증적 완벽주의 기질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의 대외적 이미지를 살피면 직감을 통해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일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인수 대상 기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리 경영, 사람 중심의 경영 철학 역시 김 회장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김승연 회장이 인수합병 때 내거는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인수 회사 직원들의 고용보장이다. 

대한생명 인수 당시에는 인수를 반대하는 노조위원장을 직접 만나 인력 감축이 없을 것이라고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삼성과의 빅딜에서도  삼성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100% 보장했고 처우와 복리 역시 삼성에서 받던 수준 그대로 유지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IMF 당시 한화 계열사를 매각할 때는 매각 대금을 낮추더라도 직원을 해고하지 말아 달라고 협상해서 100% 고용승계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런 김 회장의 태도는 인수합병 이후 조직 사이의 화학적 결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수합병의 성패는 서로 다른 조직이 얼마나 화학적으로 잘 결합하느냐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피인수사 직원들을 차별 없이 대우한 것은 물론, 이들의 장점과 조직문화를 배우는 열린 태도를 보여줬다. 덕분에 수많은 M&A 속에서도 노사갈등이나 불협화음 사례가 거의 없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 구조조정의 마법사, 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다

김승연 회장은 ‘구조조정의 마법사’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벗어나면서 붙은 별명이다.

그룹 외형 불리기에 집중하고 있던 한화에 외환위기는 그야말로 직격탄이었다. 이때 김승연 회장은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쓰면서 누구보다 신속하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김 회장은 한화에너지, 한화기계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매각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당연히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김 회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회사를 사려는 사람은 없다”며 반대 여론을 일축했다. 

김 회장의 빠른 판단으로 한화는 김 회장이 한 박자 빠르게 핵심 계열사를 제값을 받고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머뭇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핵심 계열사를 헐값에 매각하거나 심지어 무너지기도 했던 것과 비교된다.

결국 한화는 부채비율을 2년 만에 100배 이상 줄이면서 내실있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김 회장의 ‘의리 경영’ 역시 이 외환위기 때는 한계에 부딪혔다. 김 회장은 이와 관련해 “마취도 하지 않은채 갈비뼈를 드러내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회사가 위기를 벗어나자 전직 임직원들의 상황을 조사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전직 임직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또 명예퇴직한 임직원들에게는 “지난날 같은 깃발 아래 한솥밥을 먹던 소중한 인연을 되새기겠다, 부디 건강하시라”라는 내용의 친필 편지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복싱을 좋아하기로 소문난 김승연 회장은 “경영이 복싱이고, M&A도 복싱이다”는 말을 했다. 치열하게 때리고 막고 피하는 복싱이 경영과 닮았다는 뜻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는 김승연 회장의 마지막 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 과연 대우조선해양을 통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글로벌 방산업체가 되겠다는 김승연 회장의 큰 그림은 완성될 수 있을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기획제작 : 성현모, 서지영, 강윤이 / 촬영 : 김원유, 김여진 / 진행 : 윤연아 / 출연 : 장상유]